2016년, 팝과 록의 장작을 차곡히 쌓아 올린 < MONKEY HOTEL >에서 태어난 작은 불꽃은 이윽고 대중음악의 역사를 수놓은 < 전설 >들에 대한 갈망으로, 더 나아가 가요 시장을 뒤덮은 레트로 열풍으로 이어졌다. 92년생 동갑내기로 구성된 당돌한 신인 밴드가 한국을 대표하고 젊음을 상징하는 지오르보 대장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로부터 7년 만의 재회. 아직은 따스함이 웃돌던 10월 중순, 어느덧 청춘의 수호자가 된 잔나비를 다시 만나 그간 궤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많은 게 바뀌었고 또 그만큼 바꾸기도 했다. 손에 꼽기도 힘들 만큼 다사다난한 곡절을 겪으면서도 착실한 활동으로 조금씩 이름을 알려 나갔고, 방대한 양의 디스코그래피와 히트곡까지 겸비하며 아티스트의 타이틀을 당당히 거머쥐었다. 하지만 여전히 부끄러운 미소로 자신의 음악을 ‘성장’이라 소개하는 모습에서는 여전히 음악을 향한 경외와 진심, 그리고 도전 정신이 여실히 묻어났다. 오늘날에도 거듭 영역을 넓히며 소신을 펼쳐 나가는 밴드 잔나비, 그들의 성공 비결은 어쩌면 그 식지 않는 영감의 불씨가 원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7년 만에 IZM과의 인터뷰인데, 소회가 궁금하다.
최정훈(이하 최): 음, 누군가 이에 관해 물어보면 정말 다사다난했고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바빴다며 얼버무렸다. 이제 와 진심을 말하자면, 꿈을 이뤘다는 기쁨이 들면서도 동시에 꿈을 잃어버린 슬픔이 크다. 밴드를 영원히 같이 끌고 가고픈 바람이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부분에 있어 아직까지 타격이 남아 있다. 그래도 처음 결심한 멤버 둘이 남아 이렇게 음악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그만큼 정말 음악을 사랑했구나 싶고 자부심도 강하게 느낀다.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얼마나 음악에 매달렸는지도 알게 됐고.
과거 5인 체제를 다시 구축해 볼 생각은 없는지.
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 닫혀 있지 않다. 만약 마음 맞는 사람이 찾아온다면 언제든 합류할 수 있다. 물론 지금 2인 체제는 '기동력'이 굉장히 좋다. 그 장점이 음악에도 나타나고, 공연에서도 빛을 발하는 부분이 있다.
대신 공연에서는 세션을 기용해야 하지 않나.
최: 맞다. 아무래도 다인조 밴드 출신이다 보니 세션을 부탁할 때 매번 요구사항을 건의하는 것보다, 한 팀으로서 음악을 같이 이해하고 녹아드는 게 익숙하다. 다행히 지금 함께하는 세션 팀과는 그런 관계가 잘 구축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향후 공연 스케줄을 1년 가까이 비웠다고 들었다. 잔나비는 라이브에 강한 팀인데, 혹시 이유가 있을까.
최: 쉰다는 개념보다는 작년에 공연을 엄청 많이 했고, 이제는 레퍼토리 측면에서 조금은 보강해야 할 시간이라는 생각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 음악적으로 충전하는 시기라고 보면 된다. 아무리 팬과 밴드 사이의 교류가 돈독하더라도, 리프레시 없이 매번 같은 무대를 선보이게 된다면 그 관계가 무뎌질 수 있지 않나.
음악적으로도 레퍼토리를 바꾸는 건가. 조금은 위험할 수도 있을 텐데.
김도형(이하 김): 사실 우리는 나름의 전환점을 정하는 시기가 항상 있었고, 그때마다 큰 변화를 맞이해 왔다. 시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앨범이 나오고 새로운 곡이 나와야 한다.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나.
김: 좋아하는 코드는 있다. 다만 지금은 그걸 벗어나려고 노력 중이다. 그래서 오히려 코드워크를 더 단순하게 가보기도 하고 아예 신경을 안 쓰는 등 재밌는 작업 방법을 찾아보는 중이다.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뭔가.
최: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건 볼품 없지만'. 3년에 걸쳐 스멀스멀 알려지면서 밴드를 세상에 알려준 곡이라 더 기억에 남는다. 조금은 자만일 수도 있지만, 우리도 이제 히트곡을 가진 밴드라 생각이 들게 해준 곡이다. 그만큼 사랑을 많이 받았고, 스스로 이에 대해 뿌듯하게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건 볼품 없지만'처럼 잔나비의 곡 제목은 유독 긴 편이다. 어떠한 저항 정신의 표현인지.
최: 음, 그냥 관심을 받고 싶었다. (웃음) 저항 정신이라면 저항 정신일 수도 있겠다. '사랑하긴 했었나요 스쳐가는 인연이었나요 짧지않은 우리 함께했던 시간들이 자꾸 내 마음을 가둬두네 (Baby I need you)'의 경우에는 제목을 짓던 도중 이것저것 추가하다 보니 점점 길어지길래 그냥 전부 적어버린 게 시작이었다. 대표님이 곡 심의를 받으러 갈 때 제목을 수기로 써야 하는데 제출 당시 제목 칸에 가사를 적으면 안 된다며 제지를 받기도 했다. 아, 그리고 산울림을 굉장히 좋아한 면도 있었다. 어릴 때 너무 좋아했고 < MONKEY HOTEL >을 만들 때도 한참 빠져서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
곡명도 정말 기발하고 독특한데.
최: 사실 가사를 쓸 때보다 노래 제목을 지을 때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개인적으로 곡 제목은 가장 설득력이 강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3집 < 환상의 나라 > 같은 경우에는 낭만주의 특유의 '번역체'를 따오려 했다. 곡 하나하나가 챕터가 되어 외국 문학처럼 보이고 싶었던 셈이다.
잔나비의 인기 요인은 무엇보다 좋은 음악, 특히 그중에서도 좋은 선율이라 생각한다.
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다. 우리가 과거 음악을 탐구하며 받은 교훈은 격동하고 감동하고 끓어오르는 감정이다. 요즘 음악의 쿨하거나 칠(chill)한 감성과는 조금 다르다.
김: 좋은 선율에는 힘이 담겨 있지 않나. 그래서 늘 항상 구미가 당기고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이 달라붙게 하는 멜로디를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한다.
혹시 음악적 충돌이 있지는 않나.
김: 전혀 없다. 멜로디를 만들 때면 둘이 기타를 하나씩 들고 앉아 한 구절씩 오가며 작업하는 편이다. 요즘도 앉은 자리에서 시간 가는지 모르고 몇 곡씩 뚝딱 만들어 내기도 한다. 고등학교 때 함께 음악을 시작하게 된 이유도 취향이 비슷해서였고, 성인이 되어서도 정말 잘 맞았다. 지금도 음악을 일종의 놀이처럼 대한다. 한 번은 둘 다 비틀스에 빠져서 한참을 비틀스만 들었으니까.
최: 오히려 외부에서 오는 충돌이 많다 보니 더 돈독해지게 된 것도 있다. (웃음)
근래 심취한 음악이 궁금하다. 아직도 과거를 탐구하는 편인지.
최: 근데 또 요즘은 옛날 음악을 잘 안 듣는다. 예전에는 악상 위주의 곡만이 우리가 가진 것을 표현하고 격정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면,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위험할 수도 있겠더라. 과거 비틀스를 파고들었듯 최신 음악에도 시선을 보내고 관심을 기울이려 하고 있다. 최근 잭 안토노프가 속한 블리처스(Bleachers)를 듣고 있다. 매끄럽게 잘 다듬어져 있지만, 충분히 자기만의 방식으로 격정과 감동이 담겨 있다.
혹시 주류를 의식하는 면도 있나.
최: 오히려 그렇게 가지 않으려고 의식하는 편이다. 유행과 흐름을 인지하는 것도 요하지만, 흐름에 올라타려고 노력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시선을 돌린다고 해서 우리만의 장기가 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연 때마다 항상 포 넌 블론즈(4 Non Blondes)의 'What's Up'을 부른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곡인가.최: 별 의미는 없다. 오히려 커버 곡을 하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근데 우리도 재밌고 남들도 재밌어하면 그만 아닌가. 지금은 잔나비 공연 역사에 있어 빠질 수 없는 곡이 됐다. 여전히 재밌고, 이 명곡을 사람들에게 좀 더 알리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 사실 코드워크나 구성만 보면 단순한 편이다. 공연을 거치면서 계속 뭔가 하나씩 더해가고, 그때 감정과 에너지에 따라 마음대로 편곡할 수 있는 곡인 셈이다. 실제로 처음 했던 무대와 지금의 무대를 비교해 보면 엄청나게 다르다.
그렇다면 공연에서 가장 멋지게 펼칠 수 있는 곡은.
김: 'Good Boy Twist'. 하나의 선으로 쭉 연결되는 느낌이랄까. 라이브에는 템포를 조금 더 빠르게 편곡한 버전으로 부르는데, 무대 위에서는 이게 더 잘 맞는 옷 같더라.
무대에 오르기 전 마음가짐이 있다면.
최: 음, 우리는 스포츠맨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무대에 오른다. 선수가 경기장에 들어가기 전 정갈하게 마음을 다잡듯이 말이다. 공연과 스포츠는 거의 비슷하다. 그런 면에서 대회를 준비하듯 평소에 꾸준히 연습하는 스포츠맨십을 서로 강요하는 편이다.
과거 버스킹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됐는지도 궁금하다.
김: 그렇다. 일단 콘서트와 버스킹은 조금 다르다. 버스킹은 불특정 다수 앞에서 공연을 하는 거고 콘서트는 우리를 보러 온 사람들이니까. 다소 고리타분한 의견일 수도 있지만, 음악가는 남녀노소 어떤 관객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자신의 음악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버스킹의 장점은 어떤 부분에서 사람들의 반응이 오는지 바로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그때 경험을 통해 노하우는 쌓고, 반대로 고집은 버리면서 자신감을 크게 키웠다.
가사가 청춘의 소외감을 대변하는 느낌이 있다.
최: 어릴 때 조그마한 동네를 산책하며 가사를 떠올리곤 했는데, 그때 소심하고 겁 많던 어린 시절의 자아가 적용되어 그런 것 같다. 사실 지금도 나약한 면이 많다. 지금은 겉으로 티 내지 않는 법을 배우긴 했지만, 아직도 공연이 끝나고 집에 오면 걱정에 밤새 잠을 설치기도 한다.
주로 영감은 어디서 얻나.
최: 희한하게 시를 많이 읽는 편이다. 철학 서적에도 관심이 많고. 대신 거기서 골몰하며 떠올린 아이디어를 누구나 알 수 있도록 보편적으로 풀어내려 한다. 3집이 딱 그렇다. 가사 자체만 보면 그건 글 아닌가. 음악말고도 글만이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스토리텔링의 비결이 있다면.
최: 100% 내 얘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신 '이건 이런 곡입니다'라고 구체적인 설명을 첨부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되면 해석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진달까.
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스토리를 100% 기타 사운드로 표현한다고 보면 된다. (웃음)
앞으로도 < MONKEY HOTEL >이나 < 환상의 나라 > 같이 스토리텔링이 대두된 스타일을 유지할 것인지.
최: 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계속 이어지리라 본다. 잔나비에게 앨범이란 이야기책이다. 늘 한 장의 앨범을 만든다기보다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작업한다.
김도형이 생각하는 '최정훈 보컬'의 매력은.
김: 전역한 지 이제 막 1년이 넘었는데, 처음 군대에 갔을 때 선임들에게 이런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다. “도형아 그러면 너는 기타를 얼마나 잘 치는거야?” “그러면 누구보다 잘 치는거야?” 그러던 문득, 우리나라에서 정훈이보다 노래 잘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 잘 떠오르지 않더라. 대한민국에 노래 잘하는 사람은 정말 많지만 왜냐하면 정훈이는 그들과 비교할 수 없는 자기만의 색이 있지 않나. 물론 나도 선임들의 질문에 멋지게 대답해 냈지만, 그러면서도 정훈이의 목소리 같은 기타 소리를 갖기 위해 끝까지 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최정훈은 엘튼 존의 음악을 듣고 싱어송라이터가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들었다.
최: 어린 시절 엘튼 존이 내한했을 때 아버지가 표를 구해와서 우연히 첫 번째 줄에서 보게 됐다. 포스터를 보니 '싱어송라이터'라는 단어가 적혀 있더라. 그래서 부모님께 뜻을 물어봤고, '곡을 직접 쓰고 부르는 사람이야'라고 하시더라. 그 순간 싱어송라이터는 내가 알던 모든 직업 중 가장 멋있는 직업이 되었다. 그때부터 피아노도 칠 줄 모르는데 어떻게든 곡을 써보려고 했던 것 같다.
커리어 중에서 가장 '잔나비'스러운 곡을 꼽는다면.
최: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둘이 하나를 꼽자면 정규 1집이다. 만들던 당시에는 영감도 안 떠오르고 스파크가 안 솟는다고 느꼈는데, 지나고 보니 우리가 가진 정수와 영감 덩어리가 밀집되어 있던 앨범이더라. 그 시기에 그걸 담아낼 수 있었다는 게 너무 행운이다. 심지어 어떤 가사는 내가 쓴 게 맞나 싶다. 계시를 받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신기한 문장이랄까.
잔나비의 음악은 뭐라고 생각하나.
최: 음, 어려운 질문이다. 우리가 만든 음악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잔나비의 음악은 '성장'인 것 같다. 요즘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생각이 깊어지는 걸 느끼는데, 그 과정에서 나오는 생각의 파편을 차곡차곡 모아 일지로 만든 게 곧 앨범이 되는 셈이다.
이는 앞으로 더 성장하겠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혹시 더 쟁취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최: 어우, 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이런 가사도 써보고 싶고, 이런 공연도 해보고 싶고. 아직도 정말 많은 목표가 존재한다.
진행: 임진모, 김태훈, 이승원, 장준환, 한성현
정리: 장준환
사진: 김연준, 이승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