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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l Kill - The 3rd Album
레드벨벳(Red Velvet)
2023

by 손민현

2023.12.01

기묘한 물음표를 남긴 ‘짐살라빔(Zimzalabim)’과 ‘음파음파(Umpah Umpah)’ 축제, 이를 이어 주최한 2022년 버전 후속 페스티벌도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클래식을 전면에 내세운 ‘Feel my rhythm’, 비슷하게 조지 거슈윈의 대표곡을 샘플링한 ‘Birthday’가 전보다 보편적인 흥을 일깨우지만 함께 들썩이기에 의아한 점이 준비 과정과 음악 모두에 뚜렷했던 탓이다. 찬 계절에 어울리는 이번 분위기 역전은 다르다. 오히려 이 칠흑의 여흥에는 레드벨벳의 색깔이 더욱 또렷하다.

타이틀 ‘Chill kill’은 ‘피카부 (Peek-A-Boo)’와 ‘Psycho’를 잇는 레드, 벨벳의 수려한 융화다. 힙합 세부 장르인 드릴 베이스 라인을 필두로 서늘한 도입부가 매력적인 어둠을 발산하면, 프리 코러스부터 짧은 랩, 후렴구로 이어지는 반전이 완성도 높은 입체감을 부여한다. 이 다채로운 생기 덕분에 짧은 뮤지컬을 보듯 생동감이 넘친다. 비슷한 명암대조로 꾸민 ‘Nightmare’는 왈츠 풍 리듬으로 독특한 맛까지 살리니, 팀의 개성을 살린 두 곡의 음악적 매무새가 만족스럽다.

팀의 일관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양질의 곡 수급 능력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게다가 새로운 맛까지 적절히 섞어 신간의 완성도를 높였는데, 레드벨벳의 발자취를 쫓아왔다면 몇몇 곡에서는 분명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비슷한 질감의 사운드와 구성 아래 몇 파트에서는 역할을 뒤바꿔 청취의 신선함을 꾀한 것, 물론 어색한 랩 파트는 군데군데 눈에 띄나 큰 흐름을 막지는 않는다. 이지리스닝 위주의 팝 선율이 K팝을 잠식하는 대세 속, 그룹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변화까지 꾀한 베테랑 아이돌의 품격이 굳건하다.

서사적 콘셉트에 집중하는 K팝이 희소해지는 와중에 가정폭력이 연상되는 주제, 이를 연결한 음악 간의 유기성도 탄탄하다. 다만 그 뒤를 받치는 수록곡의 존재감은 후반으로 갈수록 다소 흐릿하다. 신스 알앤비 ‘Will I ever see you again’ 등 초반부 트랙들은 그 결을 맞추고 있는데 비해, ‘Iced coffee’와 ‘One kiss’ 구간부터 울타리가 약해지며, 잔잔한 알앤비 ‘Wings’ 등은 마무리를 위한 마무리 인상이 강하다.

선택과 집중의 좋은 사례다. 스스로의 장기를 잘 살린 '밝은 비극’이 음악과 이야기로부터 충분한 만족감을 획득한 덕분. 간만의 체제 변화는 레드벨벳의 색채를 깊게 즐길 팬들에게 만족스러운 선택지가 될 것이며, K팝을 가볍게 향유하고 그룹의 특수성까지 시도할 의향을 가진 저(低)관여자에게 또한 즐길 거리가 분명한 앨범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적색 축제의 폐막이 레드벨벳 사이클의 정상작동을 증명한다.

-수록곡-
1. Chill kill [추천]
2. Knock knock (Who's there?)
3. Underwater
4. Will I ever see you again? [추천]
5. Nightmare [추천]
6. Iced coffee
7. One kiss
8. Bulldozer
9. Wings
10. 풍경화 (Scenery)
손민현(sonminhyu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