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과 아이돌은 대대손손 엮이면서도 서로 내외하는 사이다. 거리 출생 저항 음악 이미지와 직접 작사를 기본 덕목으로 지닌 장르이니 상업성을 우선하여 소위 ‘기계식 공정’으로 돌아가는 K팝과 상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들이 힙합을 눈독 들였지만 주로 랩에 국한된 일방적 사용에 그친 탓에 완전히 체화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보편적인 취사선택 대신 스스로 문화에 몸담으려는 5인조 걸그룹 영파씨는 그래서 더욱 눈에 들어오는 팀이다.
동명의 매거진을 본뜬 < XXL >에 이어 세 번째 EP < Ate That >은 아트워크와 뮤직비디오 모두 유명 게임 ‘GTA’ 시리즈를 패러디 대상으로 삼아 공간적 배경을 미국 LA로 설정했다. 1980년대 후반 닥터 드레와 스눕 독 등 서부 래퍼들이 애용하던 지펑크(G-funk) 스타일의 등장은 당연한 수순이다. ‘Still D.R.E.’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Loading…’의 차가운 피아노 리프, ‘Nothin’ but a P thang’이라는 가사에 걸맞게 ‘Nuthin’ but a “G” thang’처럼 고음역대 신시사이저를 수놓은 ‘Ate that’의 연속 펀치 덕에 영파씨의 음악에서 힙합은 아이돌의 하위 요소가 아니라 대등한 존재로 올라선다.
더군다나 전작에서는 멤버들의 작사 참여가 수록곡에만 한정되었다면 이번 EP에는 타이틀 포함 세 트랙의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며 래퍼로서의 소양을 더욱 충실히 챙기고 있다. 펜을 든 것에만 그치지 않고 전달력이 더 단단해진 덕분에 ‘진짜가 되 영파씨가 되 막내가 되’와 같은 밈(meme) 라인도 크게 걸리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간다. 다만 숏폼 음악 같은 스냅 랩 ‘Bananas’와 감성 힙합 ‘화약 (Umbrella)’으로 무게감이 확 내려가는 것은 음반 단위 결과물 제작에 소홀했던 초기 K팝의 전통을 굳이 따르는 느낌이다. 아이돌 소속 표시는 앙칼진 음색과 빠른 BPM으로 충분하다.
마카로니 치즈부터 햄버거, 그리고 이번에는 도넛까지. 영파씨의 뮤직비디오에는 매번 음식이 나온다. 시대를 가리지 않고 힙합의 여러 요소를 하나씩 삼키겠다는 상징으로 볼 수 있겠다. 아직까지는 힙합 지도 위 좌표를 탐방 중이니 ‘Ate that! (찢었다!)’을 외치기에는 일러 보이지만 ‘Xxl’의 가사 ‘아직 모자라’처럼 굽히지 않는 야심과 함께 자기 노선을 구축한다면 ‘힙합 하는 아이돌’이라는 울타리조차 불필요할 정도로 Z축 높이 솟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수록곡-
1. Loading… [추천]
2. Ate that [추천]
3. Bananas
4. 화약 (Umbrel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