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철의 45년은 치열했다. 그는 음악에 목숨을 걸었다. 대중에게 각인된 ‘정신 차려’ 속 코믹 제스처와 국산 애니메이션 < 날아라 슈퍼보드 >의 주제가 ‘치키치키 차카차카’, 응원가 고전 ‘젊은 그대’는 웅대한 음악 세계의 일부분이었으며 록 뮤직에 기반한 서구 대중음악과 국악의 현대화 등 손대지 않은 부면이 실로 드물다. 쇠락하지 않는 탐구열과 도전 정신, 창작과 음악에 대한 근원적인 애정이 원동력이었다.
2002년 작 < 기타산조 > 이후 약 스물두 해만의 신보 < 김수철 45주년 기념 앨범 너는 어디에 >의 숫자 45는 비단 수식어로 머무르지 않는다. 그 물리적 세월은 장르 융합과 곡의 구조, 음반의 구성 곳곳에 녹아들어 하나의 작품으로 현현(顯現)했다. 단순한 기념을 넘어선 경력의 집대성과도 같은 음반이다.
음악학자이자 모험가적 본능 덕에 하나의 주제 혹은 관심사가 둘과 셋 이상으로 늘 분화했다.
발전과 개선을 위해 지상 과제에 천착하고 몰두했던 그는 음악의 비좁은 구멍을 위해 자신을 깎고 또 깎아냈다. 원맨 밴드와 사운드트랙, 각종 스포츠 행사 음악의 작품군에서
모두 나타나는 대목이다. ‘나무’의 아가페 주제의식이 보다
직접적 화법의 ‘나무사랑’으로 변주되고 묵직한 하드록 넘버 ‘아자자’가 즉흥 연주의 10분짜리
잼(Jam)으로 확장하는 본작의 구성 양식이 생명체처럼 진화하는 그의 음악 세계와도 닮아있다.
‘별리’의 처연한 감성에서 모태(母胎) 신앙 하드록으로 진화하는 ‘너는 어디에’는 부드러운 발라드 창법에 토속적 선율을 접붙였고 선명한 편곡이 공력과 도사처럼 자적(自適)한다. 교리적 색채의 ‘나무’ 속 성찰과 사유 테마는 은은하게 퍼지는 공감각적인 보컬 파문(波紋)에 그 깊이를 더했다.
삶의 위로와 격려가 공존한 ‘야야아자자’는 김수철 본령이 록임을 선포한다. 작은 거인 시절 ‘일곱색깔 무지개’ 풍 사이키델리아가 가미된 하드록과 2002년 < Pops & Rocks >에서 신해철이
부른 ‘이대로가 좋을 뿐야’의 직선 주법을 합체한 이 곡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 사이 성행했던 애시드 록을 향한
관심이다. 환각을 빌려 자기만의 환상계 혹은 몽환계로 빠지는 애시드 록의 방식은 가톨릭과 불교를 거친
김수철의 종교성과도 일정 부분 닿아있다.
로큰롤의 기상(氣像)은
두 개의 펑키(Funky) 록 ‘그만해’와 ‘휙’으로 이어진다. 퍼즈 오르간과 테크니컬한 기타 연주의 결합 ‘그만해’는 ‘젊은 그대’의 도입부처럼
산뜻한 신시사이저 멜로디로 의표 찌른다. 그의 대중적 감각을 다시 드러낸 장면이다. 쏜살같이 흘러가는 세월을 다룬 ‘휙’은 동물적 감각과 가창의 야수성으로 꿈틀댄다.
‘야야아자자’와 더불어 8분대 긴 러닝타임의 피날레 트랙 ‘기타산조’는 2002년
발매작 < 기타산조 >의 연장선이자 “기타”와 “국악”의 김수철 음악 인생 두 대명제의 교차점이다. 중중모리와 휘모리 등의
역동적 장단에 기타 임프로바이제이션을 곁들인 기타산조는 전통 민속악과 록 음악의 마력이 공존하며 신해철과 서태지 이전에 감행했던 시도이자 실험이었다. < 서편제 >(1993)과 < 태백산맥 >(1994)를 비롯한 영화음악과 1997 무주 동계 유니버시아드 등 각종 행사 음악에 흐른 동서양 융화는 궁극의 소명이자 과제였다.
외부 요건의 개입이 늘어나는 가요계 현주소에 < 김수철 45주년 기념 앨범 >은 경종을 울린다. 정체와 무력, 노화의 단어를 타파한 예순일곱 고령 뮤지션의 여덟 신곡은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다. 장르 망라와 그간의 연구 결산, 유기물처럼
변태(變態)하는 컨셉트 앨범 적 구성미 등 커리어 축소판
같은 이 음반은 하지만 결코 종착점이 아닌 하나의 분기점이 될 것이다. 가장 멋진 형태로 데뷔 45주년을 자축한 김수철은 또 하나의 봉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수록곡-
1. 너는 어디에 [추천]
2. 나무
3. 아자자
4. 그만해 [추천]
5. 휙
6. 나무사랑
7. 야야아자자 [추천]
8. 기타산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