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차게 돌아온 김수철>
아무리 대중음악 전선에서 물러나 있었어도, 또 무수한 세월이 흘렀어도 김수철은 1980년대 음악을 논할 때 걸러서는 안 되는 인물로 지금도 우리들 뇌리에 남아있다. 그는 전성기 시절 조용필의 1인 천하를 위협할 정도의 인기를 누린 동시에 실력도 인정받은 비범한 '음악작가'였다.
하지만 쏟아지는 명예의 유혹을 거절하고 그는 국악가요('변심'), 본격국악('비애'), 드라마음악('역사는 흐른다') 그리고 영화음악('서편제') 등 비(非)가요부문으로 창작에너지를 돌려버렸다. 전선이탈은 그러나 결코 망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가요 팬들은 록을 자양분으로 다채로운 선율과 편곡감각을 과시해온 그인지라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히트곡을 써낼 수 있는 인물'로서 김수철을 정의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12년 만에 대중음악 앨범을 들고 돌아왔다. 그의 재능과 음악을 기억하는 사람들한테는 반가운 일이다. 더욱이 음악 컨텐츠는 김수철 자신의 기반인 박진감 넘치는 '록'이다. 스스로도 밝혔듯이 록과 어깨동무하기에 좋았던 '월드컵의 함성'(윤도현밴드가 뜨지 않았는가)이 적잖이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실제로 그의 골든 '나도야 간다' '젊은 그대'는 응원무대에서 열심히 불렸다.
여기에 고무된 듯 그는 생소함도 줄이려는 뜻에서 '나도야 간다'를 이번 앨범의 머리 곡으로 내세웠다. 1980년대 원곡보다는 기타의 중량감을 살려 전체적으로 파워를 높였다. 내지를 줄 아는 그의 보컬에 신해철 박미경 장혜진 김윤아가 참여한 코러스가 입혀지면서 곡은 이 시대 록의 생기(生氣)를 취하는데 성공한다.
이어지는 곡 '저기를 봐'는 타이틀곡의 요소는 덜 하지만 '역시 김수철'이란 말이 나올 만큼 안정된 곡의 전개가 돋보이는 앨범의 수작이다. '난 왜 이럴까?' '왜 그래?' 등도 이 음반을 '록 앨범'으로 치장하는 업 템포 넘버들. 하지만 신작은 김수철 작품의 특질을 이루는 '북 치고 장구 치고'를 고집하지 않고있다. 상당수 곡에서 후배들인 신해철, 박미경, 김윤아, 장혜진, 이상은 그리고 래퍼 김용훈의 힘을 빌렸다.
이 점 역시 '나도야 간다'와 같은 선상에서 이들 목소리와 결합을 통해 '노장 뮤지션의 소외'로부터 벗어나려는 조치로 생각된다. 김수철은 해당 가수의 보컬 성격을 충분히 고려해 그들의 개성을 충분히 살려내는 쪽으로 곡을 썼다. 신해철의 '이대로가 좋을 뿐야', 박미경의 '다시 또', 김윤아의 '나와', 이상은의 '보고싶은 너' 등 모두가 성공적인 '객원가수 시스템'의 소산이다.
일거에 '그의 다채로운 곡 감각', '참여 가수들의 보컬 주체성' '그들의 김수철에 대한 존경'을 삼득(三得)해냈다. 특히 장혜진의 보컬에 김용훈(사물놀이 김덕수의 아들)의 랩을 붙인 '자꾸 이러지마Ⅰ'는 추세에도 민감한 그의 재기를 다시금 확인해주는 김수철판 힙합이다. 김용훈의 랩으로만 꾸민 '자꾸 이러지마Ⅱ'도 놓칠 수 없다. (김수철은 힙합도 된다!)
하지만 할 말이 너무 많은 느낌을 줘 조금은 부담스럽다. '가난한 마음으로 세상을 봐' '도대체 왜 이래? 제발 좀 철 들어라' '이제 그만해 잘난 척은' '뭘 그거 갖고 그래? 잊어버려' 등 예의 훈계조에 약간은 코믹한 어법은 약간의 '무게'를 앗아가고 있다. '못다 핀 꽃 한 송이'나 '내일'을 써달라는 것은 아니지만 40대 말의 나이에 맞는 중후한 대중성이 못내 아쉽다. '잊을 수 없어요' 같은 곡도 덜 트로트적이었으면 어땠을까.
그렇다고 '그의 컴백이 우리의 행복'이란 사실을 해침은 없다. 80년대 대중음악의 거인의 체취가 배어있는 '음악적 몸풀기'로서 그만이다. 앞으로도 대중음악 작업이 지속됐으면 한다. 가요가 든든해짐을 느끼게 하는 그와 같은 뮤지션의 존재가 흔한 것은 아니다.
-수록곡-
1. 나도야 간다
2. 저기를 봐
3. 난 왜 이럴까
4. 왜 그래?
5. 이대로가 좋을 뿐야(노래 김수철)
6. 다시 또(노래 박미경)
7. 나와(노래 김윤아)
8. 자꾸 이러지마Ⅰ(노래 장혜진, 랩 김용훈)
9. 자꾸 이러지마Ⅱ(랩 김용훈)
10. 보고싶은 너(노래 이상은)
11. 잊을 수 없어요
12. 그리움(연주음악)
13. One Korea(코러스 김건모 김현정 김종서 박미경 신승훈 이광조 이적 장혜진)
***전곡-작사 작곡 편곡 김수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