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윤 인터뷰
이승윤
이승윤은 타성에 물들기보다 자신의 뚝심을 지키는 아티스트다. 공연과 인터뷰에서의 일관된 태도에서 엿보이듯, 풍족한 미래를 도모하기보다는 객석을 뛰어다니고 노래 부를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다. 전체의 절반만을 열어둔 < 역성 > 또한 마찬가지다. 선공개 앨범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선보이며 과감히 관습에 거스르기로 결심한 이유 역시 충분한 고민 끝에 도달한 자기 확신의 결과다.
좋은 작품은 여러 질문을 남긴다. 본인의 철학을 담은 < 꿈의 거처 >에 이어 < 역성 >까지, 아름다운 음악을 남긴 이승윤에게 여전히 묻고 싶은 말이 많기에 1년 전과 같은 자리에서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한 해 동안 활발했던 활동의 궤적을 밟으며,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앨범 뒤의 심정을 확인하며. 이즘과 함께한 두 번째 대화를 통해 이승윤의 음악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지난 7월 3일, 정규 3집의 선공개 앨범 < 역성 >을 발매했다. 지난 < 꿈의 거처 >와는 다르게 반항적인 인상이 더 강해졌는데 변화의 계기가 있는지.
항상 비틀린 견해를 가진 채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제3자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조율 과정을 매번 거쳤는데, 이번에는 그 과정을 과감히 생략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비틀렸다면 비틀린 대로 가보는 거다. 무엇보다 지금 이 타이밍이 아니면 이런 음악을 다시는 못 할 것 같았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만든 앨범이다.
‘타이밍’이라, 혹시 무슨 뜻인가.
정규 앨범을 여러 장 내고, 전국 투어를 돌고, 페스티벌에 설 수 있는 가수가 된 지금을 말한다.
정말 큰 운이 따라줬다 생각하고, 지금도 매 순간 감사하다. 동시에 이 영광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기회가 왔을 때 하고 싶던 것들을 전부 해보고 싶었다. 속으로만 간직했던 로망을 구현하는 작업인 셈이다.
소개 글에 ‘거스르는 이야기’라는 표현이 자주 쓰인다. 방향성을 여기에 두고 시작한 건지.
테마를 먼저 역행에 두고 시작한 건 아니다. 1년 3개월 동안 쓴 곡을 모아보고 가사를 쓰다 보니 어느새 이쪽으로 맥락이 견고해졌다. 아마 지금 나를 지배하는 주된 정서가 역행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럼에도 거스를 수 없는 게 있다면.
나이. 한 5년만 거스를 수 있다면 좋겠다. (웃음)
선공개 싱글은 흔하지만 선발매 앨범은 독특한 형식이다. 이런 구조로 발매하게 된 계기가 있나.
정규 앨범을 준비하면서 ‘폭포’를 선공개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6분이 넘는 곡을 라디오에서 틀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방송 등 외부 활동을 위해 '폭죽타임'을 추가로 수록했다. 두 곡을 정하면서 내부 회의를 거치다 보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앨범의 반을 떼서 보여주자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하여 계절감에 맞거나 공연을 염두에 둔 곡을 포함해 균형을 맞춘 총 8곡을 발매하게 됐다. 전체 음반이 공개될 즈음에는 트랙 순서도 바뀔 것이다.
숏폼이 유행하며 정규보다는 EP나 싱글을 선호하는 시대다. 정규를 고집한 < 역성 > 또한 일종의 역행이라 볼 수 있을 텐데, 이러한 흐름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시대를 부정하려 하지 않는다. 나 역시 숏폼 콘텐츠를 즐기고 짧은 음악도 자주 듣는다. (웃음) 꼭 정규를 내야 진짜 뮤지션으로 인정받는 건 아니지 않나. 그저 내가 정규를 낸 이유는 지금 하고픈 이야기를 담기 위한 그릇으로 정규작의 형식이 적합했을 뿐이다. 이 단위를 반드시 고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작품은 모든 곡을 밴드 멤버들(조희원, 지용희, 이정원)과 공동 작곡했다.
작년 4월쯤 같이 음악을 하던 이들과 아예 맨 처음부터 다 같이 만들어보는 게 어떻겠냐 제안했다. 매주 수요일마다 곡 작업을 하고 그 외에는 연습과 공연을 다니며 다듬는 과정을 거쳤다. 처음에는 마찰이 잦았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한결 편해지며 한마음 한뜻이 되더라.
원래 혼자 작업할 때는 보통 92% 정도 완성해야 남들에게 들려주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처음부터 다 같이 만드니 방향성도 다양해지고, 더 과감한 결단도 내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개인이 아닌 우리 모두의 힘이 담긴 덕에 좌절과 무력감을 이겨낼 수 있던 것 같다.

가장 애착이 드는 곡이 있다면.
모든 곡이 마음에 들지만 이야기상으로는 ‘검을 현’이 그렇다. 현실을 은유로 대체하면서 자연스레 판타지 같은 분위기가 들어갔다. 살다 보면 체스판 위에서 움직일 수 있는 칸으로만 다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사실 밖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세상이 만들어낸 판에서 한번 벗어나 보자 하는 생각으로 쓴 곡이라 만드는 동안 해방감을 많이 느꼈다.
‘폭포’의 가사도 인상적이다. 가사의 영감은 어디서 얻는 편인가.
평소에 머릿속에 쌓아둔 언어가 많아서 그것을 활용할 때도 있고 즉석에서 떠오른 단어를 살리는 경우도 있다. ‘폭포’ 같은 경우는 원래 1절 벌스까지만 만들어둔 노래였다. 그 뒤 내용은 없었고 폭포가 쏟아지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이어가지 못하고 있던 와중, 문득 갑자기 폭포를 뒤집어서 분수를 만들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어 내용을 붙였다. 데모 속 흔적으로 남은 과거, 메모장에 적어둔 과거를 하나하나 모아 현재의 내가 완성한 작업물이다.
‘내게로 불어와’에 대해서도 소개를 부탁한다.
곡 작업을 할 때 내가 초안을 만들어 가는 경우도 있지만, 친구들이 코드를 먼저 만들어 주는 경우도 많다. '내게로 불어와'는 기타리스트 이정원이 코드를 먼저 만들고 거기에 내가 멜로디를 붙인 곡이다. 데모를 만들면서 일종의 ‘가라 언어’를 넣는다. 선율감에 어울리도록 아무 영어나 한글을 불러보는 거다. 이 곡은 갑자기 '불어와'라는 어감이 걸려서 그대로 데모를 제작했고, 나중에 과연 무엇이 불어올까를 고민하며 가사를 완성했다. (‘가라 언어’를 이용하면 좋은 점이 있나) 일단 빠르게 작업을 할 수 있다. 다만 영어로 데모를 만들게 되면 한글로 바꾸는 작업이 무척 힘들다. (웃음)
그래서인지 < 꿈의 거처 >에 비해 발음 또한 거칠어진 느낌이 든다.
원래 발음에 신경을 잘 안 쓴다. 이승윤으로서 앨범을 내기 이전 곡들을 보면 말한 그대로 거친 발음을 구사하는 노래도 많다. 이번에도 발음보다는 어감, 즉 말맛에 더 집중했다. ‘가라 언어’를 사용한 이유도 선율과 어감 중심에서 출발하기 위함이었다.
사운드에도 날 것의 향이 강하다.
‘이승윤은 라이브지’라는 말에 늘 고심하게 된다. 감사한 말이지만 창작자로서 풀어야 할 숙제인 셈이다. 음원으로 듣더라도 밴드 사운드를 풍성하게 만들고 싶었고, 그 결과 기타와 드럼 톤을 정형화되지 않은 날 것의 소리로 만들고자 신경을 많이 썼다.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마이크와 장비를 구하기 위해 외국 장터를 찾기도 했다. 녹음과 믹스, 마스터링 과정에서 가장 공을 많이 들인 부분이다.
‘28k love!!’는 어떤 이유로 28K가 붙은 건지 궁금하다.
금의 순도가 보통 24K지 않나, 시간도 24시간이고 영화도 옛날에는 24 프레임이 표준이었다. 24라는 숫자가 표준에 가깝다고 생각해 ‘표준’을 다룬 내용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순도를 벗어나는 내용을 써 보는 게 더 흥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불순물로 임의의 4를 더한 28이라는 새로운 숫자를 상정해 만들게 된 곡이다. 앨범의 주된 정서인 거슬러 보자는 마음가짐과도 이쪽이 더 잘 맞았고.

‘캐논’은 하나의 코드로 사랑을 표현한 게 인상적이었다. 곡을 쓰게 된 배경이 있는가.
태어나서 처음 듣게 된 팝이 비틀즈의 ‘Let it be’다. 곡에 매료되어 비슷한 곡들을 찾아 듣다 보니 캐논 코드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좋아하는 형식이기에 해당 진행으로 10대 때부터 200곡이 넘도록 작곡을 했지만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김광석), ‘옛 사랑’(이문세) 같은 캐논 코드를 활용한 명곡들에 압도되어 오히려 못 쓰겠더라. 그러던 와중에 드러머 형이 자다가 생각났다며 가져온 멜로디에 이어 붙일 음을 찾다가 자연스럽게 캐논이 돼서 작업이 이루어졌다.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코드기에 완벽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 완벽하지 않더라도 내자 싶었다.
최근 페스티벌 무대에서 이승윤의 이름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단독 공연과 페스티벌에 차이가 있다면.
차이가 정말 크다. 노래를 다 만끽할 자세로 오는 분들이 많은 단독 공연에서는 행복을 누린다면, 비싼 값을 주고 온 관객들이 좋은 하루를 보내도록 해야 하는 페스티벌에서는 사명감을 느낀다. 맡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물론 내가 라인업 중에서 최고의 무대가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과하게 힘이 들어가기 마련이니까.
무대를 가리지 않고 공연을 이끌어가는 기세가 대단하다. 단독 공연 < DOCKING >에서도 질주하며 27곡을 가창하는 게 기억에 남는데. 비결이 있을까.
안 그래도 힘들어서 좀 줄여야겠다 생각했다. (웃음) 물론 < DOCKING >에서 곡을 많이 부른 이유는 첫 단독 콘서트인 만큼 최대한 전부 들려드리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양보다는 질에 집중하려 한다. 공연에 열정적으로 임하게 되는 동력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 역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이유를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이고 지금으로써는 우열을 가릴 틈 없이 공연 자체가 즐겁다. 미래를 장담하긴 어렵지만 현재로서는 무대 위 이승윤을 빛내기 위해 무대 아래의 삶을 투자하며 열심히 사는 중이다.
본인이 공연할 때 가장 즐거운 곡이 무엇일지도 궁금하다.
‘비싼 숙취’. 크게 히트한 곡은 아니지만 페스티벌 무대에서 많이 한 덕에 팬이 아니더라도 이 곡을 아는 분들이 많다. “어라, 나 이 곡 아는데” 하면서 같이 즐겨주신다.
히트곡을 남기고 더 큰 유명세를 누리고자 하는 욕망은 없나.
멋에 살다 멋에 가는 게 꿈이다. 어설프게 히트곡을 만들려고 하기보다 잘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진심을 담은 음악을 내면 그것을 좋아해 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이승윤이 꼽은 다섯 장의 인생 음반
1. 임브레이스(Embrace) < Out Of Nothing >: 스트링과 밴드의 조화로는 제 안의 넘버원 앨범.
2. 제트(Jet) < Shine On >: 모든 곡이 다 좋음.
3. 레이첼 야마가타(Rachael Yamagata) < Happenstance >: 그냥 명반.
4. 잭 가렛(Jack Garratt) < Love, Death & Dancing >: 근래 가장 충격적이었던 앨범.
5. 리암 갤러거(Liam Gallagher) < As You Were >: 뭐야 그냥 망나니 프론트맨 아니었어?
진행: 임진모, 장준환, 손민현, 정기엽, 한성현
사진: 정기엽
정리: 정기엽, 장준환, 손민현, 한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