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건 당시에 필요한 음악이란 게 있다. 작년 한 해, 그 중에서도 예상치 못한 혼란에 유독 추웠던 연말 즈음으로 국한하자면 < 역성 >이 채운 빈자리는 여전히 선명하다. 이제 와 다시금 되짚는 까닭이 비단 그가 이 음반으로 거머쥔 트로피의 개수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투박하면서도 매끄러운 전개와 이에 상응하는 음악, 무게감 있는 메시지까지. 앨범명의 사전적 의미와 창작자의 의도가 세태의 한 점에 모여 시류를 관통하고 있다.
역성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으레 혁명이란 낱말이 따라오기 마련이지만 이승윤은 ‘엎자, 뒤집자’ 따위의 행동성을 기반삼지 않는다. 인심에 기울이는 역성 그 자체. 가끔은 무언가를 거스르고 싶고, 때로는 이유 없이 누군가의 편에 서고 싶은 그 마음. 또 그렇게 목적하는 바를 좇으면서도 정작 그 가치에 퇴색되지 않는 자신의 정체성을 직시한다. “나를 위한 표어”와 “표어를 위한 나”의 구분을 말하는 그의 모습과 맞닿은 대목이다.
가치의 윤색(淪塞)이란 공통된 제재를 양분하는 ‘인투로’와 ‘폭죽타임’의 노랫말을 후주에 담아 흩뿌리고, 이를 ‘역성’의 대응으로 수합하자 초입부터 이승윤이란 음악가의 면모를 발견한다. 나아가 은유와 직설을 병립해 외침에 힘을 싣고, 의미는 더하되 문장의 부피는 덜어내며 세션과 조명을 나눈다. 이에 공연 무대를 의식했을 대중 친화적 멜로디를 덧대니 경중 공존의 매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앉은자리의 시선보단 설계한 환경에 집중했던 전작 < 꿈의 거처 >와는 다른 문법이다. 꾸준히 와닿았던 1990년대 브릿팝의 색채가 역동하는 한편, 그 반대편의 아메리칸 하드 록 요소를 적소에 투입해 묘한 결합을 꾸린다. 악기 실연의 품질은 그간 소작 중 최상이다. 거친 숨소리가 진동하는 밴드 사운드에 이따금 어쿠스틱 구성과 현악이 합세하니 좀처럼 지루할 틈이 없다. 주제 의식을 불사르는 체감적 심상과 연주로 꽉 채운 대곡 ‘폭포’는 그 예시이자, 곧 음반의 정점이다.
모래시계 꼴의 작품은 시작과 끝에 시선이 몰릴 수밖에 없다. 결국 흘러야 하기에 그만큼 허리가 견고해야 한다. 이승윤의 전략은 호기롭다. 말미의 극적 대비를 위해 체력을 비축하려는 의도 속 출발점과 종착지 사이 공백을 채우고자 여러 장르를 택하며 넓은 스펙트럼을 뽐내려는 욕심이 비친다. 이승환의 ‘가만히 있으라’와 윤도현의 ‘Sparks fly’를 교차하는 발라드 넘버 ‘까만 흔적’, 팝의 비중을 높인 ‘내게로 불어와’부터 ‘너의 둘레’까지의 연계. 이 모든 변주는 그가 마련한 유희의 공간에서 이뤄진다.
당장은 그의 뜻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현실을 꼬집고 아픔을 어루만지는 음악은 늘 그러한 인상과 함께했다. 지금은 어렵지 않게 듣는 수십 년 전 위로의 노래도 과거엔 그렇지 않았던 경우가 허다하다. < 역성 >도 차근히 그 길을 걸을 것이다. 세월에 따라 더욱 농익어 갈 테고, 어떤 의미로든 ‘역성’을 꿈꿀 때면 한 번쯤 생각이 나리라. 여정을 같이하는 두꺼운 지지층과 세간의 높은 평가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결괏값은 ‘전시도, 거론도, 호명조차 되지’ 않아도, 또 “주선율인지 잡음인지” 굳이 나누지 않아도 모두가 소리로서 살 수 있길 바라는 그의 언어와 음악이 앞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록곡-
1. 인투로 [추천]
2. 폭죽타임 [추천]
3. 검을 현
4. 역성 [추천]
5. 스테레오
6. 까만 흔적
7. 캐논
8. 내게로 불어와 [추천]
9. 28k Love!! [추천]
10. 너의 둘레
11. 리턴 매치
12. Sold out
13. 폭포 [추천]
14. 끝을 거슬러
15. 들키고 싶은 마음에게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