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비디오를 보고서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버추얼 아티스트 개념이나 모션 캡쳐 기술 모두 지금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키워드지만 3분 남짓의 영상에서 이 정도로 뛰어난 퀄리티를 볼 수 있으리라 누가 상상했을까. SM 엔터테인먼트의 버추얼 아이돌 나이비스(nævis)가 발표한 데뷔 싱글 ‘Done’은 인공지능과 컴퓨터 그래픽이 현실을 혼동시키는 지금 기술 발전의 현장을 오싹하지 않게 우리 앞에 들이민다. 모델링은 에스파의 뮤직비디오와 세계관 영상 속 모습에 비해 훨씬 정교하게 진화했고, 형체를 바꿔가면서 현실 곳곳을 파고드는 모습은 묘한 쾌감도 자아낸다.
놀라운 비주얼에 비해 음악 자체는 큰 특색이 없다. 가상 세계 ‘광야’에서 악당 블랙 맘바와의 전투 이후 현실로 온 서사를 성경 속 에덴 동산 이야기에 빗대어 멋을 부렸지만, 조금씩 어색한 운율이 영어 가사의 맛을 잘 못 살리고 있어 그 결과 후렴의 웅장한 분위기도 공허하게 들리고 만다. 아마도 최대 주안점이었을, 여러 목소리를 합성했다고 전해지는 음색을 거부감 없이 처리한 것은 확실히 주목할 만한 성과이나 신기하다는 반응 이상을 끌어낼 매력은 아직 부족하다.
원래 나이비스의 데뷔곡은 ‘Welcome to my world’였다고 한다. 에스파의 디스코그래피 내에서만이 아니라 2023년 K팝 중에서도 손꼽히는 웰메이트 트랙이었음을 생각하면 ‘Done’의 평범함은 더욱 아쉬워진다. 어쩌겠나, 노래를 가져간 에스파를 탓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