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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에서 바다까지
중식이 밴드
2024

by 신동규

2024.10.15

횟집 도마 위 물고기 한 마리가 하수구에 빠져 시궁창을 지나 바다에 닿는 이야기. 그야말로 공상이자 환상이다. 하지만 세상 위 나약한 ‘나’가 끝없는 삶의 굴레에 빠져 실의의 순간을 지나 꿈에 닿는 이야기라면 어떤가. 이조차 동화라 치부하기엔 우리네 일생과 똑 빼닮지 않았나.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는 개인의 파편화 속 사람들은 날마다 날카로워지고, 가요는 그렇게 깨진 조각을 인위적으로 묶어다가 순간의 발광만을 노리는 지금, 서사가 주는 울림은 모처럼 만난 반가운 손님과 같다. 


< 슈퍼스타 K7 > 최종 4팀에 올라 화제를 모았던 2015년의 새파란 신인 밴드가 여러 우여곡절을 견디고 살아남아 10주년을 자축하는 방식은 독특하게도 직접 쓰고 그린 동명의 책 < 도마에서 바다까지 >를 발간하는 것이다. 현실은 시궁창으로, 이상은 바다로 이분화해 투박하고도 솔직한 낱말을 흩뿌린다. 또 바라는 바에 도달하려는 작은 미물의 고군분투 그 사이사이에 하나의 장을 대표하는 노래 다섯 곡을 배치한다. 곡을 연주하고 부르는 것처럼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린다. 나름 잘 짜인 음악 동화가 주는 의외의 여운이 적잖이 놀랍다. 


설계한 책과 음악의 동일화는 그만큼의 품을 들여야 한다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읽고, 듣고, 느끼고, 남기는 것까지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내밀한 저의가 모습을 드러낸다. 대중에게 갓 발매한 신곡 하나 듣게 하기도 어려운 오늘날 인디 신에서 책을 출간하고 음악을 곁들인다는 건 시대를 역행하려는 의도와 다를 바 없다. 여기서 두 가지 지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중식이 밴드도 본인들의 기획이 시장에 반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터. 그럼에도 도전했고, 회수와는 별개로 완수에 성공했다는 점은 무모하기에 앞서 창작가 혹은 예술가의 면모를 진정으로 보여줬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남은 한 가지. 음악이 책과 떨어져 자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성은 충분하다. 포크와 블루스를, 기타와 건반을 교차하며 흘러가는 다섯 곡은 별다른 특점 없이 평이하지만 중식이 밴드의 특장점인 무심한 듯 내뱉는 일상의 단어와 누구나 공감할 법한 문장이 여전히 숨 쉬고 있다. 예컨대 일전에 발매했던 ‘나는 반딧불’이나 ‘그래서 창문에 썬팅을 하나 봐’ 속 애처로움이 ‘현실은 시궁창’과 ‘썩은 나무’에 맞닿았고 드라마 주제가로 일찍이 선보인 ‘살려주세요’는 피아노 한 대만으로 특유의 보컬 톤과 어우러져 솔직한 노랫말을 부각한다. 


온갖 자극적인 콘텐츠로 얼룩진 오늘날 < 도마에서 바다까지 >의 스토리텔링은 달갑다. 고루 펴지지 못한 곡 길이가 필요 이상으로 감상 속도를 부추기고 있지만 그리 불편하지 않은 까닭 또한 여기에 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찬찬히 가사를 음미해 본 적은 언제인가. 또 오롯이 ‘나’를 위한 음악을 찾아본 마지막 기억은 언제였나. 두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기엔 여유를 잊은 채 스스로를 지우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식이 밴드의 신보는 그리 긴 시간은 아닐지라도 잠깐의 환기를 위한 적절한 재료가 된다.


-수록곡-

1. 현실은 시궁창 [추천]

2. 새들의 응원가

3. 시궁창에서 만난 새 [추천]

4. 살려주세요 [추천]

5. 썩은 나무

신동규(momdk7782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