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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ha
사비나 앤 드론즈(Savina & Drones)
2024

by 손민현

2024.10.17

아름다운 고행은 필시 뜨거운 눈물을 동반한다. 집중하지 않는다면 우울한 심상에 잡아먹힐 수도 있으나 유심히 글자를 바라보고 깊게 음성을 느끼면 < Lasha >가 운반하는 선율과 의미가 곧 후련한 종착지에 다다른다. 그간 아주 가끔 목소리를 비춘 사비나의 신작을 우리는 왜 기다렸는가. 현악기의 불안한 떨림에서 비롯되는 실험적인 사운드, 독특한 음색, 깊은 곳을 찌르는 가사, 그러면서 동시에 또 무겁지 않은 모순. 이 초연한 음악인에게 붙는 여러 수식어의 존속을 확인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돌아온 이는 역시 알쏭달쏭한 베일에 싸인 모습이다. 첫 관문을 열기 위해 이국적인 언어를 번역해 보면 사비나는 싱어송라이터 최민영의 세례명을, 드론즈는 내밀하게 울리는 악기 시타르의 떨림을 뜻한다. 게다가 ‘Lasha’는 옛 성서에 기록된 가나안 땅끝의 지명으로 쓰였던 잊힌 단어다.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니 결국 이 구도자는 회색빛 일상에서 벗어나 소리를 떠다니며 알 수 없는 한계선 ‘라샤’를 찾는 길을 그렸다. 사비나 앤 드론즈를 듣는 행위가 험난한 순례길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고요한 공명을 호출하며 의식이 시작된다. 인트로 ‘Lasha’는 관현악단이 본격적인 연주를 앞두고 거행하는 튜닝과 같은 통과의례다. 곧이어 편안한 화성으로 진행되는 ‘아무도 모른다’가 조용히 내면의 세계로 유도하고, ‘귀머거리 인생’은 뮤지션에게 내려진 청각 장애라는 두려운 선고를, 이를 견뎌낸 시간을 피부에 와닿게 그린다. 거행하는 이에게는 일종의 사운드 테라피고 동행한 이들은 타인의 수양을 감상하며 엄숙히 홀로 될 기회를 잡는다. ‘그렇게 살아가, 사비나’하고 자기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어른이 되면’에 닿으면 이 짧은 제례는 종료된다. 

이후로는 분위기를 뒤바꾸며 현실로 돌아온다. 해외 인디 팝 스타일의 ‘Delulu world’나 정제되지 않은 녹음을 의도해 자연미를 끌어낸 ‘Coke & holiday’는 중도하차를 직감한 사람들의 발길도 쉽게 붙잡는다. 시작은 데뷔 때의 축축한 습기와 닮았지만, 이후로는 밴드 셋과 함께 따뜻해진 < 우리의 시간은 여기에 흐른다 >에 가깝다.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밝힌 것처럼 자연스러운 팝 지향성이 나타난 것이다. 이 대중 대상 주술도 분명 매력적이지만 1990년대의 몽글몽글한 향취가 담긴 ‘사랑은 언젠가 끝에 닿아’나 ‘크리스블루스마스’로 ‘Lasha’에서 완전히 멀어질 때는 정체 모를 아쉬움과 허전함이 밀려든다. 

고민이 많은 새벽 정취를 느끼며 상념에 빠지기에 충분하다. 동시에 사비나의 편안한 멜로디를 편히 재생할 수도 있다. 단 한 순간에 가슴에 먹먹함을 새긴 보컬이 재차 흔적을 남길 때까지 걸린 시간은 30분 남짓이었다. 간호사와 뮤지션을 겸업하며 끝을 찾아 8년을 헤매고 갈망하던 이는 그 경계의 시공간을 < Lasha >라 정의하고 스스로 가장 사랑하는 이상향, 음악에 고이 남겨두었다. 이 외로웠던 여행기를 보니 결론은 없는 것으로 보이나 앞으로도 쭉 걸어갈 힘은 확실히 느껴진다. 기다림의 시간만큼 후련한 분출이다.

-수록곡-
1. Lasha [추천]
2. 아무도 모른다 (Nobody knows) [추천]
3. Butterfly, down in me
4. 귀머거리 인생 (A deaf life) [추천]
5. 어른이 되면 (Prelude)
6. Delulu world [추천]
7. Coke & holiday
8. Still
9. 사랑은 언젠가 끝에 닿아 (Where all loves end)
10. 크리스블루스마스 (ChristBlue’sMas)
손민현(sonminhyu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