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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ight The Zombies Came
픽시스(Pixies)
2024

by 김태훈

2025.01.07

픽시스는 꾸준하기에 환영받지 못하는 비극에 빠진 밴드다. 2014년에 발매한 복귀작이자 5번째 앨범이었던 < Indie Cindy >부터 잘못 꿴 첫 단추 취급을 받아버린 탓이었을까? 1990년대 전성기 시절보다 긴 활동기간을 지내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킴 딜이 베이스를 잡고 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함과 동시에 현재의 픽시스를 향해서 비판과 조소를 남긴다.


킴 딜의 강렬한 코러스와 베이스 라인, 그리고 지금의 그들에게는 없는 젊은 광기가 도사리는 초기작들이 비교 대상이니, 야속한 시간의 흐름에 의해 안타깝게 풍화된 개성만이 남은 후기작들은 상대적으로 떨어져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픽시스는 계속 음악을 만든다. 누군가가 이미 죽은 밴드라고 손가락질할지언정 그들은 죽어가는 모습의 좀비들처럼 손을 뻗어 삶을 갈망하며 노래한다.


새로운 베이시스트 엠마 리처드슨과 함께하는 10집 < The Night The Zombies Came >은 후기 픽시스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걸작 < Doolittle >의 역동적인 광란은 세월에 의해 사라졌지만, 차분하고도 육중한 무게감과 진중함은 시간에 의해 점점 깊어진다. 첫 번째 트랙 'Primrose'는 그 묵직하고도 깊은 맛의 픽시스를 증명하는 환상적인 오프닝이다.


선명한 멜로디를 만드는 능력과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만큼은 여전하다. 'You're so impatient'는 탄탄한 기타 리프와 간단하면서도 강렬한 훅으로 약간이나마 과거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반대로 음울한 분위기가 가득한 'Chicken'은 죽음을 맞이하는 자의 공포와 무력감이 전체적인 구성에 잘 녹아있으면서도, 삶을 갈망하는 처절한 순간의 황홀함을 놓치지 않는다.


특별한 기교가 없고 저음역에서 고요하게 읊조리는 듯한 블랙 프랜시스의 보컬은 애처로운 순간을 노래하는 픽시스의 음악을 지탱하는 핵심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Primrose'나 'Hypnotised'처럼 차분하거나 몽환적인 트랙에서만 빛을 발할 뿐, 안타깝게도 'Oyster beds'처럼 강렬하게 질주하는 곡에서는 오히려 조화롭지 못해 다른 의미의 애처로운 순간을 만들어버린다. 활기를 되찾자니 어색하고, 멜랑꼴리한 모습들은 숱한 재생산에 의해 진부함을 노출한다. 이것이 픽시스가 현대에 당면한 딜레마이며, 결국 이번 작품에서조차 이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된다.


서정적이면서도 기괴한 작법의 유지, 부실하지 않은 밴드의 합 자체를 확인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장 긍정적인 후기 픽시스 작품이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그들의 최선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13곡이라는 적지 않은 볼륨임에도 초반부 트랙의 번뜩이는 순간들이 빚어낸 활력은 금세 사그라들고, 마지막 곡 'The Vegas suite'에 도달했을 때는 좋지 않은 무력감만이 맴돈다. 죽지 않는 창작력과 삶에 관한 진중한 고찰의 깊이 자체는 여전히 가치가 높지만, 그것은 그저 밴드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어떻게든 굴러갈 수 있게끔 만드는 기본 동력일 뿐, 그 이상의 새로운 무언가를 빚을 수는 없다.


< The Night The Zombies Came >은 과거의 영광을 억지로 재현하거나 파격적인 변혁을 시도하는 대신, 그저 자신들의 삶과 음악이 흘러가는 대로 두기를 선택한 결과를 보여준다. 이를 보고 도태된 것, 이미 죽은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이 새롭게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좀비의 삶은 과연 무의미한 것일까. 그렇게 픽시스는 음악의 살갗이 뜯어지는 와중에도, 심장이 멈추기 전까지는 계속 움직일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세상을 바라보며 여전히 본인들만의 록을 연주한다.


-수록곡-

1. Primrose [추천]

2. You're so impatient 

3. Jane (The night the zombies came)

4. Chicken [추천]

5. Hypnotised 

6. Johnny good man

7. Motoroller

8. I hear you Mary

9. Oyster beds

10. Mercy me

11. Ernest Evans

12. Kings of the Prairie

13. The Vegas suite

김태훈(blurrydayon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