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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igo Pt.1
플레이브(PLAVE)

by 한성현

2025.02.22

익숙한 K팝의 공식이 초토화된 2024년이었다. 작년 최대 히트곡 중 하나였던 ‘고민중독’의 QWER이 인터넷 방송이라는 출신지와 밴드 형식으로 걸그룹의 고정관념을 흔들었다면 남자 아이돌 쪽에서는 플레이브를 빼놓을 수 없다. 실제 인물 대신 디지털 모델링만을 만날 수 있는 이 5인조 버추얼 그룹은 시상식부터 콘서트까지 각종 무대를 누비며 현실 인물과 2D 캐릭터 간 수요의 교집합을 채웠다. 그 결과 플레이브의 팬덤 화력은 가히 임영웅에 비견될 정도다.

외양은 혁신적이나 중심은 가창이다. 화면 뒤 ‘본체’의 신원은 대외비지만 꽤 오래 경력을 쌓아온 이들이 모인 팀답게 평범한 스타일에서도 높은 소화력을 보여준다. 오프너 ‘Chroma drift’가 대표적인 예로, 꾸준히 생산되는 시티팝 류의 퓨전 재즈 트랙이나 세밀한 통솔하에 곡에 스며드는 보컬이 남다른 깊이를 더한다. 정통적인 알앤비 발라드 ‘Island’를 듣고 있으면 이들의 캐릭터는 아이돌보다 2000년대 ‘얼굴 없는 실력파 가수’ 쪽에 더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정작 타이틀곡 ‘Dash’의 포지셔닝이 애매하다. 멈칫대는 일렉트릭 기타와 치솟는 단조 선율로 록 오페라처럼 설계한 구성이 돋보이나 형식에 부합하는 스토리텔링이 부족한 탓이다. 별다른 맥락 없이 의지를 불태우는 문장만이 가사를 채우고 있어 서사적으로 몰입할 장치가 부재하고, 따라서 난해하더라도 ‘광야’를 주입해 학습 욕구를 일깨운 에스파의 선례와 달리 세계관 탐구의 유인책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게임 시네마틱 영상 같은 뮤직비디오를 보면 이는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통합적 콘텐츠가 되고자 하는 순간 플레이브의 구성요소에서 음악은 철저히 뒷전이 된다.

플레이브를 향한 대중의 시선에는 경계심이 많이 깔려있다. 버추얼 가수 개념이 아직 낯선 탓도 있으나 팀이 대체 어떤 존재로서 접근하려는지 명확한 설득의 논조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 Caligo Pt.1 >은 ‘가수’로서 인정받으려는 욕구와 새로운 오락적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는 야심 간 우선순위 설정에서 헤매고 있는 음반이다. 양립이 어렵다면 각 노선의 길이 통일이 필요하다. ‘Pump up the volume!’ 급의 인사이드 조크는 곤란하지만 이왕 험난한 길이라면 뻔뻔하게 걷는 게 좋지 않겠는가.

-수록곡-
1. Chroma drift [추천]
2. Dash
3. Rizz
4. Island [추천]
5. 12:32 (A to T)
한성현(hansh9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