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지니어스’, 브라이언 윌슨(1942 - 2025)

브라이언 윌슨(Brian Wilson)

by 박수석

2025.06.22

2025년 6월 11일 역사에 남을 천재가 눈을 감았다. 대중음악계에 등장한 내로라하는 인물 중에서도 브라이언 윌슨은 가장 빛나는 별 중 하나였다. 전설적인 그룹 비치 보이스의 알파이자 오메가로서 활동하며 새 시대를 연 한편 개인적 삶은 찬란한 재능처럼 마냥 빛난 것은 아니었다. 정신적 고통에 짓눌려 은둔 생활을 하기도 해 단순히 ‘뛰어난 음악가’라고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우여곡절 많은 삶을 겪었다.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들을 남긴 업적을 기리며 굴곡만큼이나 깊은 흔적을 남긴 그와 비치 보이스의 유산을 되짚어 본다. 




브라이언, 데니스, 칼로 이루어진 윌슨 삼 형제는 태양이 가득한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호손에서 자랐다. 작곡가였던 아버지의 가혹한 교육 방식은 어린 형제들에게 학대나 다름없었지만 브라이언은 사중창단 포 프레시맨(Four Freshmen), 조지 거슈윈 등을 들으며 꿋꿋이 음악적 역량을 키워나갔다. 1961년 윌슨 트리오와 사촌 마이크 러브, 브라이언의 고등학교 동창인 앨 자딘이 합류해 5인 구성을 갖춘 뒤 내놓은 첫 싱글 ‘Surfin’’은 빌보드 핫 100에서 75위를 기록하며 비치 보이스의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서프 뮤직이었지만 달랐다. 해변의 설렘을 담은 멜로디와 가슴 뛰는 리듬, 결정적으로 캘리포니아의 햇살처럼 따뜻하게 퍼지는 보컬 하모니. 이들은 아슬아슬한 서핑을 묘사하는 속도감을 여유롭고 낭만적인 해변의 이미지로 치환했다. 이에 대중적 인기는 자연스레 따라왔다. ‘Surfin’ safari’, ‘Surfin’ U.S.A’, ‘Surfer girl’이 각각 싱글 차트 14위, 3위, 7위로 모두 히트하며 뜨거운 성공 가도를 달렸고, 1964년부터 시작된 영국 밴드들의 침공 속에서도 ‘I get around’, ‘Help me, Rhonda’가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탈환하며 자존심을 지켰다.




뛰어난 상업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브라이언 윌슨에게는 위대한 예술에 대한 욕구가 가슴 한편에 타오르고 있었다. 비틀스는 이 갈망에 불을 지폈다. 결정타는 < Rubber Soul >이었다. 1966년, 한창이던 투어마저 하차하고 홀로 작업실로 들어간 그는 희대의 역작 < Pet Sounds >를 빚으며 대중음악의 무게중심을 ‘스테이지’에서 ‘스튜디오’로 끌고 왔다. 프로듀서 필 스펙터의 ‘Wall of sound’ 기법, 같은 음을 겹치는 더블 트래킹(Double Tracking)으로 켜켜이 쌓은 소리의 두께, 일렉트로 테레민 등 다양한 악기의 활용, 앨범 단위의 주제 의식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리고 이 혁신은 비틀스의 다음 걸작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의 제작을 재차 촉발, 이들의 치열한 명반 랠리는 시간이 지나도 열화되지 않는 거대한 이정표를 남겼다.


빛이 강할수록 이면의 어둠은 짙어지듯, 눈부신 개화 뒤에는 끝 모를 붕괴가 따라왔다. 싱글 ‘Good vibrations’를 시작으로 새 앨범 < Smile > 제작에 착수했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전작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마약 의존도가 늘어나면서 정신 건강은 갈수록 악화됐다. 해변의 느낌을 살리려 녹음실에 모래를 채우면서까지 영감을 받고자 했던 일화는 ‘천재’라는 수식어가 준 압박감을 가늠케 한다. 결국 프로젝트는 무산되었고 이후 그는 심리치료 주치의에게 금전적, 정신적으로 착취 당하며, 1990년대 들어 주치의를 완전히 떼어놓을 때까지 힘든 시간을 보냈다. 중심축 없이 활동을 이어간 비치 보이스도 1988년 ‘Kokomo’로 22년 만의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달성했으나 전성기만큼의 영광을 찾지는 못했다.




건강을 회복한 브라이언 윌슨은 비치 보이스와 솔로 활동을 병행하며 미완으로 남은 < Smile >을 < Brian Wilson Presents Smile >(2004)과 < Smile Sessions >(2011)로 마무리해 기나긴 한을 풀었다. 파란만장. 만 길 높이로 이는 물결에 올라타기도, 힘없이 휩쓸리기도 했지만 그는 언제나 음악만을 생각했고, 그 파도에 부딪히며 써낸 곡들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위로를 주었다. 그도 하늘에서는 짐을 내려놓고 이제는 편안하게, 또 즐겁게 음악을 즐기고 있기를 염원한다.

박수석(pss10527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