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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os
이찬혁
2025

by 정기엽

2025.07.28

명석한 선택과 집중 그리고 창의력에 박수를. 대중가수 이찬혁이 예술을 빚어내는 방식을 렌즈에 투과했을 때 더 반짝이던 < Error >와 다르게 < Eros >는 작품성 그 자체로 명쾌한 총성을 울린다. 하고픈 말이 참 많던 본인을 네 갈래로 찢어 악뮤, 밴드 바보, 이찬혁비디오 등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해소한 덕에 한층 명료해진 것. 직관적인 아름다움을 띤 음악의 감정가는 치솟게 마련이지 않나. 첫 솔로에 이어 죽음을 소재로 파생된 감정에 집중함과 동시에 발전을 이룩한 2집은 청중을 압도한다.


신스팝과 콰이어(Choir)의 합창, 전작의 하이라이트와 피날레인 ‘파노라마’와 ‘장례희망’을 적절히 배합해 청각적 희열을 곳곳에 흩뿌린다. ‘Sinny sinny’는 이찬혁의 사망을 두고 사진이나 찍어대던 ‘목격담’ 속 수많은 인물 중 숨겨진 정상인 하나, 그의 혼란한 내면을 코러스로 풀어낸 최고의 오프닝이다. 가스펠의 탁월한 이용은 ‘TV show’에 지속돼 가사 속 ‘슬픔을 가리는 화장’의 역할이 되고, 연이은 ‘멸종위기사랑’에서도 오히려 이찬혁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며 본작이 제시하는 위기론에 음악 효과를 더해 표현한다. 개인과 인류에 걸친 암담함을 명랑한 춤사위에 흘려 보내는 아이러니가 예술성을 드높인다.


진정한 사랑은 존재할까? 이 물음에 유감을 표하는 ‘비비드라라러브’는 이번 앨범을 도사리는 장르, 주제적 맥락을 가장 효과적으로 담았다. 솔로 커리어 전반에 걸쳐 1980년대 신스팝 사운드 연구를 이은 끝에 펼친 쇼는 위대하다. 가창이 표구하는 밤 분위기와 베이스 슬랩 등 변주가 듣는 이들의 상흔을 자극한다. 마이크를 타고 흐르는 허무는 밝은 멜로디에 파묻혔지만 그렇기에 더 슬프다. 후회를 골자삼은 ‘파노라마’와 함께 회한을 절실히 체감케 하는 현장이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게 인간, ‘Eve’는 영원을 논하며 상반된 감정을 그린다. 폭죽이 터지는 양상 속에 비극을 노래한 전반과 달리 차갑게 식은 연주 위 기대를 속삭인다. 귀를 찢을 기세로 달려들던 코러스도 기운을 가라앉히고 유일하게 포근한 사운드가 넘실대며 주제를 관통하는 역설이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고 설득력 있게 고개를 꺾는다. 3년 전 수록곡 ‘내 꿈의 성’ 속 다짐이 아직 견고하다는 듯 ‘Andrew’를 배치했다. 괴물 취급 받는 소년 이야기가 진부하지 않게 들리는 힘은 이찬혁의 캐릭터가 지나온 몰이해와 무례에 대한 대중의 인지에 있다.


세상이 허세 덩어리 취급하던 때 < Error >를 발표하고, 3년이 채 안 되는 시간동안 그들을 매료시켰다. < Eros >의 명명에는 이런 배경이 녹아 있지 않을까. 천사의 행색도 결국 사람으로부터, 결점을 고백하며 ‘빛나는 세상’으로 문을 닫는 35분은 소설의 감동에 닿았다. 에로스는 필연적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자, 이찬혁은 세상의 무지를 자신의 혜안을 담은 본작을 통해 전도했다. 절망과 희망이 5:4 비율로 뒤섞인 이 앨범은 실의의 무게를 조금 더 크게 안은 채 희극으로 나아간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오. (마태복음 5:4)”

죽음이 그를 둘러싼 타인에게 다양한 감정을 파생시키듯 < Eros > 또한 여러 생각을 잉태한다.


-수록곡-

1. Sinny sinny [추천]

2. 돌아버렸어

3. 비비드라라러브 [추천]

4. TV show [추천]

5. 멸종위기사랑 [추천]

6. Eve [추천]

7. Andrew [추천]

8. 꼬리

9. 빛나는 세상

정기엽(gy24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