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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주와 생활
전자양
2025

by 신동규

2026.01.13

이 바닥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는 작금의 입방아 속 청춘을 마치 자신의 직업이자 밴드의 소양처럼 대하는 경우를 목격한다. 시대가 변한 만큼 K팝 문법의 수용도 눈에 띄게 늘었다. 아무렴 좋다. 그러나 그 토대 위에는 수없이 지워진 이름과 역사가 존재한다. 그러니 정작 밴드 신을 떠난 적 없는 이들은 어리둥절할 법도 하다. 조명을 나눠 갖지 못한 아쉬움은 이미 오래전 이야기, 지면이 좀 평평해졌다는데 이제 와 헤딩을 하자니 병원비 걱정이 앞선다. 일찌거니 터전을 닦아온 선배는 기꺼이 등 뒤의 후배를 향해 박수를 보내며 말한다. “달라진 건 없다. 여전히 합주, 그것이 우리의 생활이다.”


8년 만에 선보인 네 번째 정규 앨범 < 합주와 생활 >은 언제나 주먹을 꽉 쥐고 있어야만 강한 것은 아니라는 격언의 실현이다. 깊이는 유지하되 선율에 집중해 난도를 낮췄고, 이는 곧 대중을 겨냥하며 전작 < 던전 >과 차별점을 낳았으니 이 모든 성과에는 이해하기 쉬운 생활형 노랫말이 주효했다. 이를테면 ‘합주’와 ‘드라이브’의 연계가 그렇다. 나아가 ‘같고도 다르게 정성을 다하여 정해진 것을 한다’로 시작해 ‘늘 생활에 기쁨만, 슬픔만 있진 않겠지’라며 주제 의식을 비춘다. 누군가 거친 소리를 내뿜으면 다른 이가 정결하게 감싸주며 평행을 그리는 전개와 그 위에 앉은 둥근 낱말은 꼭 음악가가 아니어도 공감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유치와 재치의 경계를 기분좋게 넘나드는 '해피밀'까지의 입담. 어쩌면 부끄러울 수도 있는 자기들만의 장면을 가감 없이 드러낸 햇볕 질주를 지나 맞이한 터널은 그 자체로 시원하다. 구태여 어둠에 웅크리진 않는다. 짧은 폭에 양 끝의 광명이 멀지 않으니 땀을 식힐 장소로는 제격, 1980년대 엄청난 흥행을 일군 영화 시리즈 < 고스트버스터즈 >의 유쾌한 공포와 닮은 구석이 있다. 마침 해당 작품의 주연을 맡았던 배우 빌 머레이의 이름을 빌린 동명의 트랙은 포스트 펑크에 기대 ‘합주’와 ‘생활’ 이면의 자아를 그린다. 밤을 살기 위해 낮의 고단함을 이겨내는 서사는 물론 선공개 싱글 ‘경주’의 후반부는 베테랑이 된 자신을 향한 주문이자 그간의 지지자에게 보내는 감사 인사에 가깝다.


올해는 데뷔작 < Day Is Far Too Long >이 발매 25주년을 맞은 해다. 이종범의 원맨 밴드 시절, 홀로 완성한 1집은 양적 불리에 갇혀 도달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던 사운드메이킹의 예상치 못한 월반이 담긴 한국 인디 흐름의 중요한 기점이다. 포크와 전자음악의 교차, 슈게이즈와 팝의 배열, 홈레코딩의 선구적 요소 등 갖가지 성과 뒤 잇따른 음반들은 이전의 선택을 탈피하려는 듯 보였고, 이는 끝내 구성 자체의 변화를 유도했다. 9와 숫자들의 기타리스트 유정목, 브로콜리너마저의 드러머 류지, 여러 밴드의 세션으로 이름을 알린 베이시스트 전솔기와 손을 잡고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 것이다. 비록 흘러간 시간을 인정하며 패배를 전제하고 출발한 여정이었지만 어느새 농익은 정수가 빛난다.


나는 나만의 것을 할 뿐이고, 우린 우리만의 것을 할 뿐이다. 모두가 알지만 실천하긴 어려운 명제 위로 세월이 선물한 간결함에 두 손을 든다. 비관과 체념으로 귀결되는 자해적 우울 선언과 무조건적 젊음 장사에 안주하는 다반사의 오늘. 먼저 길을 떠난 이들의 무던한 형상이 시장의 공백을 채우고, 뒤따라오는 별들의 길라잡이로 기능한다. 물론 밝음이 매 정답은 아니겠으나 음의 전제는 양에 있음을 일깨우는 기상의 음악과 같다. 조언하려 들지 않으려 일부러 돌린 그들의 고개에 눈을 맞추자 반가움과 일을 향한 애정이 동시에 비친다. 평범한 절대다수의 어제를 닮은 합주의 힘이 내일을 향한 동력으로 분하고 있다.


-수록곡-

1. 합주 [추천] 

2. 드라이브 [추천] 

3. 해피밀 [추천] 

4. 잘 몰라

5. 빌 머레이 [추천]

6. 경주 [추천]

7. 티셔츠

8. 은행강도

9. 생수


신동규(momdk7782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