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의 완성도가 선명하니 변형 또한 자유롭다. 시장이 확인한 문법을 멀리하지 않는 동시에 대중에게도 낯익은 소리를 끌고 와 전자음악을 변주의 방식으로 무기 삼아 휘두르는 모습은 기다림 속에 피어난 첫 정규 음반이라는 가치를 부각한다. 빌리에게 자기 색을 찾기 위한 모험의 시간은 충분했다. 이제는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기보다는 발견한 강점을 장착할 시기, 상업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분기점을 맞아 빛을 기다리는 일에 그치지 않고 조명을 찾아 나서길 택한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샘플링한 머리곡 ‘$ecret no more’는 세기말 신화의 ‘T.O.P.’를 곧바로 떠올리며 선택 자체로는 새로울 것 없지만, 잇달아 유려한 멜로디를 내세우며 인트로 트랙으로서의 임무를 완수한다. 후반부 전개는 되레 레드벨벳 특유의 명암 대비를 닮아 자신만의 세계관을 발밑에 둔 빌리의 이력과 보폭을 맞춘다. 결국 첫발은 익숙한 잔상에 집중했다는 점은 ‘Zap’의 존재가 보다 강렬히 와닿는 까닭이다. 후렴과 절을 명확히 나눈 선택과 달리 구성원 간의 역할에는 경계를 두지 않으며 하나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일제히 기능하는 운동성을 드러내고, 잘 다듬어진 사운드 퀄리티는 이 모든 골조를 지킨다.
고전의 어깨를 빌린 처음을 지나 ‘Zap’과 ‘Work’의 연계는 본 방향성의 핵이다. 제목뿐만 아니라 형상 자체로도 리한나의 동명 히트곡과 유사한 구석이 많으며 에스파의 ‘Whiplash’가 겹쳐 보이는 등 질감 위주의 시선이 빛난다. 그럼에도 < The Collective Soul And Unconscious: Chapter Two >의 정수는 단연 리믹스라고 할 것이다. ‘Zap’의 그것을 넓힌 결과물은 원 장점을 유지한 채 음향의 확장을 이루며 그룹의 정체성을 지키는 한편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하기에 충분하다. 이외의 얼굴은 걸어온 길을 되짚듯 신선함보다는 손익은 편곡으로 일관하고, 리믹스 넘버와 그렇지 않은 곡 사이 울타리가 명확해 앨범 단위로서의 유기적 고루함 또한 분명하나 각 곡의 완성도가 견고하니 쉽게 흔들리지 않음은 위안이다.
실험과 도전 끝에 이들이 얻은 결론은 결국 답은 음악에 있다는 사실이다. 콘셉트와 세계관은 겉을 포장한 일종의 서사일 뿐이었고, 소신과 재치로 부각된 인상은 한때의 흐름에 지나지 않는다. 그룹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직접 팀명을 연호하는 방식으로는 실효가 적다. 언제나 시장은 소외자를 남겨둔다지만, 여전히 우리는 좋은 음악을 던진 아티스트에게는 비로소 조명이 비춘다는 점을 믿어야 한다. 빌리의 항해는 스스로 둔 자충수와 예기치 못한 주변 입지에 꽤 자주 흔들려왔으나 난파된 적도, 제자리를 표류한 적도 없다는 점에서 안정을 찾은 정박의 기운이 맴돈다. 이번 신보는 전력이야 어쨌든 음악으로 승부를 보려는 노골적 본질 투쟁의 승리다.
-수록곡-
1. $ecret no more
2. Zap [추천]
3. Work [추천]
4. TBD
5. B’yond me
6. Soupasta [추천]
7. Off-air
8. Zap (Ultraviolet Remix) [추천]
9. Work (Anonymous Remix)
10. Soupasta (Unconscious Remix) [추천]
11. Domino ~ butterfly effect
12. Cloud palace (Collective soul Remix)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