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함은 늘 미덕이지만 유독 힙합에서는 가중치가 더 붙는다. 긴 공백 끝에 지지부진해지는 경우가 많으니 차라리 성실한 출석을 높게 쳐주는 판이다. 2026년 '올해의 허슬러' 유력 후보는 < 고등래퍼 4 > 우승자 출신 트레이드 엘이다. < Love Maze II >로 연간 일정을 시작한 그는 앰비션 뮤직 레이블 입단 후 발표한 정규작 < Aurora >와 본인의 생일에 공개한 < Baby Cactus >로 디스코그래피를 빼곡히 채웠다.
열 곡에 달하는 분량에도 겸손하게 EP로 명명한 신보를 가리켜 아티스트는 스스로에게 보내는 선물이라 설명한다. 가사로는 짐작하기 어렵다. 이별의 고통과 음악인으로서의 허무함을 겹쳐 놓은 'Bucket list'처럼 이따금 변주가 있지만 그마저도 찬조 출연한 크러쉬의 몫일 뿐, 상당수는 구애 일변도다. 물질적인 과시욕과 은근하지 않은 성적 묘사까지 더해지니 가벼운 기획에는 오랜 전형성이 자연스레 따라붙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펙트를 많이 입힌 트레이드 엘의 래핑은 정확한 독해에 제약을 두고, 이는 역설적으로 음반의 무게에 부합하는 감상 방식을 정해준다. 표면 위주로 훑으면서 듣는 것이 적합한 음악인 것이다. 소프트 보이 모드에 전면 돌입하는 후반부가 특히 그렇다. 여성 보컬과의 듀엣은 사실상 게스트를 띄워주는 지지대 역할을 수행하며 'TT'는 원슈타인의 음색에 더 어울린다는 인상이 강하지만, 꼭 주인공이 전권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린다면 별다른 죄책감 없이 즐겨도 무방하다.
양으로 승부하기를 결심한다면 관건은 카테고라이징이다. 들뜬 무드가 지배적인 < Love Maze II >, 재지한 편성에 음울함이 밴 < Aurora >와 구분점을 명확하게 두고 있으니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가치는 엄연히 존재한다. 비록 그 결정 요소인 진한 오토튠이 솔로 트랙과 협업 넘버의 격차를 지나치게 벌리긴 하지만, 때로 포지션상 깐깐한 잣대가 불필요한 음반도 있다. < Baby Cactus >가 딱 그렇다.
-수록곡-
1. Counting up
2. Bucket list (Feat. Crush)
3. Empty avenue
4. Fast & furious (Feat. 김상민그는감히전설이라고할수있다)
5. Bubble gum (Feat. 김상민그는감히전설이라고할수있다)
6. 1-2-3 (Feat. 민지운) [추천]
7. Strawberry snow (Feat. SUNNA) [추천]
8. TT (Feat. 원슈타인)
9. S l o w m o t i o n
10. 방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