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 그룹 10년이 쉬운 일은 아니다. 몇 차례 소속사 변경과 구조조정 등 어떤 상황이 닥쳐도 꿋꿋한 프로미스나인의 롱런 비결은 오히려 단순한 접근법에 있었다. 이 원색의 화신들은 복잡한 세계관 따위는 웃어넘길 줄 알고 파스텔 톤 Y2K 열풍에 물들지도 않는다. 모두가 신무기 경쟁이 한창일 때 이들은 해안가로 휴가를 떠나듯 솔직한 비주얼 어필과 쭉 뻗는 고음, 당당한 계절의 사랑 이야기로 언제나 무대에서 상쾌한 형상을 내보인다. 과열된 K팝 자유 경쟁 시장에서 어딘가 편승하지 않고 버틴 것만으로도 이미 생존 증명은 끝났다.
새 소속사에서 발매한 이번 정규 앨범은 쌓은 이미지를 노골적으로 강화하면서도 정작 뼈대인 프로미스나인 음악의 방향을 짚지는 못했다. 아이돌치고 주기는 긴 편이었지만 과거 결과물에 힌트가 없지도 않았다. 펑크(Funk) 한 방울로 복선을 쌓고 극적 쾌감을 터뜨리던 ‘We go’와 ‘DM’ 등 싱글은 생생한 현실감을 부여했고, 소곡집 < Midnight Guest >와 < From Our Memento Box >는 준수한 맵시를 뽐냈다.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그룹에 얽힌 이해관계 탓에 우선순위가 밀릴 수밖에 없음에도 이뤄낸 성과다. 타이틀은 약해도 플럭 사운드와 그윽한 음색을 버무린 < Unlock My World >도 작품 전체의 통일성과 기본적인 완성도는 놓지 않았었다.
이지 리스닝과 전자음악이 양립한 K팝 난세 속 < Glow Me >에 흩어놓은 전략이 기존의 프로미스나인을 세심하게 고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들이 장기로 삼는 꽉 차고 쨍한 발성에 어울리는 곡 매물을 구하기 어렵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중심인 ‘Vitamin me’부터 부산스럽다. 메인 멜로디가 아닌 뒤이은 두 개 주제로 분산된 후렴, 보컬의 강점을 뽐내기 위해 남겨둔 구간이 집중을 흐린다. 온도감은 유지한 채 선명도만 낮춘 ‘Pocket treat’의 목소리도 전면에 있지만 배경음이 계속 치고 나오고, ‘Screen time’에서는 구성의 획일성마저 자욱하다. 장르나 사운드 소스에 시도는 많지만 사용과 배치의 의도는 찾을 수 없다.
다행히 몇몇 해결책은 현재를 인식하며 앞길을 바라본다. 이전 입소문 타던 ‘Rewind’와 같은 수록곡의 힘을 일부 재현했다. 첫 곡의 에너지와 아련함을 동시에 품은 ‘Eternal’은 기대감을 서서히 주입하며 순서상 제 역할을 다하고, 묘한 어른스러움이 묻어난 ‘Blue heart’는 서늘한 비트와 가성의 조합이 뜻밖에 수수한 매력을 전한다. 다섯만 남은 멤버를 툭 나눴을 때의 정돈 상태도 좋다. 메인보컬 없이 복고로 돌아간 ‘Cold blood’는 새롭게 부담 없는 맛을 내는 트랙이 되었고, 기타 리듬 위 송하영과 박지원 둘만의 가창 표현력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Why do I cry?’는 증명된 공식을 무난하게 풀어낸다.
부피를 가득 채운 정규 앨범 전면전, 그 마음가짐과 용기는 가상하다. 그러나 앨범의 밀도까지 쟁취하기에는 혈기만으로 부족했다. 완전한 증축도 재설계도 불가한 딜레마까지 안고 있으니 ‘여름’ 키워드의 반복 사용과 여기 잘 붙는 곡들로 꾸린 안전한 선택도 심정적으로 이해는 간다. 좋은 원료를 수급할 능력을 어느 정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설계사의 의도가 음악에서 비치지 않고 임시방편에 머문 점은 못내 서운하다. 인지도와 체급은 데뷔 이래로 꾸준히 우상향이니 기회는 남아 있다. 시련은 있어도 우직한 길을 스스로 이탈한 적은 아직 없으니.
-수록곡-
1. Eternal [추천]
2. Vitamin me
3. Pocket treat
4. Blue heart [추천]
5. Screen time
6. Teacher
7. Cold blood [추천]
8. Why do I cry?
9. Day 1
10. Wonderla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