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무조건 달라야한다는 강박관념은 아티스트를 좀먹는다. 쿡스(Kooks)는 그러한 강박관념에서 자유로워 보인다.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킹크스(Kinks), 블러(Blur), 멀리는 비틀즈에게서까지 영양분을 섭취한 음악은 말할 것도 없고, 밴드이름과 < Konk >라는 앨범타이틀조차 까마득한 선배들의 것이다. 데이비드 보위의 < Hunky Dory >앨범에 'Kooks'라는 곡이 있고 'Konk'는 킹크스의 리더 레이 데이비스(Ray Davies) 소유의 스튜디오다. 이들의 음악은 현재 개러지록 리바이벌이라는 이름 아래 맹위를 떨치고 있는 일군의 밴드들과 비교해보아도 별다른 점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토록 신세대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멜로디가 좋다. 아무리 비트 제조능력이 음악적 재능의 모든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요즘의 전자음악 홍수 속에서도 멜로디는 여전히 좋은 음악을 판가름하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요즘 들을 음악이 없다고 푸념하는 것은 멜로디가 잘 들리는 곡이 없다는 말과 다름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쿡스는 기본은 지키고 있는 셈이다. 더 나아가 그 멜로디는 결코 어렵지가 않다. 쉽게 따라부를 수 있는 멜로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장점이라 할만하다. 앨범의 원투펀치 'See the sun'과 'Always where I need to be'는 여실히 그것을 증명한다. 특히 장난기 가득한 코러스와 어린 데이비드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능청스럽게 곡의 흐름을 잘 타는 루크 프릿처드(Luke Pritchard)의 보컬연기가 작렬하는 'Always where I need to be'는 한동안 귓가에서 계속 맴돌 것 같다. 이어지는 'Mr. Maker'는 카운터펀치다. 찰랑대는 기타톤이 싱그러운 이 곡은 비틀즈의 흥겨움을 닮았다. 또한 속물적인 인간에 대한 적당한 조소는 블러(Blur)의 'Charmless man'을 연상시킨다. 차분한 분위기가 도드라지는 어쿠스틱 발라드 트랙 'One last time'은 흡사 그린데이(Greenday)의 'Good riddance'에 대한 존경어린 화답처럼 느껴진다. 비틀즈식 팝전통을 이어받은 'Tick of time'은 옛 것에 대한 향수를 한없이 자극한다.
쉽고 좋은 멜로디는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들의 가치를 함부로 깎아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류밴드들과 구별될 수 있는 면모가 부족하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다. 프란츠 퍼디난드(Franz Ferdinand)의 'Do you want to'와 이름뿐만 아니라 댄서블한 록비트까지 유사한 'Do you wanna'는 독창성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초반부의 날카로운 기타딜레이는 대선배 유투(U2)의 'Vertigo'까지 떠올리게 한다. 단지 닮았다는 사실만으로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 프란츠 퍼디난드보다 훨씬 신나게 몰아붙여 준다면야 군소리 없이 가만히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니까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단순하게 진행되다가 소리의 몸집을 불려나가는 'Gap'이나 'Down to the market'의 지저분한 기타소리는 리버틴스(Libertines)와 비슷한데 그들만큼 저돌적이고, 의외성있는 전개를 보여주지 못해 다소 심심한 감이 있다. 프란츠 퍼디난드, 리버틴스, 블록파티(Bloc Party), 카이저 치프스(Kaiser Chiefs), 스트록스(Stroles)의 스타일을 모두 경험한 이들에게 쿡스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할 공산이 크다.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 없이 장수한 록밴드는 그리 많지 않았다. 과거 대선배들의 유산을 잘 조합하는 것도 능력이지만 개성은 더 큰 능력이다. 이들의 음악은 들을 때는 확실히 좋다. 그런데 이상하게 듣고나서 남는 것이 없다. 이 앨범에서 나는 쿡스가 아니라 아니라 데이비드 보위를, 킹크스를, 블러를, 비틀즈를, 리버틴스를, 프란츠 퍼디난드를 보고 좋아한 게 틀림없다. 특화된 스타일의 결핍이 약점이라면 해답은 하나다. 엘튼 존(Elton John), 비틀즈 같은 끝이 보이지 않는 멜로디 생산능력. 그것만이 살 길이다. 아직까지는 이들의 멜로디 뽑아내는 실력은 쓸만하다. 아니 훌륭하다. 그것의 유효기간이 언제까지일지는 장담 못하겠지만.
-수록곡-
1. See the sun
2. Always where I need to be
3. Mr. maker
4. Do you wanna
5. Gap
6. Love it all
7. Stormy weather
8. Sway
9. Shine on
10. Down th the market
11. One last time
12. Tick of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