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열꽃
타블로(Tablo)
2011

by 홍혁의

2011.12.01

타블로는 독자적인 주파수다. 그동안 에픽 하이(Epik High)의 디스코그래피를 거치면서 그 음향이 더욱 선명해졌다. 어쿠스틱과 신시사이저를 넘나들며 단지 힙합으로 규정할 수 없는 섬세한 멜로디 라인을 기초로 하며,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내면적인 가사로써 대체 불가능한 캐릭터를 스스로 창조했다. 이것은 유명 대학교의 졸업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후광이 만들어낸 모래성이라고 쉽게 단정할 수 없는 문제다.

그 만이 가지고 있는 주파수는 이번 앨범에서 극한으로 치달았다.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 열꽃 >이라는 타이틀은 최근, 시기와 모함으로 얼룩졌던 개인적 아픔에서 기인했다. 전체적인 기조는 우울을 넘어서 절망스러운 폐허의 심상을 다룬다.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소생의 희망까지 앗아간, 그야말로 그라운드 제로가 앨범의 출발점이다.

앨범 속의 폐인은 극한의 좌절에서 기댈 수 있는 기본적인 완충지대 밖으로까지 밀려난 위기에 처해있다. 사랑과 사람에 배신을 당하고 마지막 보루인 가정의 울타리까지 침범하려는 비정한 시선들, 그 냉혹함을 여과 없이 토로한다. '집'에서 시작해서 '나쁘다'로 이어지는 통증 가득한 트랙들은 그동안의 아픔을 함께 들어주길 원하는 적극적인 요구다. 꽤나 정교하게 조각한 메타포들은 우울함에 기초한 감성을 배가시켜 전달하는 촉매제다.

메타포뿐만 아니라 감정이입을 용이하게 하는 요인은 호소력 가득한 보컬에 있다. 이소라, 나얼 뿐만 아니라 < 아저씨 > 사운드트랙에서 독특한 음색을 선보인 매드 소울 차일드(Mad Soul Child)의 진실과 빅뱅의 태양까지 가세하며 래핑으로만 채울 수 없는 극적 요소를 강화했다. 물론 보컬과 래핑의 조화는 에픽 하이의 후반기 결과물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한 타블로의 멜로디 작곡 능력이 더해져 이뤄낸 성과이기도 하다.

파트 1, 2로 나눠진 앨범에서 처음 절반이 아픔으로 가득 차 있다면 후반부는 상처를 치유하고 대중에게 조심스레 다가가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물론 '유통기한'에서 드러나듯이 타자에게 잊혀져버린 존재가 아닐까 다시 일어서는 걸음이 두렵기도 하지만 '고마운 숨'에서 함께하는 동지들과 가족들이 있으니 힘을 내보려한다. 그간의 소동을 지켜본 이들이라면 이와 같은 결말에서 상투적인 것에서 오는 실망을 느끼기 보다는, 인간적인 응원을 보태주려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타블로는 어렵사리 그만의 주파수로 다시 송신에 나섰다. 그 전파는 불특정 다수에게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와 닮아있는 아픔 때문에 걸음을 저는 이들에게 향한다. 역설적이게도 아티스트에게는 가장 아픈 순간에 청취자에게는 가장 내밀한 치유를 들려준 셈이다. 순간적으로 피고 지는 열꽃처럼 이같이 쓰라린 결과물은 이번이 마지막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그래야 한다.

-수록곡-
Part 1
1. 집 (feat. 이소라) [추천]
2. 나쁘다 (feat. 진실) [추천]
3. Airbag (feat. 나얼) [추천]
4. 밀물 (Scratch by DJ Friz)
5. 밑바닥에서 (feat. Bumkey)

Part 2
1. Tomorrow (feat. 태양) [추천]
2. 출처 (Scratch by DJ Tukutz)
3. Dear TV / 해열 [추천]
4. 고마운 숨 (feat. 얀키, 봉태규)
5. 유통기한
홍혁의(hyukeui1@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