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신곡 듣기의 경로는 이렇다. 이미 알고 있는 가수, 혹은 그룹이 앨범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궁금증에 들어보거나, 차트에 대한 신뢰를 갖고 리스트 순위권에 오른 곡들을 골라 들어보거나. 보통은 그래서, 알려지지 않은 그룹의 음악에 손을 뻗기보다는 이미 알려진 그룹의 음악에 손을 뻗기가 상대적으로 더 쉽다. 유명한 그룹, 혹은 가수일수록 소식을 접하기가 수월하고 차트의 접근도 용이할 수 있는 까닭이다.
3개월 동안 방송을 통해 이름을 먼저 알린 버스커 버스커는 그런 면에서 이미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었다. 최근 보이는 이들의 차트 점령 현상은 그러나, 그런 접근의 용이성만으로는 설명이 안 될 것 같다. 대중 호기심이 작용한 잠시잠깐의 차트 상위권 진입은 가능할지 몰라도, 유수 음원 사이트의 top10 차트마다 그룹의 이름을 빼곡히 박으며 ‘올킬’하는 일은 흔치 않은 현상이지 않나.
버스커 버스커 음악의 특이점이라면 1990년대 초반 풍의 복고적 감성을 2012년에 거부감 없이 재연한다는 데 있다. 드럼, 베이스, 기타의 밴드 사운드가 근간을 이루고 있지만, 하모니카를 통해 펼치는 다분히 아날로그적인 접근은 이들이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어준다. 거기에 친근한 동네 청년 같은 장범준의 이미지와 계절에 딱 들어맞는 ‘벚꽃’에 대한 노랫말까지.
짚어볼 것은, 그렇다면 이런 올드한 감성의 음악이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분명히 그렇지는 않다. 복고적 감성을 탐하는 노래는 언제나 있어왔다. 멀게는 김광진이 있었고, 가까이는 김동률과 윤종신이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그들은 버스커 버스커의 멤버들만큼 젊지가 않고 밴드가 아니었다는 정도일까. 이들이 과대평가 되어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미디어를 통한 대중 쏠림 현상은 한 번쯤 생각해 봄직한 문제다.
앨범을 관통하는 정서는 봄, 그리고 사랑이다. 초반의 4연타가 특히 강렬한데, 인트로 격의 연주곡 ‘봄바람’이 첫 계절을 맞는 들뜬 마음을 자극하고 나면 이어지는 ‘첫 사랑’이 제목 그대로 첫 사랑의 설렘을 기억 속에서 소환해낸다. 흥겨운 전자기타의 리듬커팅 사운드와 슬라이드 멜로디는 기타 연주자로서의 장범준을 각인시키기도.
보컬로서의 장범준은 ‘여수 밤바다’에서 고백조의 언어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 급기야 폭발시키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흔한 것 같지만 흔하지 않은’ 그의 보컬의 매력을 잘 볼 수 있기도 하지만, 후반부의 찐득한 기타 솔로 역시 인상적이라는 점에서 놓칠 수 없는 곡이다. 타이틀 곡 ‘벚꽃 엔딩’에서는 처음으로 하모니카가 등장하는데, 앨범 후반에도 들리는 이 소리는 작품 안에서 계절과 사랑에 대한 설렘을 최고조로 올려놓는 기폭제의 역할을 한다.
뒤의 곡들도 만만치는 않다. ‘외로움 증폭장치’는 시계에서 시계바늘, 톱니바퀴라는 소재를 찾아낸 기발함이 돋보이고, ‘꽃송이가’는 중독성 있는 후렴구와 중후반부의 하모니카 솔로가 인상적인 곡이다. 아마 음반 내에서 가장 여심을 자극하는 곡이 아닐까. 꽃을 매개로 자신의 존재감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은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모 기업은 채용 공고에서 ‘스펙보다 스토리’라는 말을 쓴 적이 있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이 문장은 스토리‘만’ 좋아도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버스커 버스커가 보여주는 성공은 음악이라는 ‘스펙’과 방송을 통해 보여준 ‘스토리’와의 결합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스토리는 이미 갖추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스펙도 좋았던 셈.
때문에, 2012년을 뒤흔들고 있는 ‘버스커 돌풍’은 절대 짧게 갈 것 같지가 않다. 아마 벚꽃이 한 차례 지더라도, ‘벚꽃 엔딩’은 여전히 우리의 귀를 두드릴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우리는 어떤 종류의 감흥을 느끼게 될까. 저마다 그동안 만든 추억을 곱씹게 될까, 혹은 그렇지 못해 씁쓸한 마음을 달래고 있을까.
어느 쪽의 상황을 맞든, 노래만큼은 여전히 반갑게 들릴 것 같다는 예감은 틀리지 않을 것 같다. 혹 이내 겨울이 다시 온다고 해도, 음반을 플레이어에 걸고 ‘봄바람’을 접하는 순간 우리는 다시 봄 안에 있을 테니 말이다. 봄은 영원하다. 적어도 버스커 버스커의 앨범 안에서는.
-수록곡-
1. 봄바람 [추천]
2. 첫 사랑 [추천]
3. 여수 밤바다 [추천]
4. 벚꽃 엔딩 [추천]
5. 이상형
6. 외로움 증폭장치 (브래드 드럼 한판 쉬기)
7. 골목길
8. 골목길 어귀에서
9. 전활 거네
10. 꽃송이가 [추천]
11.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