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미세한 감정들을 색 입혀 그려냈던 에피톤 프로젝트가 1집의 잔잔한 파동이 가라앉기도 전에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12곡의 노래로 돌아와 다시 흐름을 이어가려 한다. <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 >는 타국의 땅을 밟으며 보고 듣고 만지고 느낀 차세정의 개인적인 이야기다. 1집의 객원 보컬 시스템을 버리고 전곡을 직접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다건너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모든 것이 얼마나 새롭고 놀라운지를. 몸을 둘러싸고 있는 전부가 강한 자극제며 충격이다. 그러나 차세정의 하루는 묵묵하게 걸음을 옮겨간다. 서먹한 안심과 낯익은 체념이 정리를 위해 늘어서있을 뿐이다. '수많은 시간, 수많은 기억, 수많은 날..' 가사는 시간에 관한 단어가 주를 이룬다. 시차와 함께 남겨두거나 묻고자 하는 세월이 누구에게나 있을 테지만 들뜨지 않고 여행의 목적을 실행하기란 쉽지 않다. <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 >의 차분함은 그렇게 사라져가는 희멀건 기대와 바람을 업어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출발 직전의 설렘이 3박자 왈츠로 흐르다가('5122'), 도착의 기쁨에 뛰는 심장은 드럼으로 몰아친다('이제, 여기에서'). 이른 하루를 여는 여행자의 단상이 카페의 소음과 뒤섞이는가 하면('시차')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답 없는 고민에 빠져들기도 한다(새벽녘). 고운 표지와 스냅 샷으로 꾸며진 요즘의 여행에세이처럼 앨범에는 시간을 따라가는 가지런한 기록과 들쑥날쑥한 상념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더불어 '국경을 넘는 기차', '미뉴에트' 등의 연주곡은 유럽이라는 배경을 실감 있게 전달한다.
조금은 숨찬 호흡, 가늘게 흐려지는 끝음절에 불안감은 여전하지만 그만의 꿋꿋한 정서로 버텨질 듯하다. 아쉬운 부분은 보컬보다 두드러지는 악기로도 배불리 채울 수 있다. 당장 떠나지 않을 것임에도 서점의 여행코너를 기웃거리는 이들을 위한, '지금이 아니어도 좋아, 슬퍼해도 괜찮아'의 메시지를 믿는 이들을 위한 사치스럽지 않은 앨범이다.
-수록곡-
1. 5122 [추천]
2. 이제, 여기에서 [추천]
3. 시차 [추천]
4. 다음날 아침 (Duet With 한희정)
5. 새벽녘 [추천]
6. 초보비행
7. 국경을 넘는 기차 [추천]
8. 떠나자
9. 우리의 음악
10. 믿을게
11. 터미널 [추천]
12. 미뉴에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