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도입부가 달라졌다. 차세정의 원맨 밴드인 ‘에피톤 프로젝트’의 곡은 흔히 초반만 듣고도 맞출 수 있다고들 한다. 이처럼 단번에 알 수 있는 이유는 처연한 멜로디, 섬세한 신시사이저와 고즈넉한 피아노 터치, 담담한 구어체의 가사 때문이다. < 각자의 밤 >은 그러나 그런 직감을 깨트린다. 같은 분위기의 곡들로 호흡을 이어갔던 1집, 2집과는 달리 이번에는 밤이라는 주제에 애틋한 상념을 담아냈다. 분위기도 훨씬 차분하고 몽환적이다. 전작에서는 모든 트랙을 본인의 목소리를 포함해 꾸려냈지만 이번에는 다시 객원 체제로 복귀했다.
초기작 ‘한숨이 늘었어’를 비롯한 곡들은 서정적 분위기의 1990년대 가요를 연상케 한다. 차세정은 토이, 윤상, 015B의 작품을 분석하며 실력을 키웠고, 작곡가 중심의 프로젝트 그룹이라는 방식도 같다. 초창기에는 그들의 흔적을 이어
우선 도입부가 달라졌다. 차세정의 원맨 밴드인 ‘에피톤 프로젝트’의 곡은 흔히 초반만 듣고도 맞출 수 있다고들 한다. 이처럼 단번에 알 수 있는 이유는 처연한 멜로디, 섬세한 신시사이저와 고즈넉한 피아노 터치, 담담한 구어체의 가사 때문이다. < 각자의 밤 >은 그러나 그런 직감을 깨트린다. 같은 분위기의 곡들로 호흡을 이어갔던 1집, 2집과는 달리 이번에는 밤이라는 주제에 애틋한 상념을 담아냈다. 분위기도 훨씬 차분하고 몽환적이다. 전작에서는 모든 트랙을 본인의 목소리를 포함해 꾸려냈지만 이번에는 다시 객원 체제로 복귀했다.
초기작 ‘한숨이 늘었어’를 비롯한 곡들은 서정적 분위기의 1990년대 가요를 연상케 한다. 차세정은 토이, 윤상, 015B의 작품을 분석하며 실력을 키웠고, 작곡가 중심의 프로젝트 그룹이라는 방식도 같다. 초창기에는 그들의 흔적을 이어받아 과거의 향수를 재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전주만 들어도 ‘에피톤스럽다’고 말한다. 개성과 색깔이 점점 짙어짐에 따라 그만의 영역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음을 증명한다. 여기에 자기 복제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하며 만든 3집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다 넓혀가는 과정이다.
그의 이름을 알린 EP < 긴 여행의 시작 >에서는 일렉트로니카와 발라드를, 첫 정규 앨범에서는 아기자기한 어쿠스틱 기타, 두 번째 앨범에서는 록 사운드를 가미하며 악기, 리듬 등의 측면에서 변화를 해왔다. 3집은 어떨까. 첫 곡 ‘각자의 밤’은 둔탁한 베이스 소리가 시작을 알리는 연주곡이고, 바로 다음 순서인 ‘환상곡’은 몽환적인 선우정아의 보컬과 블루스에서 쓰이는 셔플 리듬을 적용해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 노래다. 이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아마 “이번 앨범은 좀 다를걸?”이라고 하지 않을까. 이 두 곡만 듣고 당황한 팬들도 있을 테다.
그래서일까. 음반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은 발라드였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는 여성 보컬이 불렀을 때 더 깔끔하면서도 예쁘게 전달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이번에는 매력적인 보이스를 풍기는 손주희가 ‘미움’과 ‘회전목마’를 불렀다. ‘미움’은 그간 발표해 온 작품들처럼 쓸쓸한 선율을 기반으로 한다. 반면 ‘회전목마’는 가장 변화무쌍한 코드 전개를 뒀음에도 불구하고 견고하게 엮은 내공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낮잠’, ‘유서’, ‘나의 밤’에서는 최소한의 편곡 안에서 울리는 차세정의 소박한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듣는 이의 감성을 자극한다.
‘에피톤 프로젝트’라는 브랜드가 내포하고 있는 가치를 잃지 않으면서도, 외관을 변형해 대중에게 선보이는 일은 쉽지 않다. 새로운 방식을 적용한 음악에도 색깔이 담겨 있어야 하고, 또 이질감이 과하게 느껴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은 이전의 단계를 제거하지 않고 그 흔적을 품어가며 차근차근 변화하는 방법이었다. 트랙 배치만 봐도 낯선 곡을 기존 것으로 달래주는 방식으로 이어져있다. 자칫 안정 추구와 답습의 시선으로 여겨질 수 있겠다. 하지만 그가 가진 색깔을 떠올려보면 도리어 그게 최상의 방법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수록곡-
1. 각자의 밤 [추천]
2. 환상곡 (Vocal 선우정아) [추천]
3. 낮잠
4. 플레어 (Vocal Azin)
5. 친퀘테레
6. 불안
7. 미움 (Vocal 손주희) [추천]
8. 시월의 주말
9. 유서
10. 회전목마 (Vocal 손주희) [추천]
11. 환기
12. 나의 밤 [추천]
13. 미움 (Piano Ver.) (Album Only) (Vocal 차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