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도 어느덧 우리나이로 마흔이다. 1994년 22세의 나이로 데뷔 앨범 < Illmatic >을 발표한지 18년이 지난 셈이다. 당시 어깨를 견주던 이들은 새 레코드를 내놓기보다 사업에 몰두하거나, 극장 스크린을 통해 근황을 알리는 데 역점을 두는 듯하다. 그나마 이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다소 운이 없었던 이들은 퇴물로 버려지거나,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반면 나스는 칼날이 맞부딪히는 복마전에서 20년의 경력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컴백의 시기마다 진중한 화두를 던지는 힙합계의 'Don(대부)'가 되었다.
이는 그가 이제는 앞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옆과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작가로서 나스에 초점을 맞추고 이번 앨범의 가사를 눈여겨본다면 흥미로운 구석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Daughters'에서는 자신의 딸이 혹시라도 삐뚤어질까봐 전전긍긍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드러나고, 'Accident murderers'에서는 뒷골목 규칙의 최소한도 어겨버리는 막나가는 어린것들에게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즉 < Illmatic >에서 22세의 사상이 묻어있었듯이 < Life Is Good >에서는 40세의 나스가 매일 접하는 단상들을 여과 없이 푼 것이다. 그 단상은 부유층의 가식, 새로운 이상형, 후세대들을 위한 응원 등 공과 사를 넘나든다. 혹자에게는 각자 떨어져 있는 주제들이 난삽해 보일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자리의 나스라는 화자로 소실점을 좁히게 되면 큰 그림을 감상할 수 있게 된다.
10번째 정규 앨범은 곡명과는 아이러니하게 'No introduction'이 웅장한 위용으로 막을 올린다. 자수성가한 대부의 연대기가 생존경쟁의 법칙을 거리에서 배운 어린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가듯 갱스터 무비의 도입부와 흡사한 대목이다. 물불 가리지 않았던 20대의 무용담은 이후 몇몇 트랙에서도 발견된다. 이 같은 회상화법이 '내가 해봐서 아는데'류의 불통으로 그치지 않는 이유는 그가 회춘에 가까운 래핑으로 건재함을 선언하기 때문이다. 'A Queens story'에서 개선가를 연상토록 만드는 비트와 걸맞게 임팩트 있는 랩 운용을 하다가도 곡의 역전이 일어나는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피아노 라인의 긴장과 합을 맞추며 휴지 없이 펀치라인의 성찬을 이어간다. 펀치라인의 세례는 이번 앨범에서 특히 돋보이며 이미 인터넷상에서는 최고 표현을 가리는 순위매기기 놀이가 벌어지고 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언급했고 크레디트를 확인하면 알 수 있듯이 앨범은 두 프로듀서, 살람 레미(Salaam Remi)와 노 아이디(No I.D)가 비트를 주조했다. 결과물에 대한 평가는 논외는 하더라도 두 프로듀서는 자신의 색채를 준수하게 유지했다. 살람 레미는 'Nasty'에서 시간이 흘렀음에도 1990년대의 생동감을 재현해달라는 나스의 청탁을 비교적 충실히 완수하는가하면, 최근 오케스트레이션에 푹 빠진 근황을 알리는 듯 'A Queens story'와 'The black bond'에서는 스케일이 큰 트랙을 지휘했다. 반면 노 아이디는 적절한 미장센을 구축할 줄 아는 재능을 나스에게 바쳤다. 'Loco-motive'에서 나스는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서부극 속 열차 강탈범에 비견할 만하다. 'Daughters'의 의외의 온화한 분위기를 조성한 까닭에도 그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흠잡을만한 구석이 없는 수작이다. 나스의 과거와 현재를 목격할 수 있으며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을 통과하는 그를 통해 음악적 방향성도 예측할 수 있는 앨범이다. 제왕, 리빙 레전드, 수호신 등의 수식어는 낯간지럽기도 하고, 이미 충분하다. 나스는 후배들이 20년 뒤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자발적으로 교과서를 채택하도록 결과물로 증명했다.
-수록곡-
1. No introduction [추천]
2. Loco-motive (feat. Large Professor) [추천]
3. A Queens story [추천]
4. Accident murderers (feat. Rick Ross) [추천]
5. Daughters
6. Reach out (feat. Mary J. Blige)
7. World's an addiction (feat. Anthony Hamilton) [추천]
8. Summer on smash (feat. Miguel, Swizz Beatz)
9. You wouldn't understand (feat. Victoria Monet)
10. Back when
11. The Don
12. Stay (feat. Large Professor)
13. Cherry wine (feat. Amy Winehouse) [추천]
14. Bye baby
- Deluxe Edition Bonus Tracks -
15. Nasty [추천]
16. The black bond [추천]
17. Roses
18. Where's the love (feat. Cocaine 80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