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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care
소히(Sorri)
2013

by 윤은지

2013.12.01

소히의 공식 수식어인 '보사노바 싱어송라이터'라는 문구는 복합명사지만 두 명사의 지위는 결코 나란하지 않다. 대개 뒤의 단어보다 '보사노바' 쪽에 사람들의 이목이 더 집중되기 마련이다. 장르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들은 그래서 장르의 특이성에 자신의 개성이 제압당하거나 매몰되기가 쉽다. 물론 그 둘은 따로 떼어놓고 이야기될 수 없고, 장르 자체가 가수의 개성과 직결되기도 하겠지만, 특정 장르 추구 이전에 존재하는 건 음악을 통해 전하고자하는 가수만의 고유한 무언가일 것이다.

3집 < Daycare >는 '보사노바'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인상적이었던 '싱어송라이터'라는 단어에 무게감을 주었다는 점에서 진일보다. 앨범을 통해 먼저 느껴지는 건 이국의 음악풍경보다는 '소히 자신'이다. 전작들에 비해서도 작가의 내면은 더 가깝고 말갛게 드러난다. 그렇다고 브라질음악이 차용의 수준으로 후퇴했다는 느낌은 없다. 오히려 브라질음악은 소히의 음악적 감성을 가장 완전하고도 특별하게 전하기 위한 걸출한 매개로 기능한다. 첫 셀프 프로듀싱이 빚어낸 값진 결과다.

전반적으로 이전보다 차분해진 면모도 차이다. 잔잔한 재즈풍의 '왈츠'와 뒤이은 타이틀곡 '투명인간' 등 초반부에 배치된 조용한 트랙들이 주는 인상 때문만은 아니다. 중반부를 넘어서며 리드미컬한 곡이 진행될 때도 그 들썩임 속에는 묘한 침착함이 도사린다. 전에 비해 힘을 뺀 목소리 영향일 것이다. 이전 작품들의 보이스에 깃들어 있던 풋풋한 의지가 성숙하게 휘발되었다. 불필요한 기운을 덜어내고, 툭 던져놓은 느낌이랄까. 그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은 이번 앨범에 저류하는 총체적 정서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곡 'So Tinha de Ser Com Voce'를 커버하면서 보사노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면서도, 중점적으로 선보이는 건 좀 더 유연하게 확장된 브라질 팝음악이다. 거기에 재즈의 향도 물씬하고, 삼바의 리듬도 출렁인다. '친구'에서 리듬을 이끄는 중남미 타악기 '봉고'나 '회한은 없다'에서의 브라질 전통악기 '카바키뇨'를 통해 이국적 질감을 가미하지만 분위기가 온전히 이방의 것으로 수렴되진 않는다. 브라질리언 리듬에 이따금 얹히는 한국적인 곡조들은 묘한 시너지를 내며 브라질음악과 가요의 매력적인 결합을 경험케 한다. 그 색다른 지점들을 소히는 세련되게 조율할 줄 안다.

담담한 목소리에 담겨진 직설의 가사도 소히 음악이 지닌 상반의 매력이다. 고운 음성으로 무심히 노래하지만 그 메시지는 외로움, 초조함, 인간 간의 관계, 죽음, 폭력과 차별 등 결코 밝거나 가볍지가 않다. 발랄한 삼바 리듬이 돋보이는 '떡볶이 식사'는 떡볶이 집에서 천오백원 식사를 하다 문득 '빚으로 살아가는 우리네 살림살이'에 서글퍼진 마음을 '저기 저 화려한 공간을 나눠가질 수 없나'라는 분배의 담론으로 확장시켰다. 성추행의 문제를 담은 '심증'의 이야기도 곡의 흥겨움과 유달리 묵직하다. 누구나의 미래인 '죽음'에 관한 성찰과 사색을 담은 마지막 두 트랙 '이별공부'와 '꿈같아'의 마감도 마찬가지다.

푸른곰팡이로 소속사를 옮기고 나온 첫 앨범이다. 곡의 모든 부분이 스스로의 손을 거쳐 나왔지만 후반작업에 참여한 더 버드의 '김정렬'과 사운드 디렉팅을 함께한 고찬용 그리고 박용준의 손질도 조금은 묻어 있다. 그 결과물은 '노인데이케어센터'에서 착안했다는 타이틀 '데이케어'의 의미가 그럴 것이듯, 위무의 의무를 충분히 수행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면서 듣는 이의 마음을 치유해 주는 구간이 곳곳에 있다. 조금은 밋밋했던 첫인상은 거듭 들을수록 다채롭고 깊어진다. 이 깊이는 저 멀리 브라질이 아닌 자신의 음악적 내면에서 끌어올려졌기에 가깝고도 믿을 만하다.

-수록곡-
1. 왈츠 [추천]
2. 투명인간
3. 친구
4. 있는 그대로 [추천]
5. 회한은 없다 [추천]
6. 떡볶이 식사
7. 심증 [추천]
8. So Tinha de Ser Com Voce
9. 이별공부
10. 꿈같아
윤은지(theotherso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