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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inisce Old & New
박학기
2002

by 지운

2002.02.01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너는 행복하냐?” 영화 전체의 주제를 관통하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이 대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대의 명제다. 행복의 기준이 꿈이 아닌 돈으로 치환되어버린 이 자본주의 시대의 자화상은 예술이란 낭만적 이상주의조차 현실적 실물주의로 이름을 바꾸고 시대의 조류에 종속되게 한다. 과연 거기서 어느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미 6장의 앨범을 발표했지만, 데뷔곡 '향기로운 추억'의 징크스를 못 벗어나고 있는 박학기의 새 앨범은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다시 그의 르네상스 앞두고 준비한 1차 결산표다. '90년대가 가져온 전복의 시대는 '80년대 끝자락에 서서 그가 맛본 짧은 환희 모두를 앗아갔지만 그가 내세운 곡들이 결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아니며 완성도 또한 낮지 않다는 것을 시사해 줌과 동시에 동시대의 동료들과 함께 작업을 함으로써 댄스 음악에 소외되었던 언더 성향의 가수들과의 연대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소속사를 바꾸면서 생긴 판권 문제도 있겠지만, 4년만에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는 그의 선택은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기 전에 오래된 술을 다시 한번 음미하며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의 나아갈 바를 모색하는 한바탕 해후의 자리로 풀이된다.

그간 앨범에 수록되어 사랑을 받았던, 혹은 자신이 아끼는 18곡과 'Yellow fish', '다시 계절이' 등의 신곡을 담은 이 앨범은 국내 최고의 세션 함춘호가 프로듀서를 맡았으며 오랜 우정을 과시하는 친구 조규찬과 유리상자의 박승화가 코러스로 나섰고 한동준과는 '계절은 이렇게 내리네', 윤종신과는 '이미 그댄', 성시경과는 '그대 창가로 눈부신 아침이', 유리상자와는 '향기로운 추억' 등을 불러 기존의 곡에 색다른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또한 2집에 수록되었던 곡을 모든 참여 가수들이 함께 불러준 '아름다운 세상'은, 환경콘서트 올스타의 '더 늦기 전에', 푸른하늘의 '우리 모두 여기에', '마지막 그 아쉬움은 기나긴 시간 속에 묻어둔 채', 라인음향의 식구들이 모두 모여 불렀던 노이즈의 '우리가 빛이 될 수 있다면' 등 '90년대 후반 개인주의적 정서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공동체 의식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몽중인>의 메인 테마로 사용될, 어쿠스틱 기타의 울림이 시간의 덧없는 흐름을 절묘하게 전달하는 '다시 계절이'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음색은 기존의 고음역대에서 강하게 찔러오던 가늘고 여린 미성 창법에서 약간 벗어나 편하고 담담한 음색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번 음반은 한 시대를 열심히 살아왔지만 중년을 앞둔 시점에서 허탈함과 상실감을 추억 속에 용해해 “가수라는 꿈을 이뤘지만 항상 기쁜 것은 아니였다”는 그의 솔직한 심정을 심호흡하듯 전개시킨 음반이다.

“언제부턴지 기억할 수 없어/ 오랜 시간을 이 길을 걸어 왔어/ 때로 지쳐 주저앉고 싶고/ 아무도 몰래 눈물 흘린 적도 있어/ 끝이 없는 길이란 걸 알아/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아/ 지금 다시 시작하는 거야”라고 자전적인 의지를 되풀이하는 그의 노래 '나의 길'에서처럼, 다시 출발 라인에 선 그는 사이판 바다 속을 떠도는 “노는 물이 다른” 'Yellow fish'처럼 수많은 물고기 떼 속에서 의연한 결정체가 되고자한다. 자신의 길을 가는 뮤지션은 그 자체로 'Yellow fish'다.
지운(jiun@iz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