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빅 리그(Little Big League)라는 인디 밴드로 활동하던 혼혈 미국인 여성 미셸 자우너가 한국인 어머니의 암 선고 소식을 접했다. 간호 기간이었던 2주 동안 그는 일종의 명상이자 자기 치유의 일환으로 < Psychopomp >라는 앨범을 하나 제작했고, 소량으로 찍혀 공연장에서 판매되던 작품은 인터넷 상에서 입소문을 타며 서서히 주목을 받았다. 베스트셀러 에세이 < H마트에서 울다 >의 마지막 챕터이자 2022년 그래미 신인상 부문 후보 재패니즈 브랙퍼스트의 탄생 일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저승사자’라는 제목처럼 중심 소재는 죽음이다. ‘믿는다면 천국은 실존할 것’이라며 희망을 담아 노래하는 ‘In heaven’에는 상실의 공포가 감돌고, ‘Heft’는 대장암으로 먼저 세상을 뜬 이모의 사례에서 피어난 불안감을 노래한다. 몽롱한 앰비언트 곡인 타이틀 트랙 ‘Psychopomp’의 끝에 등장하는 실제 어머니의 음성 ‘괜찮아, 괜찮아’는 감정의 직격탄을 날린다. 신파라 할 사람도 있겠지만 삶에는 이처럼 은유가 불가능한 순간도 있다.
앨범의 다른 부분은 젊은 예술가의 영감의 원천을 보여준다. 절규에 가까운 소리로 뒤덮인 ‘Jane Cum’은 우디 알렌 영화의 등장인물 이름을 변형해 소재로 삼았으며, ‘Everybody wants to love you’의 서늘한 도입부에서는 롤모델이었던 한국 혼혈 카렌 오의 밴드 예예예스의 사운드가 비춰 보인다. 과감하고 짙은 슈게이징 사운드 또한 꿈을 품은 청춘이기에 만들어낼 수 있는 음악이다.
어두운 트랙만큼이나 밝고 명랑한 음악도 함께 담고 있지만 그 접근법은 감정의 승화와는 거리가 있다. 슬픔에 지나치게 함몰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억지로 애써 훌훌 털어내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저 힘든 시간을 기억에 담은 채 삶의 복잡성 그 자체를 받아들이며 계속 전진할 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보편적인 삶의 철학, 간단하지만 이것이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음악이 인종과 문화를 넘어 꾸준하게 사랑과 공감을 받는 이유다.
< Soft Sounds From Another Planet >에서 갖가지 낯선 소리를 담아내고, < Jubilee >로 싱그러운 축제를 열기 전 젊은 뮤지션의 초상이 그대로 새겨진 음반이다. 마치 데생에 가까운 모난 질감과 깔끔하지 않은 프로덕션은 지금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그래서 더욱 정겹다. < H마트에서 울다 >를 읽으면서 함께 듣자. 이름도 낯선 아티스트가 어느새 오랜 친구처럼 느껴질 테니.
-수록곡-
1. In heaven [추천]
2. The woman that loves you
3. Rugged country
4. Everybody wants to love you [추천]
5. Psychopomp
6. Jane Cum [추천]
7. Heft
8. Moon on the bath
9. Triple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