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렛(문혜원) 인터뷰
뷰렛(Biuret)
수많은 페르소나를 거느리며 쉬지 않고 달려온 문혜원의 지난 발자취는 여전히 온기로 가득하다. 어느덧 20주년을 맞이한 장수 밴드 뷰렛의 이름으로 오늘날에도 신곡 발표와 공연 일정을 바쁘게 소화 중이고, 뮤지컬 배우로도 왕성한 활동을 병행 중인 것은 물론 최근에는 성우라는 정체성까지 거머쥐며 영역 확장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가수가 된 이래 변치 않았던 '소리'에 대한 열정. 이에 보답하듯 성원과 지지를 보낸 팬들의 사랑이 맞물려 빚어낸 시너지는 그를 지탱하게 해준 무한동력의 비결이 되었다. 그리고 작년, 원맨 밴드로서 출범 선고를 한 뷰렛은 이제 새로운 체제 아래 또 한 번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햇살이 내리쬐는 어느 여름날, 그의 두 번째 고향이기도 한 홍대 인근에서 가수 문혜원을 만나 근황과 차기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과거 문정후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인터뷰 이후 5년 만이다. 자신을 '꿈의 종착지'가 아닌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의 꿈의 통로'라고 소개하는 모습에서 성숙한 어른의 면모가, 동시에 변함 없이 쾌활한 웃음과 열정적인 대답을 내비치는 모습에서 스무 살의 문혜원이 선명히 겹쳐 보였다.
문정후라는 이름으로 IZM과 인터뷰한 지 어느덧 5년이 흘렀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5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먼저 코로나-19라는 추운 겨울을 보냈고, 40대가 됐으며, 멤버들을 떠나보내고 홀로서기를 하게 됐다.
작년 싱글 '북극성'을 발표하며 1인 밴드로서 출범 선고를 했는데.
사실 뷰렛을 그만둬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 문득 오랫동안 같이 활동한 피아(Pia) 같은 팀이 하나둘 해체하는 모습을 보며 나라도 남아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더라. 여성 뮤지션으로서 결혼해도, 4~50대가 되어도 계속 활발하게 신곡을 내는 진행형 아티스트가 있으면 후배들이 보기에 작은 등대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 상황을 조금 더 들려줄 수 있을까.
코로나-19 때문에 멤버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줄 수 없는 시기였다. 신곡은 엄두가 안 났고, 또 각자 일이 있으니 고정적으로 공연을 하기 힘들었다. 그저 버틸 뿐이었다. 시간이 되는 사람들과 간간이 공연만 하며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으로 3년을 버텼다. 작은 불씨 하나라도 살리기 위해 계속 숨을 불어 넣어 생명 연장을 하던 시기다. 그래도 눈 깜짝할 새 힘든 날이 지나가고 다시 이렇게 공연을 하는 날이 오게 됐다. 게다가 지금 세션을 맡고 있는 친구들이 고맙게도 5년 넘게 같이 해주고 있고, 그 뒤로 20주년 공연과 싱글을 조금씩 계획하게 됐다. 여러모로 정말 다행이다.
지금의 세션과는 어떻게 만나게 됐나.
나는 술도 잘 안 먹고 내향적인 편이다 보니 음악계에 오래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웃음) 어느 날 뮤지컬에서 만난 '박일'이라는 친구와 친해져 자연스럽게 베이스를 부탁하게 됐고, 그 친구가 발이 넓은 덕에 일종의 캐스팅 디렉터가 되어줬다. 박일이 크르르의 드러머 '박병석'을 데려왔고, 병석이가 이제 같은 밴드의 기타리스트 '박민영'을 데려왔다.
정식 멤버를 갖춘 밴드와 원맨 밴드로서 활동에는 어떤 부분이 다른지.
장단점이 있다. 장점으로는 마음대로 다할 수 있다는 점. 일단 의견 조율이 필요 없지 않나. 과거 멤버들과 활동할 때는 서로 음악적 취향이 달라서 주장이 부딪히는 경우가 있었다. 좀 농담 삼아 얘기하자면 독재가 가능하다. (웃음) 단점으로는, 좀 외롭다. 옛날에는 책임과 고통을 4분의 1로 분담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금전적인 부분은 물론 밴드와 관련된 모든 것을 혼자 책임져야 하니까.
그러면 문정후라는 페르소나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절대 문정후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뷰렛에서는 할 수 없지만 분명 내가 추구하는 음악 장르가 있지 않나. 비유하자면 문혜원 안에 소속 가수가 둘이 있는 셈이다. 다만 지금은 아무래도 많은 이들이 뷰렛을 더 많이 좋아하고 기다리기 때문에, 올해까지는 뷰렛이 '살아 숨 쉬는 밴드'가 되도록 집중할 계획이다. 12월 25일에 크리스마스 캐럴 싱글도 계획하고 있고, 단독 공연도 성공리에 마쳤다. 내년 초쯤 EP를 하나 낸 뒤 올해 나온 음원과 합쳐 연말에 앨범 작업을 발표하는 게 목표다. 물론 문정후 노래도 만들어 놓은 것이 많다.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2020년 < 싱어게인 - 무명가수전 >에 참가했다. 다만 방송분에 실리지 않아 많은 이들이 촬영 당시 상황을 궁금해하는데.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먼저 작가님으로부터 요청받아 출연을 결정하게 됐다. 나는 원래 들어오는 제안을 전부 받는 편이고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하게 됐는데, 통편집을 당하게 된 거다. 사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다행이라 생각하고, 오히려 제작진이 나를 보호해 준 것으로 추측한다. 아무래도 방송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스케줄이 그렇게 타이트하게 흘러가는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침 여섯시 까지 방송국에 가야 했는데, 원래 늦게 자는 편인 데다 기대가 돼서 전날 잠이 안 오더라. 그렇게 밤을 새워서 대기실에 갔다. 막상 가보니 개인 카메라가 앞에 놓여 있어 다른 분들 무대에 리액션 장면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유출을 막기 위해 전자기기 같은 물품도 마음대로 가져갈 수 없는 구조였다. 심지어 첫 예선은 사람이 많아 리허설이 따로 없었다. 개인적으로 잠시 눈을 좀 붙이거나 목을 풀 틈도 전혀 없다 보니 컨디션을 크게 타지 않는 소프트한 노래를 골랐어야 했는데, 욕심을 내서 초고음이 마구 나오는 블랙핑크의 'How you like that'을 선곡한 거다.
밴드로 무대에 설 수 없는 게 룰이었기에 직접 디스토션 사운드가 강력하게 담긴 MR을 제작해 왔는데, 정작 리허설을 해볼 수 없으니 모니터링을 못 한 채로 무대에 올랐다. 아직도 내 무대가 밖에서 어떻게 들렸는지는 잘 모르지만, 심사위원이 여덟 분 계셨고 내가 모든 팀 중에서 처음으로 0표를 받았다. 물론 이게 변명이 될 수 없는 걸 안다. 밖에서 들어보니 다른 분들은 전부 잘하더라. (웃음)
속상하지는 않았는지.
사실 나는 괜찮았다. 그날 하루를 못한 것뿐이지, 나는 내가 기본 실력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지 않나. 그 당시에는 그저 덤덤하게 내려왔는데, 어느 날 예고편을 보니 내 장면이 나오는 거다. 첫 번째 0표 무대는 방송국 입장에서도 충분히 쓰기 좋은 분량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게다가 내가 나온다는 소식을 접한 팬들이 엄청 기대하고 있던 상황이라, 그때부터 열심히 편집되기만을 기도했다. (웃음) 팬들 입장에서는 좋아하는 가수가 오랜만에 얼굴을 비추는 자리인데 그런 모습을 보게 되면 얼마나 속상하겠나. 방송이 나간 이후 주변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연락이 정말 많이 왔고, 나는 그러지 말라고, 오히려 나를 살려준 고마운 분들이라고 말했다. (웃음)
굉장히 긍정적인 마인드의 소유자인 것 같다.
뭐든 그 당시에는 예상과 다르게 흘러갈 수 있어도, 지나고 보면 결국 좋은 일이 된다고 믿는 편이다. < 싱어게인 - 무명가수전 > 건도 마찬가지다. 그저 나는 경연 프로와 잘 맞지 않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오히려 그런 통제된 환경에서도 좋은 무대를 보여주는 많은 분에 대해 존경심이 든다.
66호 가수 소개란에 '불혹부터 잘 될 가수'라는 문구를 넣었다. 어느 정도 실현되었다고 보는지.
아, 그 문구에는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처음에 작가님이 카피 문구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는데, 어떤 걸로 할지 고민하다가 어릴 때 '왕십리 도사'에게 사주를 보러 갔던 기억에서 착안했다. 스무 살 서울예대에 현역으로 바로 입학한 뒤, '디비딥 밴드'라는 인천 경인방송에 출연하면서 나름 잘 풀리고 있었으니 당연히 더 잘될 거라는 생각에 엄마가 점집에 데려간 거다. 근데 도사가 “아직 멀었습니다. 한참 뒷바라지하셔야 해요. 대기만성형이라 마흔은 넘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더라. 물론 엄마는 돌팔이라고 하고 나왔는데, 지금은 용했다고 말한다. (웃음)
솔직히 말해서 좋은 기회는 정말 많았다. 어릴 때부터 재능이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했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오히려 스무살 때 잘 됐으면 독이 됐거나 이미 생을 마감할 수도 있었겠다고 확신한다. 옛날에는 사회성도 부족했고 애정 결핍도 심했다. 모두에게 사랑받아야 하는데 한 명이라도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 거다.
나는 피지 못한 불운한 꽃이라고 생각했는데, 불혹이 넘은 지금 이제야 내가 남들을 꽃 피우게 해주는 나뭇가지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꿈의 끝이 아니라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의 꿈의 통로다. 그래서 지금 세션을 맡아주는 밴드 멤버뿐 아니라 후배들과 같이 성공해 더 큰 무대에서 모두의 꿈이 같이 이뤄졌으면 하는 마음이고, 그렇기 위해서는 내가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내가 잘되기 위해서 음악을 하면 쉽게 지친다. 함께 꿈을 이루기 위한 걸음이라면 동기 부여도 확실하고,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출근하는 아버지처럼 결코 지칠 수 없으니까.
꿈의 통로라는 말이 멋있게 들린다. 그렇다면 혹시 지금의 꿈을 물어볼 수 있나.
요즘 나 혼자 벌어 먹고살 궁리를 생각할 게 아니라, 음악 하고 싶어하는 후배들이 평생 음악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인디 신에 오래 있던 만큼, 심적인 격려 말고도 현실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보고 싶다. 특히 후배 여자 밴드에 도움을 많이 주고 싶다. 결혼과 2세 계획을 하는 친구들은 걱정이 훨씬 많을 텐데 그들에게 좋은 환경과 선례를 물려주고 싶다.
최근 'Rock star'라는 싱글을 발매했다. 간단한 설명을 부탁한다.
나는 사춘기를 우울하게 보낸 편이다. 학교 적응도 잘 못 해서 친구도 별로 없었고, 가정 환경이 좋지 않다 보니 부모님과의 소통도 좋지 않았다. 오직 음악만이 내 친구였다. 잘 못하는 영어 실력에 가사를 조금씩 해석해 가며 그 한 줄 한 줄에 힘을 얻던 시절이다. 이번 싱글은 나를 키워준 음악과 음악가들에게 보내는 감사 인사다. 매 걸음마다 함께 듣던 노래. 너무 외로운 시절 가슴 저리도록 아름다운 세계로 나를 데려간 뮤즈들.
혹시 곡에서 언급한 록스타가 누구인지 알려줄 수 있나.
정말 많다. 일단 앨라니스 모리셋이 있고, 큐어도 너무 좋아하는 팀이고.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좋아한 밴드는 펄 잼. 에디 베더는 거의 롤모델이다. 그의 무대 퍼포먼스를 너무 좋아해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의외로 너바나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차라리 홀을 좋아했지. (웃음) (그러고 보니 모두 어두운 스타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어우, 내면이 어둡지 않으면 록을 좋아할 수 없다. 나는 맑고 투명한 소리보다는 나를 긁어줄 수 있는 거친 면을 좋아하는 것 같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스매싱 펌킨스, 콘은 당연히 좋아했고, 여성 보컬 중에서는 가비지, 노 다웃, 에반에센스를 좋아했다. 아니면 땅 파고 들어갈 만큼 아예 우울한 포티스헤드 같은 팀들도.
현재 성우로도 활동 중이다. 밴드, 솔로, 뮤지컬에 이어, 또 다른 스타일을 확립했는데. 이제는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건가.
어릴 때 남동생과 역할을 나눠 만화책을 서로 번갈아 연기하듯 읽으며 많이 놀았다. 고등학교 때는 연극반도 했고. < 변신자동차 또봇 >에서 '안젤라' 역할로 성우 활동을 시작해, 여러 캐릭터를 거쳐 지금은 '카사장' 역할을 맡고 있다. 하나의 캐릭터를 배정받게 되면 감독님이 이 캐릭터는 어떤 성격인지, 어떤 목소리로 내줄 수 있는지 요청한다. 그럴 때마다 하나씩 연구를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내 목소리의 다양한 면면을 알게 됐다. 조금 높게 내면 이런 소리가 나오고, 조금 천천히 내면 나이 든 소리가 나오는구나 같은.
그렇다면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가 있는지.
매체 연기를 해보고 싶다. 어릴 때 < 와이키키브라더스 >라는 영화에 출연하면서 다른 데서 제의가 많이 들어왔다. 물론 전부 거절했다. 그때는 낯도 많이 가리는 데다 배우에 큰 뜻도 없었고, 오로지 받은 출연료로 기타를 사려는 목적만 있었으니까. 마흔을 조금 넘기고 난 지금에야 넉살이 생겨 말을 편하게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요즘 유튜브에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일명 '공주라(공연 없는 주말의 라이브)'를 열어 팬들과 소통하는데, 이게 너무 재밌더라. 그리고 책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생활 속 깨달음 같은 힐링 에세이 책 말이다.
라이브 경험에서 무대를 휘어잡는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일단 무대에서 '진짜 나'를 보여줘야 한다. 솔직하지 않으면 관객도 그게 거짓이라는 것을 다 알게 된다. 두렵다면 그 두려움을 숨기지 말고 그조차 열어놔야 한다는 뜻이다. 원래 공연은 잘되는 날도 있고 안되는 날도 있는 법 아닌가. 무대에 오른 뒤에는 흐름에 맡기고 물살에 감응하며 해야 한다. 그러니까 마치 사는 것과 똑같다. 계획대로 되는 건 없다. 무대에서 그저 '살아야' 한다.
작년에 20주년 콘서트를 했는데. 게스트 없이, 환복을 10번씩 해가며, 3시간을 내리 공연했다고 들었다.
물리적으로는 너무 힘들었지만, 너무 보람차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뮤지컬'을 콘셉트로 < The Musical Biuret >이라는 제목을 짓고, 21곡으로 꽉꽉 채웠다. 물론 무대도 좁고 스태프 인원도 한정적이다 보니 한계가 있는데다, 관객들이 단 1초라도 지루함을 느끼면 안 된다는 강박증이 있다보니 여간 쉽지 않더라.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시뮬레이션하고, 집에서 혼자 옷을 갈아입으며 고독한 리허설을 했다. 중간중간 들어갈 영상도 제작하고. 이번만큼은 디테일하게 무대 연출을 한 셈이다. (웃음) 여태까지 한 공연 중 가장 기억에 남고 행복했다. 끝나고 팬들이 20주년 케이크를 주는데 눈물이 왈칵 나더라.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팬들이 뷰렛, 그리고 문혜원을 사랑해 주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10대, 20대를 뷰렛과 함께한 추억이지 않을까. 가장 열정적인 순간을 같이 한 밴드이기에, 그리고 그 밴드가 변함없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팬분들에게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나를 보며 그 시절 어렸던 자기 모습을 떠올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리고 우리 뷰렛의 음악이 유행을 타지 않아 늘 들어도 좋다고 말씀해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독자적인 스타일의 힘도 있지 않나 싶다.
타이틀이 아닌, 뷰렛과 문정후의 커리어에서 꼭 들어줬으면 하는 곡을 다섯 개 뽑자면.
3집 < 세계의 끝 >의 'Frankenstein'과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하얀 눈이 와'. 그리고 문정후 앨범 중에서는 '대항해시대'. 1집 < Beautiful Violet >의 '푸른 사막의 끝'을 뽑고 싶다.
정규 4집에 대한 단서를 조금 줄 수 있나.
일단 곡은 이미 완성됐지만, 조금 숙성하는 단계다. '북극성'과 'Rock Star'도 발표만 이제 한 것일 뿐 사실은 쓴 지 좀 된 곡들이다. 잠깐 스포일러를 하자면 '꽃'이라는 곡이 있다. 디즈니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올라가는 팝스타 버전의 곡이 있지 않나. 그런 느낌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10월 말에 발매될 '나빌레라'라는 싱글이 있는데, 이는 웹툰 원작의 드라마에서 따왔다. 선공개 싱글과 궤를 같이하는 꿈 연작이다. 그 외에도 팬분들이 정말 좋아하는, 어둠의 노래들도 많이 준비했다. 홍대 < KT&G 상상마당 >에서 열릴 단독 공연도 있으니 기대 바란다.
'북극성'과 함께 'Rock star'가 추후 공개될 정규 4집에 방향성을 잡아줄 주요 싱글이 되는 건지.
맞다. 조금 적나라한 표현일 수 있는데, 그전 내 음악은 어떻게 보면 청자를 생각하지 않는 느낌이 있었다. 물을 받아 갈 사람은 고려하지 않고 일단 수도꼭지를 틀어놓는 거다. 지금은 가사나 음악에 성숙함이 묻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태까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44년을 살면서 깨달은 삶의 정수를 녹인 앨범을 선물하고 싶다. 두루뭉술하거나 피상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내가 뼛속까지 체화한 진심만을 녹여 만든 만큼, 팬들에게도 아낌없이 권하고 싶은 노래들이 실릴 예정이다.
최근 눈여겨보고 있는 뮤지션이 있다면.
'아디오스 오디오'가 떠오른다. 내가 좋아하는 마호(호재)가 속한 밴드고, 음악과 라이브도 너무 좋은데 팀워크도 정말 잘 맞는 팀이다. 앞으로 잘 될 팀이라 생각해서 매일 응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문혜원은 어떤 음악가로 기억되고 싶은지.
음, 죽어서 박제된 뒤 영원히 기억되고 싶다는 욕심은 없다. 그때는 누가 나를 기억해 준다 한들 정작 내가 그 사실을 모를 테니까. 바람이 있다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온전히 '살아서 꿈틀거릴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계속 신곡을 내고, 새로운 글을 쓰고, 화려한 무대를 보여줄 수 있는 성장과 배움을 거듭하는 그런 사람.
최근 토니 베넷(Tony Bennett)이 생전 마지막 공연에서 알츠하이머성 치매에 걸려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가 됐어도, 무대에 오르자 거짓말같이 멋진 공연을 펼치는 영상을 보며 확신했다. 촛불이 심지가 꺼질 때까지 타오르듯, 나도 숨이 끊어지는 최후의 순간까지 모든 걸 소진하며 창조적인 것을 남기고 갈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진행 : 장준환, 염동교, 정다열, 김태훈
정리 : 장준환
사진 : 정다열, 딜라이트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