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Let's Start Here.
릴 야티(Lil Yachty)
2023

by 이승원

2023.12.01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독보적인 스타일의 멈블 랩으로 고유의 영역을 형성, ‘One night’, ‘Poland' 등 히트 넘버까지 생산하며 래퍼로서 얻을 수 있는 대부분의 영예를 획득한 듯했던 릴 야티(Lil Yachty)에게도 아직 해소되지 못한 예술가적 야욕이 있었다. 잘 나가는 일개 래퍼에서 존경받는 예술가로의 도약을 꿈꾼 그는 기존의 버블검 트랩 스타일을 완전히 탈피, 앞서 걸어온 길과 완전히 상반된 방향으로 거세게 돌진한다.


그 선택은 다름 아닌 사이키델릭 록. 투팍과 비기(Notorious B.I.G.)가 과대평가됐다는 발언으로 논란이 되는 등 ‘과거’나 ‘고전' 같은 단어와는 꽤 거리가 있어 보였던 릴 야티이지만, 이번 프로젝트 속 그의 시선은 상당히 고전지향적이다.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Jimi Hendrix Experience),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 등 1960년대 위인들을 본작의 정신적 토대로 삼는가 하면, 핑크 플로이드나 펑카델릭(Funkadelic) 같은 1970년대 전설들에 대해서는 아예 노골적인 추앙을 내보이기도 한다. ‘The great gig in the sky’의 고압적 전율과 ‘Maggot brain’의 격정적 연주를 한 호흡으로 끌어와 발산하는 인트로 ‘The black seminole.’은 일종의 존경심 과시. 신선하다 못해 도발적인 시도다.


당돌한 청년의 넓은 밑바탕은 사이키델릭 록의 고전에서 멈추지 않는다. 새로운 ‘사이키델릭 얼터너티브’ 프로젝트를 꾀한 본작은 ‘네오 사이키델리아’라는 이명 아래 현대적으로 개종된 사이키델릭 록의 신고전 또한 동시에 탐닉한다. ‘The ride-’, ‘Running out of time’, ‘The zone~’ 등 앨범 곳곳에서 발화되는 팝적인 터치는 테임 임팔라의 영향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강하게 부각된 악기의 질감과 도전적이고 급진적인 곡 진행은 자연스레 이브 튜머(Yves Tumor)나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고전 거장들이 그의 정신적 모티브라면 현대 사이키델리아 거장들이 작품의 실질적 청사진인 셈이다. 대상을 앨범 단위로 구체화한다면 테임 임팔라의 < Lonerism >와 이브 튜머의 < Heaven To A Tortured Mind >로 압축, < Let’s Start Here. >를 이 둘의 방법론적 접합작이라고 보아도 큰 이상은 없다.


이러한 급진적 변혁을 혼자의 힘만으로 이뤄내진 못했을 터, 아티스트가 밑바탕을 제시했다면 기초적인 채색은 프로듀서의 몫이다. 현대 프로그레시브 팝의 절대자 캐롤라인 폴라첵과 함께 체어리프트(Chairlift)를 구성했던 패트릭 윔벌리(Patrick Wimberly)가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사운드로 작품의 개관을 조직하면, < Heaven To A Tortured Mind >를 비롯, 각자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해 온 저스틴 레이즌(Justin Raisen)·새드포니(SADPONY) 형제가 이에 활기와 역동성을 부여한다. 더불어 또 다른 네오 사이키델리아 밴드 언노운 모탈 오케스트라(Unknown Mortal Orchestra)의 멤버 제이콥 포트레이트(Jacob Portrait), 잔뼈 굵은 일렉트로닉 뮤지션 잼 시티(Jam City) 등 이외의 다양한 프로듀서진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작품에 충실히 기여하며 청각적 흥미를 돋운다. 본작의 특징적 장점인 넓은 표현 범위 역시 이로써 도출된 결과다.


만약 작품이 여기서 머물렀다면 적당히 괜찮은 평가를 내렸을 공산이 크다. 그러나 < Let’s Start Here. >와 릴 야티를 더욱 고평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이미 검증된 밑그림의 조합과 프로듀서의 일차적 채색 위에 고유의 검은빛 화풍을 인상적으로 덧입혔기 때문이다. 그 핵심은 보컬의 사용. 전반적으로 짙은 알앤비 성향과 특유의 독특한 바이브레이션, 위압적인 보컬 튜닝이 만들어낸 흑인음악적 그루브는 여타 네오 사이키델리아 음악들과 본작을 분명하게 차별화한다. 그중 곳곳에 등장하며 분위기를 환기하고 쾌감을 극대화, 청각적 서사까지 부여하는 여성 보컬 피처링은 작품의 백미. 특히 앨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The black seminole.’, ‘Drive me crazy!’, ‘Ive officially lost vision!!!!’에서 가공할 괴력을 뽐내는 윈터 고든(Wynter Gordon)의 퍼포먼스는 가히 압도적이다.


자넬 모네의 < The ArchAndroid >, 차일디시 감비노의 < Awaken, My Love! >, 썬더캣(Thundercat)의 < Drunk >,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 Igor >… 그리고 여기. 사이키델리아의 음향과 정신이 현대 흑인음악에 뿌리내린 역사에 또 하나의 알찬 결실이 맺힌다. 탈(脫)장르 시대의 완전한 개화를 알리는 Z세대 문제적 걸작. 이제 수많은 시선이 ‘예술가’ 릴 야티의 또 다른 발걸음을 향한다.


-수록곡-

1. The black seminole. [추천]

2. The ride-

3. Running out of time [추천]

4. Pretty

5. (Failure(: 6. The zone~ [추천]

7. We saw the sun! [추천]

8. Drive me crazy! [추천]

9. Ive officially lost vision!!!! [추천]

10. Say something

11. Paint the sky

12. Should I b?

13. The Alchemist.

14. Reach the sunshine. [추천]

이승원(ibgalatea116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