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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perdrama
저스티스(Justice)
2024

by 한성현

2024.05.01

데뷔 앨범을 딛고 올라서야 한다는 부담은 장르와 무관하게 강박처럼 뮤지션을 옭아맨다. 세상의 무질서한 소리를 질서의 음악으로 편집하며 태어난 저스티스에게 이는 더욱 극복하기 어려운 과제였다. 혼돈을 재현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섭리를 증명하듯 2011년 < Audio, Video, Disco >와 2016년 < Woman >은 일반적인 후속작의 궤도를 따르지는 않았으나 < >를 뛰어넘기에는 부족했다는 평가를 들어야 했다. 오랜 시간을 거친 듀오의 2020년대 첫 앨범 < Hyperdrama >는 2007년 데뷔작의 신화를 더욱 드높이는 작품이다.


'지나침'을 나타내는 단어 'Hyper'와 '드라마'를 합쳤음에도 음반은 어느 정도의 임계점 아래에서 머뭇거린다. 기현상의 조짐처럼 리듬을 끊으나 빠르게 동일한 리프의 반복으로 되돌아가는 오프너 'Neverender'가 예견하듯 'Afterimage'나 'One night/all night' 등 빅뱅의 목전에서 좌절된 꿈틀거림을 계속 목격할 수 있다. 데뷔작의 파괴적이고 날뛰는 움직임도 세밀한 샘플링 조합의 결과물이었지만 신보는 이따금씩 충돌은 있어도 도파민 수치를 제대로 건드릴 만한 폭발은 없다.


쟁쟁한 명단의 보컬 피쳐링도 마땅한 연쇄 작용을 일으키진 않는다. 현시대 사이키델릭 팝의 동의어 격인 테임 임팔라의 케빈 파커가 마이크를 잡은 트랙은 그의 음악이 늘 그랬듯 썩 괜찮은 향락적 기운을 선사하나 두 팀의 단순한 결합에 그칠 뿐이다. 미구엘과 저스티스가 아예 다른 시공간에 놓인 'Saturnine'은 레트로 붐에 쏟아져 나온 팝에 살짝 겉멋만 추가한 정도로 들릴 정도이며 썬더캣이 참여한 'The end'에서도 이목이 쏠리는 것은 폭격처럼 발사되는 리듬이다.


적나라한 옛 문법의 차용이 이뤄지는 순간에 오히려 시선이 간다. 로드 스튜어트의 'Da ya think I'm sexy?'가 미세하게 생각나는 현악 세션은 'Generator'의 빡빡한 하드코어 파도에 디스코의 반전을 끼얹고, 제목 그대로 프랑스 프로듀서 알란 브라세(Alan Braxe)에게 바치는 'Dear Alan'의 무그 신시사이저 음색과 후반부의 급격한 가속은 깜깜한 우주에서 발견한 자그마한 생존 신호처럼 들린다. 선명한 시간 여행의 흔적에서 늘 비교 대상이었던 다프트 펑크의 이름이 다시 떠오르지만 적어도 그럴싸하게 부여되는 다이나믹이다.


그래미 어워드와의 인터뷰에서 저스티스는 자신들이 항상 우주 대서사시(Space odyssey)와 같은 음악을 만들고자 했다고 밝혔다. < Hyperdrama >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한 음반이다. 그들 스스로 빚은 시뮬레이션 우주에는 무한히 팽창하는 웅장함의 아름다움과 너무나 거대한 나머지 창조자마저 초라하게 만드는, 무력감을 안기는 공허가 공존한다. 십자가 안에서 타오르는 빛이 추진을 위한 예열인지, 아니면 틀에 갇혀 발산되지 않는 에너지인지는 저스티스만이 알 것이다. 슬프게도 관찰자의 시점에서는 후자에 가까워 보인다.


-수록곡-

1. Neverender (With Tame Impala) [추천]

2. Generator [추천]

3. Afterimage (With Rimon)

4. One night/all night (With Tame Impala)

5. Dear Alan [추천]

6. Incognito

7. Mannequin love (With The Flints)

8. Moonlight rendez-vous

9. Explorer (With Connan Mockasin)

10. Muscle memory

11. Harpy dream

12. Saturnine (With Miguel)

13. The end (With Thundercat) [추천]

한성현(hansh9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