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디너리 히어로즈는 아이돌 그룹으로서는 과감했고 록 밴드로서는 한 끗이 부족했다. 시작부터 하드 록, 펑크의 색채를 띠며 확고한 아이덴티티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그동안 그 강점을 온전히 발현했다고 말하기에는 어려웠다. 그동안 보여준 모습들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그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자리를 열심히 찾아가는 성장의 여정에 가까웠다. 이는 먼저 출범한 아이돌 밴드들도 필연적으로 겪어왔던 혼란스러운 정체성 탐구 과정이기도 하다.
첫 번째 정규앨범 < Troubleshooting >은 앨범 제목처럼 그동안 계속 고민하던 문제들을 해결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가상현실 세계관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성장과 위로의 서사를 배치해 진입장벽을 크게 낮추고 강렬한 하드 록의 색채를 유지한다. 난해하거나 과한 모습 대신 정석을 택한 셈이다. 이러한 방향성은 지난 EP < Livelock >에서 보여준 직관적인 구성의 연장이자 확장으로도 볼 수 있다.
시작부터 폭발적인 에너지를 드러내는 ’No matter’가 이목을 집중시킨 후, 팝 펑크에 위로의 가사를 담은 ‘어리고 부끄럽고 바보 같은’이 그 뒤를 잇는다. 이는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의 음악적 성향을 해당 두 곡으로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영리한 전반부 구성이다. 타이틀곡 ’어리고 부끄럽고 바보 같은’은 특별한 포인트를 주기보다는 모든 면에서 무난하고 정석적으로 흘러가 깊은 인상을 남길 포인트는 부족한 대신 가장 보편적이다.
ABTB의 기타리스트 황린이 참여한 두 트랙도 강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익살스러운 ‘Paint it’, 속주가 인상적인 팝 메탈 ’Money on my mind’는 K팝 전체를 둘러봐도 흔치 않은 사운드로 무장해 앨범 내 다양성을 확보한다. 특히 ‘Money on my mind’의 후반부 기타 솔로는 스키드 로우나 머틀리 크루 같은 1980년대 메탈의 노스탤지어가 스친다. 완전히 새롭거나 번뜩이는 구성은 아닐 수 있으나 시도 자체만으로도 흥미롭다.
서정적인 곡들이 배치된 후반부는 더 킬러스나 마이 케미컬 로맨스가 연상될 정도로 화려함과 절제미를 동시에 갖춘 구성을 통해 깊은 인상을 남긴다. ‘꿈을 꾸는 소녀’는 위로의 가사와 화려하고 꽉 찬 사운드로 앨범의 하이라이트 역할을 수행한다. ‘Until the end of time’은 키보드의 주도하에 점진적인 진행을 취하고 말미의 짧은 기타 솔로로 감정을 격발한다. ‘Walking to the moon’ 역시 키보드를 중심으로 두면서 화려한 기타 리프로 포인트를 잡는다. 마지막 트랙 ’불꽃놀이의 밤‘은 선배 그룹 데이식스 스타일의 드럼앤베이스를 섞어 이질적이긴 하나 깔끔한 마무리로는 탁월하다.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는 그들이 지향하는 록 사운드와 K팝의 문법을 엮는 과정에서 고뇌의 시간이 길 수밖에 없는 그룹이었다. < Troubleshooting >는 시행착오를 반복한 고민의 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확신과 자신감으로 가득하다. 아이돌 그룹이자 록 밴드로서 본인들만의 확실한 이정표를 세우는 데 성공했으니 남은 것은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끝없는 진보다. 그 과정은 분명 전보다 훨씬 수월하고 즐거울 것이다.
-수록곡-
1. No matter
2. 어리고 부끄럽고 바보 같은
3. Undefined
4. Paint it
5. Money on my mind [추천]
6. 꿈을 꾸는 소녀 [추천]
7. Until the end of time
8. Walking to the moon [추천]
9. Moneyball
10. 불꽃놀이의 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