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시 존스 플레이리스트 1편
퀸시 존스(Quincy Jones)
주로 프로듀서 역할이 주목받다 보니 정작 퀸시 존스 명의로 떠오르는 노래가 많진 않지만 잘 찾아보면 팝과
알앤비, 소울과 재즈까지 웰메이드 명품을 쏟아낸 예술가가 바로 퀸시 존스다. 그래서 이번 퀸시 존스 플레이리스트에선 그래서 “퀸시 존스 이름이
들어간” 12곡을 담았다. 1981년 히트 앨범 < The Dude >의 ‘Ai no corrida’처럼 상대적으로 친숙한 곡부터 초기 재즈맨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초기작 ‘Evening in Paris’와 촉각이 가장 예민하던 시절의 야심작 ‘Gula Matari’, 랩뮤직을 도입한 후기작 ‘Back on the
block’ 등 칠십여 년의 유산을 통해 대중음악 대부의 손길을 만끽하길 바란다. 2부
플레이리스트에선 한층 더 익숙한 타 아티스트의 프로덕션 작품을 소개할 예정이다.
1950년대의 퀸시는 완연한 재즈맨이었다. 제목에 Jazz 나 Band(Big Band)가 들어간 음반을 주로 발표했고 아트 파머, 디지 길레스피 같은 비밥 명인들의 작품에 사이드맨 신분으로 참여했다. 주로 편곡 작업을 조력했고 트럼펫도 불었다. 1959년 작 < The Birth Of A Band! >와 더불어 가장 돋보이는 50년대 작품인 < This Is How I Feel About Jazz >는 제목처럼 퀸시 식 재즈의 진수를 담았으며 마일스만큼 혁신적이거나 콜트레인처럼 딥, 영적이진 않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웰메이드 재즈 앨범을 완성했다. 2번 트랙 ‘Stockholm sweetnin’’의 북유럽 여행에 이은그 ‘Evening in 서유럽으로 이동해 보내는 파리에서의 낭만적인 시간은 그 해 있을 파리 고전 음악 유학을 상상하며 쓴 듯 낭만적인 필체의 곡이며 주트 심스의 색소폰과 밀트 잭슨의 비브라폰, 찰스 밍거스의 베이스로 올스타 참여진이 풍성한 사운드를 완수했다.
The birth of a band (1959)
디지 길레스피와 지지 그라이스 같은 재즈 명인들과의 협업으로 숙련도를 쌓은 퀸시는 1959년 두 장의 재즈 앨범을 발매한다. 먼저 나온 < The Birth Of A Band! >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베니 골슨 작품의 ‘I remember Clifford’와 아트 블래키의 재즈 메신저스 버전이 유명한 바비 티먼스 작곡의 ‘Moanin’ 등을 커버했다. 해리 에디슨과 클라크 테리를 비롯해 트럼펫 연주자만 다섯 명에 전체적인 관악기 연주자를 십수 명 섭외할 만큼 혼 섹션에 심혈을 기울인 덕에 매끈하고도 풍성한 빅밴드 음향이 탄생했다. 9번 트랙 ‘A Change of pace’와 더불어 앨범의 유이한 오리지널 곡인 ‘The birth of a band’는 도입부부터 치고 나오는 화려한 브라스 섹션이 돋보이며 원하는 소리를 위해서라면 가감 없이 투자하는 완벽주의자적 면모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다. 폐부를 찌르는듯한 날카로운 도입부는 후술할 1971년도 곡 ‘Ironside’로 이어진다.
Gula Matari (1970)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엽 명작이 쏟아지던 클래식 록 활황기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악적 금자탑을 건설했던 퀸시는 1970년 < Gula Matari >라는 실험작을 발표했다. CTI 레이블 수장 크리드 테일러가 프로듀싱한 이 앨범은 사이먼 앤 가펑클을 재즈 풍으로 커버한 ‘Bridge over troubled water’과 캐논볼 애덜리의 동생이자 트럼페터인 냇 애덜리가 작곡한 ‘Hummin’’ 단 네 곡을 수록했지만 각 곡이 긴 덕에 러닝타임은 30분대로 충분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공용어 줄루로 “암석의 파괴”를 뜻하는 ‘Gula Matari’는 도전 정신의 집약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존의 재즈와 리듬앤 블루스에 제목처럼 아프리카 음악적 요소를 접목한 13분 긴 호흡의 곡은 퀸시의 감각이 팝에만 머무르지 않았음을 강변한다. 1969년 < Walking In Space >와 1971년 < Smackwater Jack > 사이에 놓여 있는 < Gula Matari >는 퀸시의 창의성이 극에 달했음을 입증하는 중요 아카이브다.
Ironside (1971)
간간히 머큐리(Mercury) 발매작이 나왔으나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쳐 대부분의 수작은 1969년에 계약서에 사인한 A&M에서 나왔다. 판매고가 대단치 않았지만 재즈와 퓨전, 펑크(Funk)와 디스코를 관통하는 당대 경향성을 잘 반영했던 디스코그래피가 퀸시의 트렌디한 면모를 입증했다.
셔츠에 투영된 초록빛 나무와 들판이 인상적인 앨범 아트의 1971년 작 < Smackwater Jack >은 퀸시 음반 특유의 박람회적 성격에도 전반적인 질이 준수하고 안정적이다. 제리 고핀-캐럴 킹 콤비의 ‘Smackwater Jack’과 찰리 브라운 사운드트랙으로 유명한 빈스 과랄디의 ‘Cast Your Fate to the Wind’ 같은 어난 곡조에 기댔지만 하이라이트는 스스로 빚었다. NBC에서 방영된 미국 TV 드라마 < Ironside >의 메인 테마기도 했던 ‘Ironside’는 국내 예능에 사용되어 친숙한 도입부를 비롯해 긴장감 넘치는 곡조로 < Ironside >의 범죄극적 특성을 극대화했다. 힙합 아이콘 투팍은 1993년도 음반 < Strictly 4 My N.I.G.G.A.Z… >에 실린 ‘Guess who’s back’에서 ‘Ironside’를 샘플링했다.
Summer in the city (1973)
작곡에 독보적 재능을 지녔던 퀸시는 마일스 데이비스처럼 리메이크도 퀸시 인장을 박는 능력이 탁월했다.
‘Do you believe in magic?’같은 곡으로 1960년대 중후반 활약했던
미국 포크 록 밴드 러빈 스푼풀의 1966년 곡 리메이크는 그가 편곡 마스터임을 증명했다. 원곡도 빌보드 핫100 정상에 올랐던 명곡이지만 퀸시의 필체에 완전히
다른 작풍으로 환했다. 프랑스 재즈 뮤지션 에디 루이스가 연주한 해먼드 오르간과 데이브 그루신의 펜더
로즈가 절묘하게 교차한 퀸시 버전 ‘Summer in the city’는 러빈 스푼풀관 상반된 질감의
재즈 펑크(Jazz Funk)를 연출했다. 중후반부부터 흐르는
발레리 심슨(Valerie Simpson)의 보컬도 곡의 기품에 일조했다.
Body heat (1974)
로랜스 캐스단의 1981년 에로틱 스릴러 < 보디
히트 >처럼 50주년을 맞은 < Body Heat >도 후끈하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도
공동 프로듀서를 역임한 베이시스트 레이 브라운을 필두로 얼마 전 사망한 탁월한 작곡가 겸 색소포니스트 베니 골슨,
레온 웨어와 허비 행콕, 밥 제임스와 리차드 티까지 소울과 재즈 명인을 포섭한 결과는 1970년대 중반 재즈 펑크 시대를 관통하는 수작이었고 빌보드 앨범 차트 6위의
상업적 성과까지 획득했다. 1976년 소울 명작 <
Musical Massage >의 주인공 레온 웨어의 음성과 보드랍게 쫀득한 기타와 키보드를 담은 ‘Body heat’는 레어그루브(출처를 찾기 힘든 소울 펑크(Funk) 음악 혹은 레코드) 마니아들의 관심을 끌 만한 작품이었다. 투팍 1996년 웨스트코스트 힙합 명작 < All Eyes On Me > 수록곡 ‘How do u want
it (Feat. K-Ci & JoJo)에 이 곡을 샘플링했다.
Ai no corrida (1981)
퀸시 명의의 솔로작 중 1982년도 음반 < The Dude >는 단연 압도적인 인지도를 자랑한다. 마이클 잭슨의 걸작 < Off The Wall >(1979)와 ‘Stomp!’를 수록한 브라더스 존슨의 1980년 작 < Light Up The Night >로 미다스의 손을 뽐낸 퀸시는 본인 명의의 작품으로 상승곡선을 이어갔다. 알앤비와 재즈의 초호화 라인업으로 인맥을 과시한 이 풍성한 상차림에서 ‘Ai no corrida’의 존재감은 단연 빛난다. 큰 반향이 없었던 영국 뮤지션 채즈 잔켈의 1980년 곡에 허비 행콕의 일렉트릭 피아노와 파울리뇨 다 코스타의 퍼커션, 스티브 루카서의 기타를 달아 편곡의 미학을 알렸다.
발음조차 어려운 제목에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선정적인 장면으로 논쟁적인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1976년 일본 프랑스 합작 영화 < 감각의 제국 >의 원제를 영어로 표기한 게 ‘Ai no corrida’다. 원곡자인 채즈 잔켈이 곡에 붙인 이 제목에서 “Ai no”는 일어로 “사랑의”를 뜻하고 “Corrida”는 스페인어로 “투우”를 의미해 직역하면 “사랑의 투우”가 되지만 “섹스의 오르가즘”의 의역이 나기사의 영화에 더 가깝다. 퀸시 본인도 당시 무슨 말인지 몰랐다고 하는 이 독특한 제목 덕에 노래의 관심도도 더 높아졌다.
The dude (1981)
< The Dude >에서 한 곡만 꼽긴 아쉽다. 제임스 잉그램의 대표곡으로 인식되는 ‘Just once’와 ‘One hundred ways’ 같은 알앤비 명곡을 실은 제임스 잉그램은 한동안 “퀸시의 목소리”로 활약했고 퀸시는 명품 보컬리스트에게 ‘Yah mo b there’를 수록한 데뷔작 겸 대표작 < It’s Your Night >를 선사했다. 펑키(Funky) 리듬에 패티 오스틴의 농익은 음색을 얹은 ‘Razzamatazz’와 두 브라질 음악가 이반 린스, 비토르 마르탱스의 작품 ‘Velas’처럼 총천연색 트랙이지만 퀸시가 직접 쓴 타이틀 넘버 ‘The dude’를 빼놓을 수 없다.
“천둥 엄지(Thunder Thumbs)”란 애칭을 보유했던 브라더스 존슨 출신 루이스 존슨의 베이스와 토토의 명품 세션 기타리스트 스티브 루카서의 기타가 고루 도드라지는 ‘The dude’는 1970년대 재즈 퓨전과 허비 행콕 ‘Rockit’이 웅변했던 1980년대 일렉트로를 유려하게 혼합했다. 퀸시의 작곡 솜씨와 명품 연주자들이 주조한 농밀한 소리샘은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 포획한 훌륭한 사례로 기록되었다.
Back On The Block (1989)
1981년 작 < The Dude >로 디케이드의 시작을 화려하게 열어젖혔던 퀸시는 1989년 또 하나의 야심작 < Back On The Block > 로 80년대의 문을 닫았다. 위대한 재즈 보컬 엘라 피츠제랄드와 사라 본부터 빅 대디 케인과 아이스 티 같은 힙합 전사까지 음악 인맥 총동원한 이 음반은 뉴잭스윙과 랩의 도입으로 오십 대 중반 음악가의 영민한 감각과 시대 감응을 입증했다. 거장의 실험과 도전에 평단은 뜨겁게 반응했고, 퀸시는 < Back On The Block >을 통해 1991년 제33회 그래미에서 “올해의 음반(Album Of The Year)” 포함 여섯 부문을 가져갔다. “듀오 혹은 그룹에 의한 최우수 랩 퍼포먼스(Best Rap Performance By A Duo Or Group)”를 마찬가지로 수상한 타이틀 넘버 ‘Back on the block’은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 더 퓨리어스 파이브의 멜리 멜과 뉴잭스윙의 선구자 쿨 모디의 랩에 퀸시와 아들 퀸시 딜라이트 존스 3세가 직접 찍은 화려한 리듬으로 6분이 지루할 새 없다.
Setembro (Brazilian wedding song) (1989)
스티비 원더와 콜라보한 ‘Samurai’로 유명한 브라질 가수 자반(Djanvan)과 오는 11월 24일 내한하는 위대한 MPB(무지카 포풀라르 브라질레리아, 브라질 대중음악) 거장 이반 린스도 인스타그램에서 "퀸시는 내 국제적 음악 경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다"라며 그와의 추억을 소회했다. 초호화 라인업의 1989년 작 < Back On The Block >에 수록된 낭만적 분위기의 ‘Stembro (Brazilian wedding song)’이 바로 이반 린스의 작품이며 그는 이미 1981년 음반 < The Dude >의 ‘Velas’ 작곡자기도 했다. 린스 특유의 따스한 선율에 명품 세션연주자 그렉 필링게인즈의 리듬워크를 결합한 ‘Setembro’는 알앤비와 브라질리언의 우수한 융합 사례로 귀결했다. 웨더 리포트 원작 ‘Birdland’의 재즈 퓨전, 가족 그룹 드바지의 엘 드바지가 참여한 ‘The secret garden(sweet seduction suite)’과 더불어 음반의 스타일적 다양성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