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시 존스 플레이리스트 2편
퀸시 존스(Quincy Jones)
지난 퀸시 존스 플레이리스트 1편이 퀸시 본인 명의로 된 작품을 다뤘다면 이번엔 프로듀서로 참여한 타 아티스트의 곡을 골랐다. 1950년대부터 트럼페터 사이드맨과 빅밴드 편곡으로 재즈 뮤직에 대한 내공을 탑재한 퀸시는 1957년 파리 유학에서 수학한 클래시컬 뮤지까지 일찌감치 음악 문법에 통달했다. 인품과 실력 덕에 레이블의 신뢰와 계약을 따낸 그는 예술성과 대중성의 공존 하에 동료 뮤지션의 색깔을 살리는 명품 프로듀싱으로 대중음악계 미다스의 손으로 자리매김했다. 팝을 토대로 소울과 펑크(Funk), 재즈와 랩에 이르기까지 카멜레온처럼 변이하면서도 작품의 질적 수준을 놓치지 않았다.
헬렌 메릴 - (I was) born to be blue (1955)
이성과 감성의 탁월한 조화로 비밥 트럼페터의 선두 주자로 기대를 모았지만, 교통사고로 요절한 클리포드 브라운과 퀸시는 인연이 깊었다. “브라우니” 클리포드의 1953년 작 < Clifford Brown Big Band In Paris >에 트럼페터로 참여한 퀸시는 클리포드와 아트 파머가 협연한 1956년 < Memorial >의 절반을 제작했다. 클리포드 생전인 1954년 12월에 녹음되어 1955년에 발표된 미국 재즈 보컬리스트 헬렌 메릴의 데뷔 앨범 < Helen Merrill >은 메릴과 퀸시, 클리포드 세 사람이 이룩한 아름다운 삼각형 같은 작품이다.
약간 허스키한 음색으로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메릴의 가창은 감정적이고 예민하나 그윽한 클리포드의 트럼펫 음색 덕에 부드러이 중화된다. 주인공은 물론 메릴이지만 클리포드 이외에도 대니 뱅크의 플루트와 클라리넷, 오스카 페티포드의 첼로와 베이스 같은 기악이 빛날 수 있던 건 퀸시의 탁월한 지도 편달 덕택이었다. 대니 뱅크의 플루트가 감미로운 오프닝 트랙 ‘Don’t explain’과 배리 갈브레이스의 기타가 감칠맛 나는 ‘Yesterdays’, 조지 거슈윈의 영원한 명곡 ‘’S wonderful’ 가운데에서도 오랫동안 사랑받는 재즈 스탠더드로 분류되는 ‘(I was) born to be blue’는 메릴 보컬의 진수를 들려줬다.
클리포드 브라운 - Stockholm sweetnin’ (1956)
1950년대 중반부터 캐논볼 애덜리나 소니 스팃, 클라크 테리 같은 비밥 명인들의 음반에 편곡자로 활약했던 퀸시는 프레스티지에서 발행한 클리포드 브라운의 1956년 사후 앨범 < Memorial >의 1~4번 트랙을 제작했다. 스물다섯에 세상을 등진 비운의 천재 트럼페터 클리포드 브라운의 연주가 왠지 모르게 더 구슬픈 이 음반은 1953년 뉴욕에서 녹음한< Clifford Brown And Art Farmer With The Swedish All Star >과 같은 해 뉴욕에서 녹음한 < A Study In Dameronia >의 합본으로 당시 재즈 음반에선 왕왕 존재하던 형태다.
모던 재즈의 위대한 두 트럼페터 클리포드 브라운과 아트 파머의 중심축 아래 피아노의 뱅트 홀버그 알토 색소폰의 아르네 돔네러스 같은 스웨덴 연주자로 구성된 다국적 그룹은 1950년대부터 이미 미국과 유럽 재즈 뮤지션들의 교류가 활발했음을 나타낸다. 북유럽의 투명한 얼음이 이미지화되는 퀸시의 곡조에서만큼은 클리포드의 비극이 아닌 낭만과 이국적 분위기를 두루 드리운다. 곡에 만족했던 퀸시는 자신의 1957년 작 < This Is How I Feel About Jazz >에 ‘Stockholm sweetnin’을 다시금 수록했다.
레슬리 고어 - It’s my party (1963)
퀸시는 결코 장르 음악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흑백을 아우르는 범용성과 대중성의 안목은 프랭크 시나트라와 마이클 잭슨 같은 팝스타들에게 적용되었고 “1963년의 현상”과도 같았던 레슬리 고어의 성공 신화에도 그의 몫이 지대했다. 1963년에만 ‘It’s My Party’ (1위), ‘Judy’s Turn to Cry’(5위), ‘She’s a Fool’ (5위)와 ‘You Don’t Own Me’(2위)까지 네 개의 탑10 히트송을 내놓은 레슬리는 1963년과 1965년 사이 다섯 장의 정규작을 모두 퀸시에게 일임한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머큐리 레코드의 설립자 어빙 그린으로부터 1964년 부회장 자리를 승계받은 퀸시의 팝스타 프로젝트에 가깝다.
아티스트의 색채를 살리고 작품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프로듀서의 본분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퀸시는 재즈와 클래시컬 뮤직 같은 장기보다는 고어의 캐릭터에 알맞은 간결하고 앙증맞은 팝뮤직을 보조했고 < I’ll Cry If I Want To >라는 간결하지만, 놀라운 결과물이 탄생했다. 아서 해밀턴의 ‘Cry me a river’와 ‘Judy’s turn to cry’ 등 울음에 관한 제목이 대다수인 구성과 달리 ‘It’s my party’의 곡조는 명랑하지만, 자신의 생일잔치에 다른 소녀의 시시덕거리며 비수를 꽂는 내용이다. 골치 아픈 가사와 달리 현실에선 만 열일곱 나이에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정복하며 팝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사라 본 - The girl from Ipanema (1965)
퀸시는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와 높은 시너지를 구현했다. 토니상 수상 등 배우로도 활약했던 다이안 캐롤과 재즈 보컬의 또 다른 이름 엘라 피츠제럴드, 명곡 ‘Mad about the boy’를 합작한 디나 워싱턴까지 목록이 연쇄했다. 1997년 영화 < 접속 > 삽입곡으로 국내에 알려진 ‘A lover’s concerto’의 주인공 사라 본의 역량도 퀸시의 조력 아래 한 차원 상승했다.
1964년과 1965년에만 차례대로 < Sassy Swins The Tivoli >와 < Vaughan With Voice >, < ¡Viva! Vaughan >과 < Sarah Vaughan Sings The Mancini Songbook >을 합작할 만큼 동반관계가 의욕적이었다. 보사노바의 유행이 한풀 꺾인 1965년에 나온 < ¡Viva! Vaughan >는 그러나 비교적 순탄한 보컬 재즈를 구사하던 사라의 음악적 변신이라는 점에서 유의미하며 이미 1962년 < Big Band Bossa Nova >로 해당 스타일의 통찰력을 드러냈던 퀸시의 내공도 유효하다. 보사노바의 진수와도 같은 ‘The girl from Ipanema’에서 그래미와 오스카를 수상한 미국 작사가 노먼 김벨이 쓴 영어 가사를 능숙하게 소화한 사라는 아스트뤼드 질베르투의 순진무구함과는 또 다른 원숙한 매력을 선보였다.
마이클 잭슨 - Don’t stop ‘til you get enough (1979)
대중에게 퀸시 존스는 “마이클 잭슨의 프로듀서”로 잘 알려져 있다. 역대 최고의 보이그룹 잭슨 파이브의 앳된 프론트퍼슨에서 성인 아티스트이 되어 발매한 < Off The Wall >(1979)와 < Thriller >(1982), < Bad >(1987)가 말 그대로 대중음악사를 뒤흔들며 불가침 신화를 형성했다. 퍼포머에 비해 잘 부각이 안 되는 프로듀서지만 이 트릴로지의 주역으로 퀸시 존스를 언급할 만큼 그 역할이 지대했다.
마이클이 다이애나 로스와 함께 출연했던 1978년 영화 < 더 위즈 >가 도원결의의 계기였다. 대망의 첫 솔로 앨범을 위한 프로듀서를 물색하던 마이클은 마침 < 더 위즈 >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던 퀸시에게 “주변에 괜찮은 인물 있나요?” 물어왔다. 평소 마이클의 재능을 높이 샀던 퀸시의 “내가 할게!” 호쾌한 응답에 역사가 시작되었다.
삼부작 중 가장 흑인 음악적 성향이 진한 < Off The Wall >은 당대를 대변하던 디스코와 펑크(Funk), 리듬 앤 블루스를 아우르며 MJ의 군계일학적 달란트를 과시했다. 사실 한 곡만 집어내기에 민망할 정도로 잘 만든 트랙으로 가득하다. 퀸시와의 인연으로 참여했을 가능성 높은 패티 오스틴과의 듀엣 ‘It’s the falling in love’과 떨리는 음성의 ‘She’s out of my life’같인 감성적인 곡들 사이로 디스코 명작 ‘‘Don’t stop ‘til you get enough’는 단연 빛난다. 자작곡으로 천재성을 입증한 이 곡은 앨범엔 6분, 스튜디오 데모는 7분 40초까지 러닝타임이 불어났으나 어느 버전도 고루함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잘 짜여있어 3분짜리 싱글이 되려 아쉽게 느껴진다.
루퍼스 & 샤카칸 - Do you love what you feel (1979)
1978년 데뷔 싱글 ‘I’m every woman’으로 존재감을 피력하고 프린스 원곡의 ‘I feel for you’로 1984년을 강타한 “펑크의 여왕(Queen of Funk)” 샤카 칸의 초기 경력은 시카고 출신 펑크 집단 루퍼스에 속다. 스티비 원더가 선물한 ‘Tell me something good’과 후에 메리 제이 블라이즈가 리메이크한 ‘Sweet love’로 잘 알려진 이 밴드의 1979년 8집 < Masterjam >의 프로듀서가 퀸시 존스다. 샤카의 마지막 참여작이기도 한 < Masterjam >에서 단연 돋보이는 빌보드 핫100 30위의 히트송 ‘Do you love what you feel’은 루퍼스의 건반 연주자 호크 울린스키(Hawk Wolinski), 퀸시의 멀끔한 프로덕션이 두루 빛나는 알앤비와 디스코의 교집합이다. 퀸시의 1978년 디스코 음반 < Sounds… And Stuff Like That! >의 오프닝 트랙 ‘Stuff like that’에서 보컬을 맡은 샤카도 다시금 퀸시와의 놀라운 호흡을 드러냈다.
조지 벤슨 - Give me the night (1980)
1967년 작 < The George Benson Cookbook >처럼 1960년대에 주로 소울 재즈를 구사했던 독보적인 재즈 기타리스트 조지 벤슨은 1970년대 퓨전 재즈 시기에 영합, 출세작 < Breezin’ >을 내놓는다.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오른 이 앨범 이후로 1977년 < In Flight >와 1979년 < Livin’ Inside Your Love >의 성공으로 상업적 전성기를 맞았다. 기세를 모아 발매한 1980년 작 < Give Me The Night >에서 무르익은 팝적 감수성과 보컬, 기타 양단의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펼쳐 보였다.
관악기 연주자 제임스 무디가 참여한 ‘Moody’s mood’와 고품질 연주곡 ‘Off broadway’, 브라질 거장 이방 린스가 작곡한 ‘Love dance’ 등 전곡이 걸출한 이 앨범에서 역시 타이틀 곡 ‘Give me the night’의 무게감이 특출나다. 소울과 퓨전 재즈에 디스코를 가미한 이 멋들어진 작품에서 퀸시는 본인 명의의 1979년 음반 < Sounds… And Stuff Like That! >과 마이클 잭슨의 걸작 < Off The Wall >에서 함양한 디스코 감각을 ‘Give me the night’에 여과 없이 투여했다. 빌보드 싱글 차트 4위와 1981년 그래미 최우수 알앤비 보컬 남자 부문을 받은 이 노래의 작곡자는 영국 펑크(Funk) 밴드 히트웨이브 출신 로드 템퍼튼으로 퀸시와의 작곡 프로듀싱 파트너십은 마이클 잭슨의 ‘Thriller’에서 다시금 발휘되었다.
마이클 잭슨과의 삼부작 이외의 가장 우수한 프로덕션 성과는 형제로 구성된 미국 펑크(Funk) 밴드 브라더스 존슨과의 합작품일는지도 모른다. 주변의 무수한 펑크 집단을 제치고 번개 치는 릭의 조지 존슨과 “천둥 엄지” 루이스 존슨의 재능꾼 형제를 선택한 퀸시는 1976년 데뷔작 < Look Out For #1 >를 통해 단숨에 이들을 정상급 뮤지션으로 끌어올린다. 빌보드 앨범 차트 9위에 오른 이 작품엔 후에 퀸시 존스 < Back On The Block >에 다시 실린 ‘I’ll be good to you’와 형제가 퀸시와 함께 쓴 ‘Get the funk out ma face’가 실려있다. 셔기 오티스의 사이키델릭 소울 클래식 ‘Strawberry letter 23’과 < Right On Time >과 건반의 데이비드 포스터, 기타의 래리 칼튼과 스티브 칸, 드럼의 하비 메이슨 등 특급 세션을 구성한 3집 < Blam! >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브라더스 존슨과 퀸시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합작품 < Light Up The Night >도 빌보드 앨범 차트 5위와 알앤비 앨범 차트 1위로 화양연화를 장식했다. 마이클 잭슨과 로드 템퍼튼 등 참여 명단이 화려한 이 음반은 기존의 펑크와 알앤비에 포스크 디스코까지 경향성을 읽어냈고 조지 존슨의 보컬이 산뜻한 ‘Light up the night’와 감미로운 ‘Treasure’, MJ의 목소리가 담긴 ‘This had to be’같은 소구력 높은 트랙들을 수록했다. 위대한 작곡가 템퍼튼이 가세한 ‘Stomp!’는 브라질 타악기 연주자 파울리뇨 데 코스타의 퍼커션과 토토의 키보디스트이며 MJ의 ‘Human nature’를 쓴 스티브 포카로의 신시사이저 프로그래밍이 조화로운 브라더스 존슨 경력의 백미(白眉)다.
패티 오스틴 - Baby, come to me (1981)
제임스 잉그램과 더불어 < The Dude > 성공의 일등 공신 중 하나인 알앤비 싱어송라이터 패티 오스틴도 퀸시와 막역했다. 1976년 데뷔작 < End Of A Rainbow >를 비롯한 세석 장의 초기작을 당대의 프로듀서 크리드 테일러가 설립했던 CTI에서 발매했던 패티는 1981년 정규 4집 < Every Home Should Have One >부터 퀸시가 세운 Qwest로 둥지를 튼다. 결과는 빌보드 200(앨범 차트) 36위의 사상 최고 성적. 6개월 간격으로 나온 < The Dude >와 더불어 퀸시의 정력적인 행보와 두 사람의 찰떡 파트너십을 드러냈다.
비교적 저조한 싱글 차트 55위의 ‘Every home should have one’과 달리 제임스 잉그램과 듀엣한 ‘Baby, come to me’는 패티의 첫번째 탑10을 안겨주었다. 미국 일일 드라마 < General Hospital >을 통해 유명세를 떨친 이 작품의 작곡자는 마이클 잭슨의 ‘Baby be mine’과 ‘Thriller’를 쓴 로드 템퍼튼. 2년 후 잉그램과 ‘Yah mo b there’를 합작하는 마이클 맥도널드까지 백 보컬로 가세한 웰메이드 트랙은 스모키 로빈슨의 앨범 < A Quiet Storm >에서 따온 콰이어트 스톰(Quiet Storm)란 장르처럼 부드럽고 낭만적이며 재즈적인 색채를 드리웠다.
도나 서머 - Love is in control (finger on the trigger) (1982)
1978년 디스코 성향의 앨범 < Sounds… And Stuff Like That!! >을 발매했던 퀸시는 디스코의 여왕 도나 서머와도 손잡았다. 최전성기인 1979년 작 < Bad Girls >에선 한 풀 꺾였지만 빌보드 앨범 차트 20위로 여전한 화력을 보여준 1982년 < Donna Summer >의 프로듀서를 역임한 것이다. 조르지오 모로더와 피트 벨로트가 공동 제작한 1980년 전작 < The Wanderer >의 상업 수치에 불만족한 레이블 게펜은 마이클 잭슨과의 협업으로 또렷한 성과를 이뤄낸 퀸시에게 기대를 걸었다.
팝적인 매력을 선보인 ‘The woman in me’과 존 앤 반젤리스를 구성했던 예스의 존 앤더슨과 반젤리스가 작곡한 독특한 질감의 혼종물 ‘State of independence’처럼 팔레트 속 물감이 다채로운 이 음반에서 빌보드 핫100 12위에 오른 ‘Love is in control (finger on the trigger)’는 단연 돋보인다. 미국 영화음악가 마이클 보디커의 도입부 보코더를 비롯 신시사이저 비중이 도드라진 이 곡은 생악기 위주의 1970년대 디스코와의 작별 및 포스트 디스코와 일렉트로, 프리스타일 같은 장르를 예견했다. 이 노래와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곡 제공한 ‘Protection’은 25회 그래미에서 각각 최우수 알앤비 보컬 퍼포먼스와 최우수 록 보컬 퍼포먼스에 후보 지명되며 < Donna Summer >의 다채로운 스타일을 입증했다.
제임스 잉그램 - Yah mo b there (1983)
많은 이들이 제임스 잉그램의 대표곡으로 인식하는 ‘Just Once’와 ‘One hundred ways’의 공식 주인은 퀸시 존스며 잉그램은 피처링 아티스트로 명기되어 있다. 퀸시의 솔로작 중 유명세를 떨친 1981년 음반 < The Dude >에 두 곡이 실린 덕분이다. 앨범 성공의 견인차 역할을 한 잉그램에게 안겨준 선물이 비교적 늦은 나이에 나온 1983년 데뷔작 < It’s Your Night >고 소울 펑크(Funk)를 아우른 준수한 음악성과 탁월한 가창력을 패키징한 본작 덕에 잉그램은 1980년대 알앤비 기수로 급부상한다.
역시나 < The Dude >의 조력자 중 하나인 패티 오스틴과 입맞춘 ‘How do you keep the music playing?’ (45위)와 아내 신시아 와일과 환상적인 파트너십을 이뤘던 명작곡가 배리만이 쓴 ‘There’s no easy way’ (58위), 잉그램 본인이 직접 작곡한 디스코 풍 ‘Party animal’ 이 차트 미진입 등 싱글시장에선 미진한 반응이지만 싱글 차트 19위에 오른 ‘Yah mo b there’가 체면치레했다. 히브리어로 신을 뜻하는 야훼를 축약한 Yah로 “신이 거기 있어요”라는 의미를 형성한 독특한 제목의 곡은 마이클 맥도널드의 가세로 날개를 달았다. 스틸리 댄과 두비 브라더스처럼 참여작마다 자신의 인장을 새겨왔던 맥도널드와 잉그램은 용호상박으로 흑백 리듬 앤 블루스 가창의 진수를 들려줬다. 이 곡으로 1985년 제27회 그래미에서 “그룹이나 듀오가 펼친 최우수 알앤비 퍼포먼스(Best R&B Performance By A Duo Or Group With Vocal) 수상의 영광도 품었다.
프랭크 시나트라 - L.A. is my lady (1984)
영국 공영방송 BBC는 퀸시 존스의 부고 기사 머릿글로 “마이클
잭슨과 프랭크 시나트라, 레이 찰스를 비롯해 많은 뮤지션과 협업한”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미국 대중연예사의 거인 시나트라와의 협업은 퀸시에게도 굵직한 이력이었다.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가 참여한 시나트라의 1964년 작 < It Might As Well Be Swing >엔 ‘Fly
me to the moon’과 ‘I wish you love’, ‘I can’t stop
loving you’같은 친숙한 곡이 실렸고 1950-60년대에 걸쳐 재즈와 소편성 오케스트라에
통달한 퀸시가 빅밴드의 지휘자 겸 편곡자를 역임했다.
20년이 흘러 재회한 퀸시와 시나트라는 1984년 작 < L.A Is My Lady >를 합작했다. 로스엔젤레스의 야경과 시나트라의 사진의 앨범 아트가 인상적인 이 음반은 콜 포터의 ‘It’s all right with me’와 쿠르트 바일의 ‘Mact the knife’같은 고전들을 소화했고 빌보드 재즈 앨범 차트 8위를 수확했다. 부부 작곡 듀오 알란, 마릴린 버그만과 퀸시와 페기 립튼 부부가 참여한 타이틀 곡 ‘L.a is my lady’는 풍성한 사운드와 팝적인 편곡, 농익은 가창이 잘 배합된 유종의 미였으며 곡 자체의 매력보다도 프랭크 시나트라와 퀸시 존스 세기의 두 거인이 공조한 마지막 작품이란 상징성이 더 강하다.
[퀸시 존스(1933 - 2024), 미국 음악사의 위대한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