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면의 자아를 주조해 적재적소에 투영하는 콘셉트와 양껏 채운 곡 수, 화려함과 무게감이 교차하는 조역의 이름값까지 부단히 공들인 두께가 돋보인다. 문제는 불균형. 음식의 양과 그 의도, 파티의 분위기와 참석한 손님이 어우러지지 못하니 성찬을 준비했음에도 허기가 가시지 않는다. 애초에 배를 채우는 일이 목적이 아니었다기엔 허울뿐인 코스가 많다. 잠시는 즐거운 잔상으로 남을 수 있겠으나 그 기억은 곳곳에서 벌어진 또 다른 잔치에 희석될 뿐이다.
적확한 음악, 주인공 리사, 이따금 게스트의 입을 빌려 전달하기도 하는 메시지까지 < Alter Ego >는 세 조건의 일치가 무엇보다 중요한 작품이다. 그러나 초점이 맞춰질 매 순간마다 하나씩 자리를 비운다. 도자 캣과 레이의 지원을 받은 ‘Born again’과 퍼포먼스에 집중하도록 짜여진 ‘Rockstar’의 기개가 힘차게 포문을 열지만 정작 리사는 보이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개성과 자신감이 ‘New woman’에서 구체화된다 한들, 이번엔 조력자로 나선 로살리아와의 호흡이 불현듯 낯선 그림을 그린다.
반면 미국의 두 래퍼, 퓨처와 메간 더 스탈리온의 유연한 래핑에 힘입은 ‘Fxck up the world’와 ‘Rapunzel’의 연계는 앨범의 정점으로써 발광한다. 다섯 가지 페르소나 중 각각 냉철한 빌런에 해당하는 빅시(Vixi)와 Y2K 스타일로 자존감을 뽐내는 키키(Kiki)의 형상이 음악 위를 자유롭게 뛰논다. 두 곡 모두 약 십 년 전을 떠올리게 하며 최근의 사운드 유행과는 멀어져 있으나 몰입을 깨지 않는 지점에서 콘셉트의 비중을 높여 우려를 자연스레 불식한다. 더불어 피처링 진에 할애한 무게 변화와 함께 스토리텔링에 빈틈을 드러낸 후반부 트랙과 달리 위 두 곡은 높은 완성도를 담보한다.
물론 이후 도자 캣과 사브리나 카펜터의 경계에서 본유의 농도가 묽어진 ‘Moonlit floor’, 작년 한 해를 뜨겁게 달군 타일라 기용 이유에 대해 의문을 남긴 ‘When I’m with you’, 찰리 XCX의 역작 < Brat >의 영향권을 상기한 ‘Chill’까지 자신의 명의로 세운 성대한 구조물임에도 리사는 연신 흐릿한 인상으로 분한다. 번듯한 건물에 층마다 쓰임새를 정하고 입찰까지 받았으나 결국 매출과 공실에 시달리는 모양새와 같다. 트랙 간 품질의 고저 차가 명확해 더욱 두드러져 보인 까닭 또한 무시할 수는 없겠으나 선공개 곡이 되레 상위 점수를 부여받는 모습이 쓸쓸할 따름이다.
블랙핑크 멤버들의 솔로 복귀가 잇따른 시기, 글로벌 히트 싱글을 남기는 일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전보다 자유로워진 작업 환경 속 음악가로서의 정체성과 의중, 그리고 무엇보다 이를 표현할 음악이 우선돼야 한다. 리사도 분명 알았을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 Alter Ego >는 오히려 적재정량 초과에 가깝다. 더구나 눈에 띄는 상자에 담아 여러 장치로 멋을 더했으니 만듦새에서 내용물과의 괴리가 벌어져 선물을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겸연쩍다. 여러 인격을 펼쳐놓기에 앞서 뮤지션 리사로서의 온전한 자아 설득이 먼저는 아니었을지 물음표가 남는다.
-수록곡-
1. Born again (Feat. Doja Cat, RAYE) [추천]
2. Rockstar [추천]
3. Elastigirl
4. Thunder
5. New woman (Feat. RosalÍa)
6. Fxck up the world (Feat. Future) [추천]
7. Rapunzel (Feat. Megan Thee Stallion) [추천]
8. Moonlit floor
9. When I’m with you (Feat. Tyla)
10. Badgrrrl
11. Lifestyle
12. Chill
13. Dream
14. Fxck up the world (Vixi Solo Version)
15. Rapunzel (Kiki Solo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