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촬영한 액션 활극, 바밍타이거 단독콘서트 ‘비둘기와 플라스틱’
바밍타이거(Balming Tiger)
“영화 같다”는 칭찬은 일상의 상위 격 무언가를 목격했을 때 주로 쓰인다. 촬영장 콘셉트를 차용한 바밍타이거의 이번 공연은 작금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순간을 선사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메이킹 필름과 약간의 장면만을 관객에게 공개한 덕에 상상력을 자극시켜 한 번의 시연만으로 수천 가지 스토리라인을 쓰게 만드는 힘. 지난 주말 예스24라이브홀에서 이틀간 촬영을 마친 ‘비둘기와 플라스틱’은 수천 명의 스태프를 동원하고, 그들의 눈과 귀로 담은 초대형 블록버스터다.
“이름을 지우면 남는 것은 없다고?”
- ‘Pigeon and plastic’ 中 -
박정민, 심은경 등 배우들이 바밍타이거 멤버들의 명의를 가져가고, 실제 바밍타이거는 그들의 스턴트로 극에 임한다. 그야말로 이름을 지우며 언더독으로 무대에 오른 셈. 그러나 이들의 당차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감이 결국 메인 카메라 앞을 꿰차는 전개는 “제목에 연연하기보다 재목(材木)이 돼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명확한 본질은 모든 것을 관통한다는 사실을 원진, 머드 더 스튜던트, 오메가 사피엔, 소금 네 명의 실연자들이 몸소 보여주며 상기 가사 속 물음에 답했다.
세트 리스트 또한 바밍타이거의 메시지를 명확히 전한다. 분노를 표출하는 ‘Pop the tag’부터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을 살길 응원하는 ‘Big butt’, ‘Buri buri’ 등으로 마무리한 공연은 “에너미(Enemy)가 아니라 에너지(Energy)”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객석 역시 그에 호응해 일제히 같은 움직임으로 손과 몸을 흔들었다. ‘Spirit chaebol’ 같이 간단한 안무를 동반하는 곡에서 천 명 이상이 따라 추는 춤은 그야말로 장관.
“그대 칭찬 먹고 사는 게 낙, 네겐 빈틈없는 좋은 모습만을.”
-‘Spirit chaebol’ 中-
음악에 최대한 집중했던 작년 말 첫 번째 콘서트 ‘World Expo ‘24’에 비해 볼 거리가 훨씬 풍성해졌다. 영화 < 헤어질 결심 >, < 국제시장 > 등의 미술감독을 맡았던 류성희가 제작한 무대 세트는 직관적이고도 정교했다. 구옥의 붙박이장, 창문, 심지어는 새우탕면 박스 등이 생생한 시각 효과를 불어넣는 아래 기능적 역할도 충실히 이행한 것. ‘영웅은 일시적으로 숨어 있어도 때가 되면 세상에 드러나게 마련’을 뜻하는 맹호복초(猛虎伏草) 벽면 족자는 공연의 시놉시스를 함축한 완벽한 일치다. 이 네 글자는 바밍타이거의 웹사이트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음악감독으로서 소리를 진두지휘한 실리카겔 김한주와 밴드 마스터 멀수를 중심으로 한 밴드 라이브도 몰입에 한몫 했다. 팀의 본격적 서막을 알렸던 ‘Armadillo’부터 인상적인 인트로가 추가된 ‘Kamehameha’ 그리고 최근 발매곡 ‘Wash away’와 ‘나란히 나란히’의 연속은 청각적 희열에 중점을 둔 쾌거다. ‘5:5 Dharma’, ‘Btb’ 등 기존 곡의 획기적인 편곡과 ‘Pigeon and plastic’의 뮤지컬 같은 변신은 이번 콘서트에서만 느낄 수 있던 찬미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아쉬워는 말길, 밴드 세트로 ‘2025 펜타포트 페스티벌’에 오르기로 한 만큼 국내에서 이 박동을 느낄 기회는 아직 있다.
“난 이미 답을 알아냈어, 네게 말해줄 건 오직 Trust yourself.”
-‘Trust yourself’ 中 -
본 공연이 끝날 무렵, 숨을 고르고 “여러분이 딱 한 가지만 가져갈 수 있다면 이 메시지였으면 좋겠다”며 ‘Trust yourself’를 외쳤다. 이렇듯 바밍타이거는 두 시간동안 열심히 긍정을 노래했으며, 관객은 그에 호응해 화합하고 연대했다. 감정을 불어넣는 측면에서도 훌륭했지만 그보다 더 크게 국내 음악 신이 나아갈 방향성도 제시한 공연이었다. 소리로부터 출발한 공감각적 진화와 발전, 연출의 파격적 진보는 힙합에 뿌리를 두고 록의 기조를 담아 “얼터너티브 K팝 그룹”으로 최종 개혁안을 낸 바밍타이거의 행보와도 닮았다.
다시 한 번 느꼈다. 이 팀의 최대 매력은 난해할 것 같은 친구들이 만드는 직관적이고 꽂히는 결과물이라는 걸. 제멋대로인 개성 속에도 각고의 노력 끝에 빚은 질서가 존재한다. 메인스트림으로 자리한 K팝 이면에 대안으로 우뚝 선 예술인 집단은 점점 더 견고해지고 있다. 넓게 보면 아시아, 좁히자면 한국적인 멋을 세계에 널리 펼치며 몽골, 홍콩, 영국 등에 자신들의 축제를 뿌리내릴 것을 예고한 이들의 행선지는 무한 확장을 거듭하는 중이다. 국내 음악의 동결을 깨고 입체성을 불어넣는 동적인 존재들이 물들이는 지구는 형형색색으로 빛날 것이다.
사진: CAM, 정기엽(#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