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댄 봄비를 좋아하시나요?
봄비의 촉감이란 다소 서늘하다. 때론 약간의 청량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여름 가을 건너 뛰고, 겨울비의 촉감이란 무지하게 싸늘하다. 때론 약간의 살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전자가 갑자기 찾아온 설레는 '사랑'이라면, 후자는 어쩔 수 없이 맞이해야 하는 서글픈 '이별'의 감수성과 닮아 있다. 여느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을, 계절의 감각을 담은 비로 그려낸 공감할 만한 노래가 여기에 있다. 어느덧 4집 <A Year Out In The Island>로 인사하게 된 임현정의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이 그것이다.
'햇살처럼 눈부시게 다가~'온 임현정은 모 음료 광고음악에 쓰인 '첫사랑'으로 어필하긴 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름이나 얼굴보다 노래가, 혹은 노래만이 알려진 가수다. 그해 라디오와 TV에서 '첫사랑'이 자주 흘러나오곤 했지만 그게 2집 수록곡이었다는 것은 많이 알지 못했다. 거기다, 1집부터 현재까지 전곡을 작곡 작사한 출중한(혹은 희귀한?)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것도 몰랐다. 꽤 오랜 시간동안 세차게 내리는 '겨울비'를 맞았던 그녀는 긴 동면에서 깨어나 4집과 함께 맞는 '봄비'로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전반적인 흐름은 사랑에 얽힌 다양한 희노애락(喜怒哀樂)이다. 타이틀 곡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이나 '사랑이 진 그 자리에 추억이 핀다'라는 시적인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정인(情人)과의 가슴 아픈 연을 골자로 한다. 슬픔을 달래주는 것은 또 다른 슬픔일까. '인연', '회상', '재회' 등 비와 궁합을 이루는 처연한 곡들 일색이다. 그러나 지나친 침체는 금물. 적당히 감정의 수위를 조절해 'A shining spring song', '건전가곡' 등 생기를 주는 희망가들도 배치해 놓았다.
또한 그녀는 전 곡의 어머니 노릇도 독톡히 한다. 작곡․작사는 물론이고 편곡과 프로듀싱에까지 손을 뻗친 이 다재다능한 원더우먼은 '첫사랑'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려 무던히도 애썼다. 그녀 특유의 걸쭉하고 시원한 목소리는 비에 젖어 촉촉해질 때도 있고, 발성 뿐 아니라 'Caffeine'에서 드러나듯 아낌없이 현악을 투입해 곡의 밀도를 높이기도 한다. 'Corpse flower'(일명 시체꽃. 꽃에서 고기 썩는 냄새가 난다 한다)에 흐르는 살벌한 비장미 또한 집중적인 관찰의 대상이다.
봄에 나온 음반이지만 봄의 향기보다는 봄의 향수에 주력했다. 어찌됐든, 빼앗긴(?) 들판에도 봄은 왔다. 이제는 대중 앞에 자신있게 나아가는 일만이 남았다. 그녀는 더 이상 '첫사랑'만을 노래하는 얼굴 모를 가수가 아니다. 적당한 현실감각으로 씨즌에 맞춰 봄을 노래하는 성숙한 봄처녀다. 그녀가 전하는 봄의 감흥에 보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길 바란다. 그댄 봄비를 좋아하시나요?
-수록곡-
1. Caffeine
2. 사랑은 봄비처럼...이별은 겨울비처럼
3. Rainbow
4. 재회 (Radio Version)
5. 인연
6. Corpse Flower
7. A Shining Spring Song
8. 건전가곡
9. 회상
10. 진심
11. 사랑이 진 그 자리에 추억이 핀다
12. 섬
13. 땅끝에 선 나
14. 기도
15. 재회 (Original Version)
16. Bonus Tr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