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Disintegration
큐어(The Cure)
1989

by 배순탁

2001.11.01

음악적으로 절정에 다다른 큐어의 사운드를 만끽할 수 있는 밴드 최고의 마스터피스. 포스트 펑크와 고딕의 동굴 세계를 거쳐 완전히 확립된 자신들만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특히 이 앨범 이후 밝은 이미지로 펼쳐지는 기타 팝 사운드를 고딕의 어두운 측면에서 해석한 점이 높게 평가받았다. 다년간 축적된 내공 또한 깊고 심오해졌다. 무언가 튀어나올 듯 엉성했던 1980년대 초반의 고딕 3부작들과는 달리 별다른 악기의 추가 없이 타이트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능력에서 알 수 있다. 대곡 지향의 곡들이 곳곳에 배치된 것에서는 이들의 음악적 야심의 크기를 헤아려 볼 수 있기도 하다. 이는 평소 팝 음악과 실험 음악간의 구분을 거부했던 로버트 스미스의 언급을 고려한다면 더욱 신빙성을 가진다.

신서사이저와 전기 기타에 의해 각각 주도되는 'Plainsong'과 'Pictures of you'의 광대하고 입체적인 사운드메이킹은 앨범의 이런 지향점을 정확하게 명시해준다. 싱글로 큰 호응을 얻었던 'Lovesong'은 기타 팝의 형식미를 지니고 있으나 실상 강박증에 걸린 사랑을 노래하는 곡이다. 또한 반복되는 베이스 라인과 딜레이 걸린 기타가 묘한 조화를 이루는 'Fascination street'는 타이틀곡과 함께 앨범에서 가장 로킹(rocking)한 순간을 보여준다. 'Lullaby'는 제목과는 달리 잠을 깨우려는 의도가 역력하며 'Prayers for rain'에서는 비장미 넘치는 신서사이저가 초창기의 고딕 세계와 이 작품의 연결점을 시사해준다.

앨범에서 큐어는 밴드의 과거를 충실하게 반영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확립하는 영리함을 보여준다. 게다가 스미스와 함께 기타 팝 밴드의 대명사로 불리게 될 미래의 상(像)을 예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처럼 한 밴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한데 어우러져 있는 앨범은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명반인 것이다.

-수록곡-
1. Plainsong
2. Pictures of You
3. Closedown
4. Lovesong
5. Last Dance
6. Lullaby
7. Fascination Street
8. Prayers for Rain
9. The Same Deep Water as You
10. Disintegration
11. Homesick
12. Untitled
배순탁(greattak@iz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