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앨범은 <Wish>(1992)에서 구현하게 될 기타 팝 사운드에 대한 예고편이다. 혼란스럽고 사이키델릭한 <The Top>(1984)까지 떨쳐내지 못했던 고딕의 이미지가 이 작품에선 보이지 않는다. 여전한 점 한가지는 로버트 스미스의 우는 듯이 노래하는 보컬뿐이다.
서두를 여는 'Inbetween days'의 명랑한 기타 팝 사운드에서 밴드의 변화는 한번에 감지된다. 고딕의 그것과 정확히 대척점에 서 있는 정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플라맹고 기타를 연상케 하는 스트로킹으로 시작하는 'The blood'는 'Killing an Arab'에서 보여줬던 아랍 풍의 이국적인 느낌을 더욱 탄탄해진 구성으로 재현하고 있다. 오랫동안 단련된 팀웍을 느끼게 해주는 'Push'는 딜레이 걸린 기타 사운드의 묘미를 청자들에게 일깨운다. 이 밖에도 밴드의 음악적 순발력과 재치가 돋보이는 'Close to me', 깔끔한 아르페지오 선율과 무거운 배킹 기타가 함께 어울리는 'A night like this'등에서 원치 않았던 고딕의 그림자를 떨쳐내려는 멤버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앨범의 유일한 단점은 여전히 계속된 로버트 스미스의 독자적인(혹은 독재적인) 작업 방식이다. 밴드라는 것이 개인으로 분해될 수 없는 공동체라는 의미를 가진다면 이는 매우 위험한 요소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속작인 1987년의 <Kiss Me, Kiss Me, Kiss Me>에서 멤버들이 언급하듯 큐어는 진정한 밴드로 거듭나게 된다.
-수록곡-
1. In Between Days
2. Kyoto Song
3. The Blood
4. Six Different Ways
5. Push
6. The Baby Screams
7. Close to Me
8. A Night Like This
9. Screw
10. Sink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