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오 연주가 반드시 '쉬운 연주'를 뜻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새 '트리오'라면 대중적인, 받아들이기 쉬운 편한 연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소박한 편성에 선율감이 명징한 피아노 연주를 받쳐주는 베이스와 드럼의 울림은 청중들에겐 재즈로 입문하는 발걸음을 한결 사뿐히 해주는 연주 스타일이다.
에디 히긴스의 존재감은 그래서 남다르다. 일본 비너스 레이블과 손잡고 근 10년 동안 매년 앨범을 발표할 정도로 왕성한 창작력을 보여 온 이 73세의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지극히 무난하다. 한마디로 재즈를 처음 감상하는 분 입장에서도 그의 연주는 귀에 솔깃하다.
무난함을 미덕으로 하는 에디 히긴스 트리오의 연주는 아시아의 재즈팬들에게 보편성을 획득했다. 대가의 기운이 느껴지는 솔로나 앙상블은 아니지만 튀지 않는, 그러면서도 재즈 트리오만의 선율의 기품을 잃지 않는 에디 히긴스의 연주는 그에게 스타덤을 안겨준 일본과 한국 재즈 팬들에겐 각별하다.
올해 에디 히긴스는 <My funny valentine>으로 국내 재즈 팬들을 다시 찾아왔다. 그것도 2004년 <Dear Old Stockholm>에 이은 구수한 테너 색소폰 신사 스콧 해밀턴(Scott Hamilton)의 피처링으로 한껏 중후한 멋을 더해서 말이다.
앨범은 재즈 스탠더드를 에디 히긴스식 재해석으로 포진시키고 있다. 만인의 애청곡이 되버린 'My funny valentine', 블루지한 숙녀 빌리 홀리데이가 불렀던 'I'm fool to want you' , 'Don't explain' , 20세기 미국이 뽑은 최고의 대중음악으로 선정된 호기 카마이클의 'Stardust'가 눈에 띈다.
명징하고 선율이 풍부한 에디 히긴스의 피아노 터치(touch), 투박하면서도 절절한 스콧 해밀턴의 색소폰 블로잉(blowing)이 만나며 이들 재즈 스탠다드는 한껏 진한 맛을 자아낸다. 혈기 왕성한 젊은 재즈맨들이 펼치는 화려한 테크닉이 감지되진 않지만 수만번 연주했을 스탠다드들은 이 두 연주 대가의 손과 입을 거치는 순간 그들이 지내온 인생만큼이나 농익은 연주로 거듭난다.
손가락 부상으로 취소된 그의 첫 내한 콘서트를 여전히 손꼽아 기다리는 한국 팬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에디 히긴스는 참 행복한 재즈맨이다. 그럼에도 그는 황혼의 나이에 불쑥 찾아온 이 예기치 않은 스타덤을 그저 담담히 받아들인다. 50년전부터 작은 클럽에서 묵묵히 연주를 절차탁마한 그는 자신은 '막차로 온 손님'일 뿐이라면 한국 팬들을 향해 겸연적한 웃음을 짓고 있을 뿐이다.
-수록곡-
01 You'D Be So Nice To Come Home To (C. Porter) 6:57
02 I'M A Fool To Want You (Sinatra, Herron, Wolf) 3:51
03 When Sunny Gets Blue (M. Fisher) 4:50
04 Alone Together (A. Schwartz) 7:03
05 My Funny Valentine (R. Rodgers) 3:34
06 It'S All Right With Me (C. Porter) 7:48
07 Stardust (H. Carmichael) 7:06
08 I Only Have Eyes For You (H. Warren) 6:40
09 Don'T Explain (B. Holiday) 6:56
10 Slow Boat To China (F. Loesser) 7:08
11 Imagination (J. Van Heusen) 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