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젊은 거장으로 성장한 알앤비 신동, 그러나 그 역시 슬럼프는 피할 수 없었다. 2009년 이후 겪고 있는 싱글차트에서의 극심한 성적 부진은 (신보가 나와 봐야 명확해지겠지만) 기존 팝 성향의 노선을 부분적으로 에스닉 스타일로 돌리게 만든 것 같다. 그래서일까. 드럼 비트가 지배하는 단순한 구조의 노래 안에서도 형언키 힘든 영가의 내음이 물씬 풍긴다.
‘안달 난 여자’로 곡해하기 딱 좋은 제목이지만, 그냥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불’의 의미로 해석하는 게 앞뒤가 더 맞다. 만고불변의 주제였던 ‘사랑’을 떠나, 해석의 여지를 듣는 이에게 넘기며 상투성에서 벗어난 모습은 단순한 가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범음악적 의미망과 캐릭터를 획득하기 위한 불가결의 선택이었을 테다.
1980년대 느낌으로 시원하게 귀를 때리는 드럼 비트는 ‘Everybody wants you'로 유명한 빌리 스콰이어(Billy Squier)의 'The big beat'에서 따온 것이다. 그와 함께 전면에 나선 목소리, 스트레이트하게 몸통으로부터 뽑아 올리는 듯 시원한 보컬은 여전히 일품이다. 앨범 발매 소식(11월)도 오랜만이지만 기량을 뽐내는 스타일의 곡은 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더 오랜만인 것 같다.
알앤비 여제로서의 존재감을 입증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나 오디오보다는 스테이지에 더 최적화되어있다는 느낌 때문에 지속적인 감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맹점이다. 시종 반복되는 동일한 드럼라인과 후렴구의 탓도 크다. 무드와 맞바꾼 곡의 재미, 과연 등가교환일까, 부등가교환일까.
*이 곡은 메인 버전과 함께 절제된 분위기의 블루 라이트 버전, 니키 미나즈의 피쳐링을 더해 한층 열정을 가미한 인페르노 버전까지 총 세 가지의 버전으로 발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