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에 있어서든, 연주 스타일에 있어서든. 누가 들어도 정체 파악이 가능한 고유의 사운드를 갖고 있다는 것은 창작자에게 있어 커다란 강점이다. 로드 스튜어트의 걸걸함을 마주하는 누구든 그 노래의 주인공이 로드 스튜어트임을 눈치 챌 수 있고, 산타나의 기타 플레이를 접하는 누구라도 그 연주가 산타나의 솜씨임을 대번에 알 수 있지 않던가. 대중음악이 자기표현의 한 방법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자기 음계(音界)를 확실하게 구축한 음악가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가’로 칭송받을 자격을 확보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멈포드 앤 선즈는 경력이 그리 오래지 않은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경쟁력을 갖춘 밴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밴조와 만돌린, 아코디언을 통해 펼치는 질주감은 메인스트림에서 희소한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감성을 잇는’ 가교로 작용하고, 성대를 인위적으로 죄는 프런트 맨 마커스 멈포드의 개성 강한 보컬 역시 밴드의 트레이드마크로 기능하는 덕분이다. 서두의 두 뮤지션들과 마찬가지로, 이 경우 또한 ‘누가 들어도 멈포드 앤 선즈’라는 대답이 돌아올 수밖에 없다.
< Babel >은 이들의 그런 특장점이 잘 녹아나는 앨범이다. 이제 2집을 낸 밴드에게 이런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분명 그들은 현재 메인스트림 록 신에서 비슷하게 출발한 그 누구보다도 자기 음악세계를 확실하게 구축해 나가고 있다. 첫 싱글 커트 곡인 ‘Babel’부터가 그렇다. 민속 악기들로 그려내는 질주감은 다른 누군가의 음악으로 대체 가능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I will wait’도 마찬가지, 비감 가득한 가사를 그리 슬프지 않은 분위기로 바꾸며 명암을 교차시키는 그들의 묘한 능력을 엿볼 수 있다.
여기까지는 ‘내정되어 있던’ 칭찬이다. 밴드의 희소가치에 따라 언급될 수밖에 없는 장점인 것이다. 앨범의 완성도는 그러나, 그룹의 이런 독보적인 존재감에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인상이 짙다. 한 곡 한 곡 찬찬히 살폈을 때는 분명 블루그래스 안의 다양한 구성미를 엿볼 수 있지만, 앨범 전체를 들으며 트랙들을 감상했을 때는 하나같이 비슷한 곡으로 들린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주목할 곡은 많아도, 대번에 주의를 환기시킬 만한 킬링 트랙이 부재한다.
신보가 앨범차트에서 엄청난 강세를 보이는 와중에 싱글차트에서는 약세를 보이는 것 또한 이런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빌보드 싱글차트 기준으로 ‘Babel’은 최고 60위에 그치고 있고, 가장 높은 성적을 기록한 ‘I will wait’는 겨우 23위에서 멈추고 말았다. 인디 신에서 출발한 밴드로서 그 또한 괄목할 성과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 정도면 < Babel >이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는 물론 그 외의 기타 앨범 차트 7가지 부문에서 모조리 1위를 싹쓸이한 것과는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의 차이다.
국내에서는 무명한 미국의 음악웹진 '아메리칸송라이터'(www.americansongwriter.com)는 최근 이 음반을 리뷰하며 ‘It’s not perfect, but it’s perfectly Mumford & Sons.’라는 활자를 마지막에 박아 넣었다. 앨범을 설명하는 최고의 압축어라 생각한다. < Babel >은 멈포드 앤 선즈의 존재감은 확실히 입증한, 그러나 ‘그 감각에 촉이 살아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의문을 남기는 ‘절반의 성공’과도 같은 앨범이다.
-수록곡-
1. Babel [추천]
2. Whispers in the dark
3. I will wait [추천]
4. Holland road
5. Ghosts that we knew
6. Lover of the light [추천]
7. Lovers' eyes [추천]
8. Reminder
9. Hopeless wanderer
10. Broken crown
11. Below my feet
12. Not with has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