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증맞고, 귀엽고, 깜찍한 소녀. 허나 그 속엔 고혹적이고, 관능적이며, 섹시한 팜므파탈이 숨어있다. 감각을 쥐고 뒤흔드는 무미건조한 표정에 사람들은 혼란을 느끼지만 정작 그는 태연하기만 하다. 영국 태생 신인 R&B 싱어 FKA 트위그스는 가녀린 목소리로 유혹의 오브제를 빚는다. 도통 알 수 없는 깊은 장막 속에 발을 들이는 순간 애처로운 몽마(夢魔)의 손길에 넋을 잃게 된다.
이 수수께끼 소녀의 가장 큰 무기는 다름 아닌 혼란 그 자체에 있다. 한 번에 따라 부를 수 있는 후렴도 없고 익숙한 선율도 없다. 대신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뿌연 독안개같은 아우라가 퍼져있다. 잘게 쪼개진 드럼 비트와 묵직하게 내려앉는 베이스 리듬은 건조한 듯하면서도 일정한 리듬을 만들고, 연약한 트위그스의 목소리에는 관능적인 유혹의 퇴폐미가 넘친다. 포티셰드(Portishead)와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 선배들이 주조해놓은 UK 트립합의 기운을 빌린 혼란스러운 알앤비다. < 스핀 > 지의 설명을 인용하자면 ‘적어도 현재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음악은 아니다’
미확인 생명체와도 같이 생소하지만 어느 순간 곁에 있다. 트위그스가 낳은 혼란과 불안은 역설적이게도 일상적이고 열렬한, 그 끝을 알 수 없는 사랑에서 왔다.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데 한 치의 주저함이 없다. 성적 행위의 암시와 ‘2주만 지나면 그녀를 알아보지도 못할 것’이라는 다짐의 ‘Two weeks’는 은밀한 유혹에 숨이 턱 막힐 지경이다. 몽환적인 ‘Hours’의 자극은 그 수위가 더 세다.
하늘하늘한 보컬과 쪼개진 기타 리프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Pendulum’은 절절한 아픔을 열거하면서도 자신을 ‘당신의 것’이라 바친다. 결국 믿음은 산산이 부서지고, ‘Was I just a number to you’라는 애절한 외침의 ‘Numbers’가 긴박한 전자음과 날뛰는 드럼 비트로 극렬한 고통을 전한다. 제목과는 정반대 메시지의 ‘Give up’쯤 되면 이미 모든 것을 다 내준 상태다. 사랑이라는 단 하나의 단어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한다. 보통내기 신인이 아니다.
감정의 가장 얕은 곳부터 가장 깊숙한 곳까지 끝까지 치고 들어가는 집중도가 놀랍다. 음악적 장치의 부재를 고유의 아우라로 대체한다. 만져지고, 괴롭혀지며 또 한없이 사랑받는 노래 속 주인공이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그만큼 FKA 트위그스의 음악은 짙다. 귀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넘기기에는 치밀한 유혹의 손길이 너무나도 부드럽다.
FKA 트위그스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은밀한 층위의 자극을 건드렸다. 가는 숨결을 뱉는 천진한 표정, 그 속에 숨겨진 격렬한 감정이 음악 시장의 목을 조인다.
-수록곡-
1. Preface
2. Lights on [추천]
3. Two weeks [추천]
4. Hours
5. Pendulum [추천]
6. Video girl [추천]
7. Numbers [추천]
8. Closer
9. Give up [추천]
10. Kic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