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이 고수하는 일종의 서사성은 확실히 위력적이다. 초기 ‘상남자’ 시절의 그룹과 현재의 방탄소년단은 별개라 해도 좋을 만큼 그 분리가 명확하다. 변화의 기점인 < 화양연화 pt.1 >부터 그룹은 (특히 서사의 측면에서) 칼을 갈았다. ‘방황하는 청춘’ 콘셉트를 적극적으로 차용, 개별 곡과 앨범 전반 서사, 퍼포먼스, 뮤직비디오 등 모든 요소를 콘셉트에 봉사하도록 조율했다. 유약하게 휩쓸리면서도 목표를 향해 발버둥 친다는, 방탄소년단이 그린 ‘청춘’은 그룹 자체의 모습과도 겹치면서 팀에 특화된 이미지가 되었다. 해외 트렌드를 적절히 끌어온 잘 들리는 타이틀과 스토리텔링에 공을 들인 뮤직비디오는 그 틀이 헐겁게 보이지 않도록 돕는다.
< 화양연화 > 연작 후 첫 정규작이지만 이전과의 괴리감은 크지 않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어두워졌을 뿐 본질이 되는 사운드의 질감이 그리 다르지 않은 탓이다. 해당 시리즈로 팀 정체성을 전환한 만큼 급격한 변화는 조심스러웠을 터, 대신 콘셉트의 스케일을 키우고 장르적 색채를 더했다. 타이틀곡 ‘피 땀 눈물’은 이런 흐름을 대표한다. 변화무쌍한 신시사이저와 몰아치는 속도감, 클라이맥스에서 급격히 템포를 끌어내리며 비감(悲感)을 강조하는 것까지 ‘I NEED U’와 ‘RUN’의 기조 아래에 있으면서, 곡과 퍼포먼스 등 모든 면에서 섹슈얼리티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타이틀에 이어지는 구성은 상대적으로 대담하다. 곧바로 각각의 솔로 곡을 일곱 트랙에 연달아 선보이며,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다양한 영역을 탐색하고 있다. ‘Stigma’에서는 느릿한 템포로 소울을 시도하고, ‘Awake’에서는 스트링 사운드를 내세워 발라드에도 손을 뻗는다. ‘Lie’는 가장 화려하고 극적인 전개로 보컬을 과시하는 동시에 앨범의 어두운 정서 연출에 일조한다. 하지만 결국 가족에 대한 이야기나 자기성찰로 귀결되는 래핑 트랙의 연속은 다소 과한 무게로 피로감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Lost’, ‘둘! 셋! (그래도 좋은 날이 더 많기를)’, ‘Interlude : Wings’ 등 단체곡에서 드러나는 강점은 건재하다. 겹겹이 쌓은 보컬 하모니에 랩 파트가 교차하는 모양새가 매우 자연스럽고 유연하다. 특히, ‘Lost’는 전체적 주제를 관통하는 가사에 보컬과 랩의 말끔한 경합으로 후반부의 중심을 잡는 핵심 트랙이다. ‘Am I Wrong’과 함께 무게감을 덜며 완급 조절 역할을 하는 ‘21세기 소녀’가 유일한 자충수다. ‘상남자’ 시절의 팀에 향수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유효할지 모르지만, 전형적인 ‘소녀들아 오빠를 따르라 식’가사는 변화한 그룹 정체성에 더 이상 적절치 않다.
그룹은 끊임없이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자기 갱신을 노린다. 앨범의 부피가 커지면서 다소 느슨하거나 산만해진 감은 있지만, 이들은 지금까지 이어온 일정한 흐름을 유지 및 발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콘셉트 위주의 트랙과 멤버들의 자전적 이야기를 교차시키고, 하우스, 레게, 퓨처 베이스 등 여러 장르를 한데 뒤섞는 와중에도 색이 흐트러지지 않는 것은 큰 장점이다. 이제 방탄소년단에게 필요한 것은, 솔로 트랙 등의 자기 콘텐츠를 지닌 아이돌로서의 어필과 음반의 전체적 조화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을 전략이다.
-수록곡-
1. Intro : Boy meets evil
2. 피 땀 눈물 [추천]
3. Begin (정국 Solo)
4. Lie (지민 Solo) [추천]
5. Stigma (뷔 Solo)
6. First love (슈가 Solo)
7. Reflection (랩몬스터 Solo)
8. MAMA (제이홉 Solo) [추천]
9. Awake (진 Solo)
10. Lost [추천]
11. BTS cypher 4
12. Am I wrong
13. 21세기 소녀
14. 둘! 셋! (그래도 좋은 날이 더 많기를)
15. Interlude : Wings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