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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rl
시저(SZA)
2017

by 조해람

2017.11.01

이 앨범 전까지 시저(SZA)는 비운의 싱어였다. 피처링으로 참여한 노래들에서는 매력적인 존재감을 한껏 뽐냈으나 정작 본인의 작품은 세간의 기대에 비해 아쉬운 결과물에 그쳐 왔다. 그러나 지난 6월 발매한 이 첫 정규앨범으로 시저는 그동안의 부진을 한방에 보상받았음은 물론, 쟁쟁한 여성 알앤비 싱어들의 이름 옆에 자신의 세 글자 알파벳을 당당히 올려놓았다. 결코 과찬이 아니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아낸 이 신예의 놀라운 작품 < Ctrl >은 충분히 그 정도 몫을 할 수 있는 앨범이다.

옅고 몽환적인 신시사이저 톤이 주 축이 되어 앨범의 전체적인 사운드를 꾸민다. 기본적으로 콘템포러리 알앤비의 영향 아래 있는 이 앨범은 적극적으로 음울함을 부각하던 전작들에 비해 한 발짝 물러선 편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빈 자리를 대신 메워주는 것은 시저의 끈적하고 달달한 꿀 같은 목소리. 트래비스 스캇과 함께한 'Love galore'에서는 자연스러운 리듬감과 임팩트 있는 훅으로, 'Garden (say it like dat)'에서는 곡의 기승전결을 가창으로 조절하며 시저는 찰흙을 가지고 놀듯 음악을 주무른다.

'Supermodel'에서도 미니멀한 기타 반주 위로 매력적인 음색을 유감없이 뽐낸다. 헤어진 연인에 대한 원망을 거침없는 성애적 표현과 함께 담아낸 이 노래처럼, 앨범 내내 시저는 직접적이고 솔직하며 가감없는 가사로 진솔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가히 성적 단어들의 폭격이라 부를 만한 'Doves in the wind'가 대표적이다. 켄드릭 라마의 멋들어진 랩과 함께 가차없는 드러내기로 성적 해방에 가닿는 이 곡은 강요된 여성상을 반어적으로 비판하는 'Normal girl'과 함께 페미니즘의 목소리를 높인다.

쓸쓸한 반주에 사랑받지 못한 여자의 낮은 자존감을 노래하고('Drew barrymore'), 가진 것 없는 20대의 우울을 그리는('20 Something') 등 시저는 자신과 비슷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삶과 감정을 핍진하게 나타낸다. 전작들보다 밝고 대중 지향적인 < Ctrl >의 선율감각은 그런 진솔한 가사들과 만나 더욱 강력한 힘을 얻는다. 복잡한 연애관계 속 질투를 담은 'The weekend' 같은 곡부터 반복되는 일상과 사랑의 소중함에 대한 곡 'Broken clocks'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선명한 선율과 훅은 듣는 이가 음악에 잘 몰입하게끔 돕는다.

섬세하게 목소리를 쌓아올린 'Go gina', 아이재아 라샤드(Isaiah Rashad)의 탁한 랩과 재즈적인 몽롱함이 인상적인 'Pretty little birds'에 드러나듯 앨범의 메시지는 진솔함에 뿌리를 둔 공감과 위안에 있다. 자신을 받아들이고 당당해지자는 희망의 가능성을 타진하며 앨범은 귀를 통해 들어와 마음 속으로 내려앉는다. 수록곡 각각의 매력과 더불어 스킷을 통해 긴밀하게 연결된 전체 구성은 앨범 단위 감상의 즐거움까지 제공한다. 비록 소속사의 독단적인 발매로 시저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모습의 앨범이 되었다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라면 앞으로 그가 보여줄 것들은 또 얼마나 무궁무진할까.

-수록곡-
1. Supermodel [추천]
2. Love galore (Feat. Travis Scott)
3. Doves in the wind (Feat. Kendrick Lamar) [추천]
4. Drew barrymore [추천]
5. Prom
6. The weekend [추천]
7. Go gina
8. Garden (Say it like dat)
9. Broken clocks [추천]
10. Anything
11. Wavy (Interlude) (Feat. James Fauntleroy)
12. Normal girl [추천]
13. Pretty little birds (Feat. Isaiah Rashad)
14. 20 Something
조해람(chrbb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