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거침없었다. < 새삼스레 돌이켜본 무중력 사슴의 다섯가지 시각 >(2015) 이라는 가늠할 수 없는 제목으로 음악 신에 첫발을 내디딘 그들은 딱 타이틀 만큼이나 알 수 없는 음악을 선보였다. 주선율을 잘 들리게 내세워 청각을 노린다거나 따라 부르기 쉬운 가사로 떼창을 바라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 선율은 강렬한 신시사이저, 갑자기 나른해지는 일렉트릭 기타 등으로 범벅되어 있었고, 리버브 가득한 보컬은 노래보다는 주술에 가까웠으며, 노랫말은 난해했다. 첫 음반의 ‘II (Feat. 남상아)’에서 타이틀 곡 ‘Sister’로 이어지는 흐름에 이 모든 이미지가 담겨있다.
데뷔 직후 밴드가 EBS 스페이스 공감 올해의 헬로루키 대상을 비롯한 많은 상을 거며 쥐며 평단의 호평을 일군 데에는 바로 이 실험성, 도전정신이 크게 한몫했다. 3분짜리 듣기 쉬운 팝송이 아닌 공감각, 그러니까 시각의 청각화라 표현해도 무방할 만큼의 내면의 것들을 일궈낸 그들은 고인 물이 아닌 흐르는 물이었다. 여기에 멤버 중 2명의 VJ를 두어 진짜로 구현해낸 청각적 이미지는 그들에게 시각적 견고함까지 더해줬다.
다만 그 자유로움이 도리어 화가 되기도 했다. 압도적일 만큼 강렬한 그 구성에 청자의 통찰력이 수반되었을 때 비로소 빛이 났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번 앨범의 번뜩임이 나타난다. 몇몇 멤버의 군 입대를 앞두고 잠정적 휴식을 알리는 이 작품이 더 쉽고 편한 선율로 대중 친화적 노선을 선택했다. 머리곡 ‘낮잠’은 특유의 뿌연 보컬은 유지하되 선명한 멜로디 라인으로 대중의 눈높이를 맞췄고, 이어지는 ‘뚝방길’은 익살스럽고 따라 부르기 쉬운 코러스를 킬링 파트로 내세워 고개를 끄덕일 선율에 키치한 매력까지 더했다. 약간의 변화를 주어 편한 선율로 이별 편지를 더 쉽게 각인되도록 적어낸 것이다.
선율은 직선적이지만 감상 포인트를 잘 잡아내는 연주는 밴드의 구심력을 여전히 끌고 간다. 신디사이저로 쌓아 올린 묘한 분위기를 진한 일렉트릭 기타로 고조시키고 끝부분 다중 목소리로 변주의 맛을 살린 ‘그린내’, 리드미컬하고 강렬한 질감의 ‘Neo soul’. 거슬리는 고주파 음을 거름 없이 밀어붙이는 ‘낮잠’의 과감함은 전부터 이어온 그들의 비틀기 내공이 담겼다. 따라서 밴드는 실로 멋진 안녕을 고한다. 조금은 여유로워진 선율과 여전히 쉴 틈 없는 연주로 말이다. 트랙별로 다른 분위기의 뮤직비디오를 별책부록처럼 담아 이미지를 챙긴 것도 빼놓을 수 없겠다. 쿨하고도 그들다운 인사법이다.
-수록곡-
1. 낮잠
2. 뚝방길
3. Zzz
4. 불한당
5. Neo soul [추천]
6. 그린내 [추천]
7. Neo seoul(DJ Soulscape Remix)
8. 불한당 (달파란 Rem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