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사표는 대개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규정하곤 한다. 상업적 성공이 어느 정도 동반할수록 그 경향은 더욱 짙어지기 마련이다. 애쉬 아일랜드(ASH ISLAND)를 두고 < 고등래퍼 2 >의 이미지보다 '이모 랩(Emo Rap)'의 수식어가 먼저 등장하는 것도, 2019년 로킹한 기타 사운드가 발화하는 'Paranoid'의 히트를 이유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적당량 오토튠이 가미한 창법, 어둡고 탁한 프로덕션, 그리고 우울과 불안, 불특정 대상에 대한 갈구를 담은 가사와 같이 이모 랩이 지닌 장르적 성질은 오늘날 그의 스타일을 상징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후속작 < Island >를 이루는 골자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통상적 밴드 악기가 강조되는 1990년대 록 사운드는 여전히 주요 작법으로 자리하고, 전작의 프로듀싱을 맡은 토일(TOIL)에 이어 동류의 음악을 구사하는 스키니 브라운(Skinny Brown)이 작곡진에 합류하며 이러한 성향의 기본기를 한층 강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만 전작이 '애쉬'라는 명명처럼 잿빛 기조의 음악을 주로 다뤘다면 본작은 생명의 어감이 포함된 '아일랜드'를 호출하며 본격적으로 밝은 정체성을 다루기 시작한다. 근간을 이루던 부재의 감정 역시 드넓은 '자아'의 범위에서 국소적인 '사랑'으로 옮겨간다.
여기서 근본적인 이모(Emo)의 정의는 흐려진다. 그 낌새는 타이틀 '멜로디'부터 드러나는데, 산뜻한 도입부와 캐치한 훅이 강렬하게 치고 나오는 작법은 좀 더 대중적이고 유순한 '팝 랩'의 영역으로의 안착을 도모한다. 상쾌한 질주감을 표현하는 'Over'와 주스 월드의 추모곡 'Beautiful'이 이러한 의지를 이어받아 명징한 청춘 이미지를 그려내기도 한다. 또한 타인과의 교류도 더욱 원활하다. 각인적인 트랩 비트 아래 화려한 기교를 선보이는 '그랑프리'와 대규모 라인업으로 끌어올린 고조를 유지하는 'Checks'는 순도 높은 청적 쾌감을 선사한다.
2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마침내 완성된 '애쉬'와 '아일랜드'의 퍼즐이다. 하지만, 그 결과물이 완성된 형태라고는 답하기 어렵다. 비슷한 지향점을 겨냥하는 'Okay'는 피처링의 부조화로 쌓아올린 집중력을 상실하고, 전작의 기조와 닮은 'A star is born'은 팝 시장의 권력을 구가하는 포스트 말론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차분한 어조로 호소하는 'Eclipse'와 정반대로 빠른 속도감을 무기로 내세운 'Lonely'는 완전한 팝으로의 전복을 꾀하지만 변곡점을 그릴 만큼 강한 인상을 주지 못하며, 전술한 '그랑프리'와 'Checks'에서는 본인의 역량이 참여진의 개성에 가려지는 양상을 보인다.
습작의 인상에도 불구하고 < Ash >가 '이모 랩' 계승의 의지를 드러내는 일관성과 이어 웜(Ear Worm)을 유도하는 임팩트로 놀라운 흡입력을 창출했다면 < Island >가 확보한 새 국면은 애쉬 아일랜드 본인에게 생명력을 부여함과는 별개로 작품 자체의 소구력에서 다소 빈약한 모습을 보인다. 여러 시도 가운데 여운을 주는 트랙보다 그렇지 않은 쪽의 비율이 높다는 점도 산만함을 부여하는 원인이 된다. 본작에서 보여준 준수한 장르 소화력을 토대로, 이를 다듬어 도약의 발판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수록곡–
1. 멜로디
2. Okay (Feat. 스윙스)
3. Over [추천]
4. A star is born
5. 그랑프리 (Feat. Beenzino) [추천]
6. Checks (Feat. 수퍼비, 박재범, The Quiett)
7. Eclipse
8. Lonely
9. Error (Feat. Loopy)
10. Beautiful (Feat. Skinny Brown) [추천]
11. One More Night (Feat. Lilb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