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세라핌과 코첼라, 자평 아닌 자성(自省)이 필요할 때

르세라핌(LE SSERAFIM)

by 신동규

2024.05.01



2주 동안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개최된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이 막을 내렸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최대 규모의 음악 페스티벌인 만큼 금년에도 많은 관중이 모여 열기를 더했다. 라나 델 레이, 도자 캣,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등 오늘날 정점에 위치한 팝스타가 대거 출격한 가운데 국내 가수로는 보이밴드 에이티즈와 밴드 더 로즈 등이 나섰고 르세라핌은 약 40분 동안 미공개 곡을 포함한 10곡을 소화하며 관객과 교감했다. 코첼라 출연은 그동안 포기와 두려움을 극복했다고 여긴 데뷔 2년 차 5인조 걸그룹이 얻은 결과였다.

첫 번째 무대를 마친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박수가 아닌 야유와 비판이었다. 현장 상황과 별개로 마이크의 수음(受音)을 타고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전달된 멤버들의 가창력이 수준 이하라는 내용이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장악한 것이다. 실제로 홍은채와 카즈하의 보컬은 기본적인 발성조차 안 되는 모습이었고 사쿠라 역시 불안한 음정이 몰입을 방해했다. 평소 이를 상쇄하느라 바빴던 김채원과 허윤진은 본인의 파트를 방어하기에만 급급했다. 몇 차례의 음이탈과 박자를 놓치는 일은 예사, 듣는 사람들이 불안할 정도였다는 냉담한 반응이 온라인을 뒤덮었다.



일주일 후에 다시 오른 무대에서는 세간의 평가를 의식한 모습이었다. 음원 상의 목소리가 깔린 AR 사운드를 키워 안정감을 더했고 이를 통해 숨을 고를 구간을 마련하여 보다 더 여유를 갖고 퍼포먼스에 집중한 무대를 선보였지만 이는 일시적인 방책일 뿐이었다. 녹음된 소리의 도움을 받아 상대적으로 듣기 편해졌다는 차이만 있을 뿐 그들의 문제는 여전했다.

자신들의 경력에서 가장 큰 무대에 올라 무게감을 이겨내며 긴 공연을 이끌어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화려한 춤과 가창을 기본으로 탑재한 아이돌 그룹의 경우에는 실연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만큼 부담감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르세라핌은 철인이 아니다. 아니 그 어떤 아이돌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이를 타개할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으로 이 부재가 가장 큰 패착이 된 셈이다. 보다 효율적인 트랙 배치와 동선으로 체력을 안배하고 면밀한 사전 연습과 확실한 모니터링을 통해 호흡을 자재할 수 있었다면 여론의 악화만은 모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라이브 공연 하나가 K팝의 이미지, 더 나아가 한국의 대중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인지했어야 했다. 불야성의 무대만이 능사는 아니다. 대중이 음원 속 목소리에 점차 의구심을 느끼고 퍼포먼스가 가창력을 숨기는 도구로 비친다면 장기적으로 K팝 산업은 답보 상태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대다수의 소비자는 주문한 음식이 아무리 맛이 없어도 그 음식점의 주방장을 찾아가 따지지 않는다. 집에 돌아가 리뷰를 남기고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을 뿐이다.

영화감독은 작품, 요리사는 음식, 화가는 그림으로 인정받는다. 그 외의 환경적 요소는 부수의 조건일 뿐이다. 가수의 부분집합인 아이돌도 음악과 노래로, 공연은 무대로 평가받아야 한다. 과정은 이해와 감동을 줄지 몰라도 실력은 결국 결과로 판가름이 난다. 애초에 이들에게서 좋은 무대와 가창력을 바라지 않는다면 그건 가수로 전제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이번 문제는 르세라핌만의 과제가 아니다. 한 소속사, 한 그룹, 한 멤버의 문제로 치부해 늘어지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평가 절하를 목적으로 코첼라 무대에 올랐던 다른 그룹과 비교하는 행위 또한 마찬가지다. 이것은 오히려 논점을 흐리고 근원적 문제를 왜곡하는 일이며 K팝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지양되어야 할 부분이다.

우리는 막대한 자본에 기댄 상업성과 끊임없는 지원이 만들어낸 억지 인기가 그들의 실력을 투명하게 반영하지 않았다는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고 개선점을 제시하는 대신 응원에만 치우치고 감상보다도 화려한 시각 정보나 소모적 활동에 집중해 최소한의 음악성과 실력 향상을 갈구조차 하지 않는 모습이 올바른지도 돌아봐야 한다. 양자 모두 득이 될 것 없는 이 행태 속에서 우리가 스스로 권리를 수호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바로 좋은 음악과 납득할 수 있는 보컬이다.
신동규(momdk7782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