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약 두 달 만에 5인 체제를 감행했다. 신인그룹으로서 치명적인 출혈이었지만 전면에 내세운 슬로건처럼 행보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첫 주 17만 장이라는 전무한 기록의 음반 판매량과 아이즈원 출신 김채원, 사쿠라의 인지도를 등에 업은 팬덤은 주체성을 강조한 메시지에 비해 수록곡의 설득력이 부족했던 < Fearless >의 갑론을박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무거운 짐을 벗고 한결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는 이들의 두 번째 캐치프라이즈는 충격을 가할수록 더 강해진다는 의미의 < Antifragile >이다. 시의성을 고려한 제목처럼 보이지만 음반은 일찍이 짜놓은 정교한 설계도 위에 있다. 첫 번째 미니 앨범 < Fearless >를 잇는 메시지와 전작을 닮은 앨범 커버, 수록곡의 짜임새가 직전 활동으로 그려낸 강인한 이미지에 컬러감을 더한다. 그룹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두 핵심 멤버의 과거 색채를 흐리는데 전념하는 제작이다.
치밀한 계획표 덕에 시선은 정방향이지만 걸음걸이는 흔들린다. 연작으로써 통일감을 의도해 인트로에 삽입한 나레이션은 1990년대 특촬물을 보는 듯 부자연스러우며, 앨범 전반적으로 음절 수를 채우기 위해 억지로 끼워 넣은 듯한 영어는 청각적 쾌감도, 유의미한 메시지도 이끌어내지 못하며 감흥에 제동을 건다.
이는 타이틀인 ‘Antifragile’에서 가장 선명하다. 아프리카 특유의 변칙적 리듬을 사용한 아프로 EDM 사운드와 강렬한 보컬이 화려하게 시작을 끊은 데에 비해 '걸어봐 위엄 like a lion / 눈빛엔 거대한 desire’를 위시한 몇 개의 라인들이 노래에 녹아들지 못하고 부유한다. 보컬의 문제라기보다는 파트 나누기에 급급해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를 배치한 탓이다. 팝펑크 스타일 수록곡 ‘No celestial’에서 다시 반복되는 문제점은 중독성을 꾀한 의도적 메이킹이라는 명목으로 포장해도 쉽게 가려지지 않는 흠이다.
매끄러운 만듦새는 아니지만 자신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설득력을 더했다는 점은 성공적이다. ‘겁이 없음'을 구실 삼아 카디 비와 도자 캣의 이미지를 모방했던 선정적 퍼포먼스보다 멤버들의 과거, 강점을 적극 이용한 안무와 가사가 르세라핌으로서의 강함을 완성한다. 과도한 치장 없이 각각의 자연스러운 목소리를 잘 담아낸 알앤비 ‘Impurities’는 앨범의 테마를 강화하는 곡이다.
기독교 품계에 따르면 6개의 날개를 가지고 있는 ‘세라핌(Seraphim)’은 천사 중 가장 높은 위계에 있다고 전해진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그중 하나를 떼어낸 르세라핌이 더 이상 천사의 완전무결한 이미지에 얽매일 명분 또한 사라졌다. 부담 없이 두려움 없는 행보를 이어 갈 수 있게 된 이들에게 < Antifragile >은 더 단단해지기 위한 주조 과정이다.
-수록곡-
1. The hydra
2. Antifragile
3. Impurities [추천]
4. No celestial
5. Good parts (when the quality is bad but I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