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 없는 창작은 존재할 수 없는 현실에 적절한 참고와 창의적 변형은 탁월한 능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르세라핌의 행보는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팝의 성공적인 선례를 기가 막히게 선정하고 이를 그룹의 정체성에 성공적으로 집약함으로써 4세대 K팝의 리더 중 하나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 Easy >의 레퍼런스 활용은 필요 이상으로 노골적이다. 전형적인 아프로비츠의 형태를 띠는 ‘Smart’는 색채뿐만 아니라 주요 멜로디 라인까지 도자 캣의 ‘Woman’을 닮았고, 거친 록으로 질주하는 인트로 ‘Good bones’의 사운드 조성과 중/후반 합창은 예예예스의 ‘Date with the night’을 대번에 연상시킨다. 로살리아나 이사벨라 러브스토리(Isabella Lovestory)의 과격한 레게톤을 인상적으로 재해석한 ‘Antifragile’, 직선적인 진행을 무기로 저지 클럽 계열의 선두에 선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 등과 달리, 창의적 시도 없는 안일한 변형이 기시감을 유발하면서 신선도는 불가피하게 저하된다.
이러한 유사성이 더욱 아쉬운 이유는 사운드 자체의 매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레퍼런스와의 유사도를 차치하고 본다면 각 트랙의 완성도와 설득력에는 이렇다 할 부족함이 없다. ‘Smart’는 ‘Woman’과 유사함과 동시에 간결하고 깔끔한 아프로비츠 트랙이라 할 수 있고, 시저(SZA)의 ‘Kill bill’을 연상시키는 ‘Swan song’ 또한 멜로디의 연결이 조화롭기에 좀처럼 불쾌하지 않다.
라틴 향이 첨가된 트랩 ‘Easy’ 또한 마찬가지. 직전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Perfect night’의 기조를 이어가면서도 예상치 못한 장르 선택으로 신선함을 주며 분명한 외연 확장에 성공한다. 비교적 보편적인 작법인 만큼 특정한 레퍼런스를 떼다 붙였다는 인상 또한 적다. 다만 대중이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르세라핌의 모습과 곡이 의도하는 장르적 쾌감 사이에 분명한 괴리가 존재하는 만큼, 받아들여지기에는 시간이 조금 필요해 보인다.
앨범 내 사소한 문제점들 또한 눈에 걸린다. 커리어 중 가장 격정적인 인트로와 반대로 가장 부드러운 타이틀 트랙이 이어지는 과정은 다소 부자연스럽고, 인트로의 3개 국어 내레이션이 유발하는 낯간지러움도 여전하다.
누구보다 잘 참고하고, 또 멋들어지게 해석해 왔던 르세라핌이 프로듀서진의 안일함으로 섬세함의 끈을 놓치며 약점을 드러냈다. 그렇기에 < Easy >는 소리의 매력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그룹의 그 어떤 작품보다 흠집이 많다. 물론 그 매력이 현재의 지위를 충분히 지켜낼 만큼 크긴 하지만 말이다.
-수록곡-
1. Good bones
2. Easy [추천]
3. Swan song [추천]
4. Smart [추천]
5. We got so mu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