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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ey
로빈(Robyn)
2018

by 한성현

2024.10.26

이즘이 비정기적으로 미처 리뷰하지 못했던 작품을 되짚어봅니다. 이번 리뷰는 이즘에서 ’2018년 올해의 팝 앨범’으로 선정한 로빈의 < Honey >입니다.

현세대 수많은 여성 팝 뮤지션들에게 귀감이 된 < Body Talk >를 2010년 발매한 후 스웨덴의 싱어송라이터 로빈은 전자음악에 더욱 헌신했다. 노르웨이의 프로듀싱 팀 로익솝(Röyksopp)과 합작하여 < Do It Again >(2014)를 공개했고, 3인조 그룹 라 바가텔 매지크(La Bagatelle Magique)를 결성해 2015년에는 < Love Is Free > EP로 하우스 중심의 댄스 탐구를 보여줬다. 하지만 열정적인 활동 뒤에는 아픔을 감추고 있었다. 연인과의 결별에 더해 라 바가텔 매지끄의 멤버이자 절친한 프로듀서 크리스찬 포크(Christian Falk)가 음반 발매 전에 사망한 것이다.

세상을 떠난 동료와의 작품을 무대에서 선보이는 것을 버틸 수 없던 로빈은 결국 < Love Is Free > 투어를 취소하고 정신적 회복에 들어갔다. 심리 상담도 꾸준히 받았지만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결국 음악이었다. 디제이 코제(DJ Koze)의 곡 ‘XTC’를 듣고 삶의 변화를 느낀 그는 세계 곳곳의 댄스 클럽을 돌아다니면서 신보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고혹적이면서도 맑은 < Honey >의 탄생 일화다.

< Body Talk >와의 접점은 리드 싱글로 공개된 첫 트랙 ‘Missing u’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공허한 마음을 바라보며 그리움을 표하는 트랙은 아르페지오로 가꾼 신시사이저 리프의 반복을 뚝 끊어내며 새 챕터로의 발걸음을 인도한다. 이어지는 ‘Human being’과 ‘Because it’s in the music’의 미니멀한 구성을 보면 대중적인 멜로디에 미래적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접붙였던 전작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외피는 역시 전자음악이지만 보컬 톤과 작법은 오히려 1990년대 중반 데뷔 당시 그의 지향점이었던 알앤비를 닮았다. 사이보그가 되고자 했던 로빈은 자기 자신을 비우고 해체하여 인간으로 돌아간다.

전반적으로 몽롱하나 동시에 가라앉아 있고, 일반적인 팝 작법의 이행은 많이 버렸지만 그렇다고 마냥 난해하지도 않다. 인디와 주류, 전자음악과 팝의 경계를 잇던 인물답게 로빈은 < Honey >에서도 특정한 한 곳으로 치우침이 없는 평형 상태를 유지한다. 그 중심에서 음반이 추구하는 균형은 슬픔과 기쁨의 교차다. 가녀린 음색으로 용서를 구하는 ‘Baby forgive me’는 속에 깊게 담아둔 언어를 그대로 내뱉으라는 ‘Send to Robin immediately’로 이어지고, 노을 지는 해변을 바라볼 때 흘러나올 라운지 음악풍의 트랙 ‘Beach2k20’의 느긋함에는 파티로 아픔을 치유하고자 하는 애원이 섞여 있다.

하나 뚜렷한 게 있다면 낙관의 결론이다. 40분간 이어지는 뮤직 테라피의 결말 ‘Ever again’에서 로빈은 다시는 사랑에 아파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짐한다. 목소리를 지지하는 것은 프린스 스타일의 펑크(funk) 베이스. 1980년대 음악이 막연하게 품었던 긍정의 기운을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역경은 결국 다시 찾아올 것이나 희망의 문장을 곱씹고 되새기는 자기 실현적 예언의 힘은 그 자체만으로도 강하다. 오늘날의 팝 사운드를 예견한 < Body Talk >처럼 어쩌면 2018년의 로빈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벌어진 팝 신의 댄스와 레트로 르네상스를 한발 먼저 예고한 듯하다.

‘필요한 것을 가질 순 없겠지만/네가 원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 타이틀 트랙 ‘Honey’에서 로빈은 이렇게 말한다. 필요가 부족에서 기인한 수동적인 욕구라면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은 직접적인 인식에 의거한 능동적인 행위로 볼 수 있다. 행간을 읽는다는 ‘Between the lines’의 가사처럼 언어가 미처 감지하지 못하는 신체의 갈증을 알아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어나서 춤을 추며 스스로에게 축복을 내리자. 쾌락은 곧 환희가 될 테니. 꿀처럼 달콤하나 자극적이지 않게 몸을 감싸는 < Honey >는 우리를 유혹하듯 위로하는 작품이다.

-수록곡-
1. Missing u
2. Human being (Feat. Zhala)
3. Because it’s in the music [추천]
4. Baby forgive me
5. Send to Robin immediately
6. Honey [추천]
7. Between the lines [추천]
8. Beach2k20
9. Ever again [추천]
한성현(hansh9906@naver.com)